대치동, 그 맹목의 교육은 누구를 태우고 있는가 [전문가 칼럼]
최태호 중부대 한국어학과 명예교수
얼마 전, 교육의 성지라 불리는 대치동의 한 아파트에서 화마(火魔)가 고등학교 입학을 앞둔 중학생의 어린 생명을 앗아갔다. 이사를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채 짐도 다 풀지 못한 상태에서 당한 참변이라 전해진다. '더 나은 교육 환경'을 찾아 이 땅의 부모들이 그토록 갈망하는 0.1평의 틈바구니를 찾아 들어온 아이는, 정작 그곳에서 내일을 꿈꿔보지도 못한 채 스러졌다.
이 비극은 단순한 실화(失火) 사건을 넘어 우리 시대의 교육과 욕망이 어떤 임계점에 도달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가르치는 필자의 눈에 오늘날 대치동을 감싸고 있는 기류는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教)라는 숭고한 고사를 더럽히는 탐욕의 연기처럼 보인다.
우리는 흔히 교육을 위해 거처를 옮기는 것을 맹자의 어머니에 비유한다. 하지만 맹모가 시장과 공동묘지를 떠나 학교 근처로 이사했던 본질은 환경이 인간의 성품과 학문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한 인격적 결단이었다.
반면 지금 대치동으로 향하는 행렬은 어떠한가. 그것은 성품을 위한 이주가 아니라 계급을 공고히 하기 위한 전략적 전입이다. 부모들은 아이의 행복보다 '강남 진입'이라는 훈장을 우선시한다. 낡은 아파트의 녹물과 비좁은 주거 환경을 감수하면서까지 대치동에 집착하는 이유는, 그곳이 배움의 전당이라서가 아니라 '부동산 불패'의 신화와 '학벌 카르텔'의 입구이기 때문이다.
맹모의 삼천지교가 학문을 향한 향상심이었다면, 지금의 대치동 행렬은 타인을 짓밟고 올라서려는 차별심에 가깝다. 이 과정에서 아이들의 안전과 정서는 뒷전으로 밀려난다. 이번 화재는 그 위태로운 욕망의 탑이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서글픈 경고다.
대치동의 아파트값은 단순한 주거 비용이 아니다. 그것은 성공으로 가는 급행열차 티켓값으로 치환돼 버렸다. 교육이 부동산 가격을 견인하고, 폭등한 부동산 가격이 다시 교육의 진입장벽을 높이는 기괴한 악순환이 반복된다.
이곳에서 집은 '사는(Live) 곳'이 아니라 '사는(Buy) 것'이며, 동시에 자녀의 미래를 저당 잡는 담보물이다. 강남 부동산값의 폭등은 대한민국 사회의 역동성을 죽이고 있다. 부모의 경제력이 자녀의 학벌로, 다시 자녀의 부(富)로 세습되는 구조적 모순이 대치동이라는 좁은 지리적 공간에 압축돼 나타나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교육이라는 이름 아래 거대한 자본의 성벽을 쌓고 있는 것은 아닌가 자문해야 한다.
더욱 목불인견(目不忍見)인 것은, 이 맹목적인 교육열의 틈새에서 기생하는 학원가의 몰상식이다. 최근 보도된 수능 문제 유출 사건과 일타 강사들의 유착 의혹은 우리 교육의 도덕적 파산을 선언하는 지표다. 학원은 본래 부족한 공부를 보충하는 곳이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의 대치동 학원가는 공정이라는 사회적 약속을 비웃으며, 돈으로 정보를 사고파는 밀실이 돼 버렸다. 문제를 미리 빼돌리고, 고액의 강의료를 받으며 반칙을 가르치는 행위는 지성을 기르는 교육이 아니라 승리만을 목적으로 하는 기술적 범죄에 가깝다.
한국어에서 '가르치다'의 어원은 '갈다'(磨)와 '치다'(育)에서 왔다고 본다. 마음을 갈고닦아 올바르게 기르는 것이 교육의 본질이다. 하지만 지금 대치동의 일부 학원은 아이들에게 '갈고닦는 법'이 아니라 '훔치고 가로채는 법'을 암묵적으로 가르치고 있다. 이것이 과연 우리가 그토록 찬양하는 교육 강국 대한민국에서 일어날 법한 일인가.
화재로 숨진 그 중학생은 대치동의 학원가를 보며 무엇을 느꼈을까. 밤늦도록 불이 꺼지지 않는 빌딩들, 빽빽한 가방 행렬, 그리고 부모의 압박 섞인 기대감. 그 아이에게 대치동은 기회의 땅이었을까, 아니면 숨 막히는 감옥이었을까.
우리는 아이들을 사지로 내몰고 있다. 성적이라는 단 하나의 잣대로 아이들의 가치를 매기고, 그 줄 세우기에서 이기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어른들의 탐욕이 아이들을 질식시키고 있다. 화재로 인한 비극적 죽음은 어쩌면, 우리가 만든 이 기형적인 교육 시스템이 이미 아이들의 영혼을 태우고 있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일깨워준 사건이다.
이제 멈춰 서야 한다. 부동산 가격에 일희일비하고, 문제 하나를 더 맞히기 위해 부정을 눈감아주는 이 야만적인 레이스를 끝내야 한다. 진정한 맹모라면 아이가 안전하게 숨 쉬고, 올바른 도덕성을 갖춘 인간으로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이 무엇인지 고민했을 것이다.
대치동의 화마가 남긴 잿더미 위에서 우리는 통렬히 반성해야 한다. 교육은 계급을 사는 수단이 아니며, 부동산은 인생의 목적이 될 수 없다. 의지와 상관없이 생을 마감한 아이에게 깊은 애도를 표하며, 다시는 이 땅의 아이들이 어른들의 비뚤어진 욕망 때문에 희생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지식보다 먼저 양심을, 성적보다 먼저 생명을 존중하는 사회. 그것이 우리가 회복해야 할 진짜 '삼천지교'의 정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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