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구조개선', 퇴출 아닌 체제 재설계가 중심돼야 [변기용의 교육 포커스]

변기용 고려대 교육학과 교수(고등교육정책연구소장)

편집자주 ...필자는 1991년 제35회 행정고등고시 합격 후 경북대 교무과를 시작으로 교육부의 정책 기획 부서에서 16년간 근무하면서 실제 정책을 입안했다. 2002년부터 3년간 OECD 교육국(프랑스 파리)에서 상근 컨설턴트로 국제적 프로젝트를 설계하고 수행했다. 2008년에는 고려대 교육학과 교수로 자리를 옮겨 현재 고려대 고등교육정책연구소장, 한국근거이론학회 회장, 한국교육행정학회 회장직을 맡고 있다.

변기용 고려대 교육학과 교수(고등교육정책연구소장)

새해 벽두부터 대학가는 교육부가 내놓을 구조개선 로드맵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지난달 12일 교육부는 대통령 업무보고를 통해 학령인구 급감에 대비한 '2040 대학 구조개선 마스터플랜'을 수립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2040년까지 대입 자원이 약 17만 명 감소할 것이라는 전망을 전제로, 2026년 상반기까지 마스터플랜을 수립한 이후 '사학 구조개선 심의위원회' 운영을 통해 구조 개선을 본격 추진하겠다는 흐름도 제시했다. 2026년 8월 시행 예정(10년 한시)인 '사립대학 구조개선 지원법'이 이를 추진하는 제도적 토대가 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런데 발표만으로는 아직 방향을 가늠하기 어렵다. 지금까지 공개된 내용만 보면 마스터플랜의 구체적 모습은 거의 보이지 않고, '법과 위원회'만 앞에 서 있다. 물론 법과 위원회도 필요하다. 그러나 마스터플랜이 '한계 사립대학을 어떻게 정리할 것인가'라는 집행계획으로 축소된다면, 2040년에도 한국 고등교육의 체질은 개선되기 어렵다. 지금 필요한 것은 '퇴출'이 아니라 고등교육 체질 개선을 위한 '체제 재설계'다.

최교진 교육부 장관이 지난해 12월 12일 정부세종청사에서 대통령 업무보고 후 브리핑을 하고 있다. (교육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뉴스1
4년제 대학 일변도 고등교육체제: 학위와 일자리의 미스매치

해방 이후 정부의 압축적 고등교육 팽창 전략이 남긴 구조적 유산은 '4년제 사립 일반대학 중심'의 고등교육 체제다. 학생들의 절대다수가 비슷한 학과 구성을 가진 4년제 대학으로 몰리는 구조가 굳어졌고, 그 결과 '학위와 일자리의 미스매치'가 커졌다. 굳이 4년의 시간과 고비용을 들이지 않아도 가능한 직무에 학사 학위자가 대거 진입하는 현실은 개인에게는 기회비용의 낭비를, 사회적으로는 인력 배치의 비효율을 초래하고 있다.

2040 마스터플랜은 이 문제 해결에 초점을 둬야 한다. 중장기적으로 4년제 일반 사립대 비중을 줄이고, 더 낮은 비용으로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2년제 평생직업 교육기관의 비중을 키우며, 두 체제가 '위계적 서열'이 아니라 '보완적 경로'로 서로 연결되게 만들어야 한다.

대학 간 통합: '물리적 결합'이 아니라 검증된 '화학적 통합'만

교육부가 그동안 글로컬대학 프로젝트를 통해 강조해 온 대학 간 통합도 마찬가지다. 통합은 간판을 하나로 묶는 '물리적 통합'이 아니라, 교육·연구 경쟁력이 실제로 올라가는 '화학적 통합'일 때만 의미가 있다. 앞으로의 통합 정책은 ①통합 목적과 효과가 사전에 설득 가능하고, ②효과가 검증되는 경우에만 추진하며, ③대학이 처한 여건에 따라 다양한 통합 모델을 자율적으로 설계하도록 하는 방향으로 바뀌어야 한다. 이미 통합된 대학에는 단기 성과를 재촉하기보다 적절한 지원과 함께, 중장기 성과 중심의 사후 평가와 모니터링을 지속해야 한다.

5극 3특: '공유'에서 시작하자

이재명 정부가 강조하는 '5극 3특' 권역별 상생 전략을 고등교육에 적용하려면, 대학 간 역할 분담과 연계·협력 체제를 구체적으로 제시할 필요가 있다. 그 출발점은 '공유'다. 권역별로 기초교양 교육과정과 강사·시설을 공유하는 '기초교양대학'(공동 교양 플랫폼)을 구축해 비용 부담을 낮추고, 각 대학은 강점 전공 중심의 특성화로 전환하도록 유도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대학 전체 통폐합만 고집하기보다 일본의 사례를 참조해 학과 단위 교환과 이전 등 '부분 구조개선'도 가능하도록 제도적 선택지를 넓혀야 한다.

편입 사다리를 튼튼히: 2년제-4년제 연결이 핵심이다

대학 간 역할 분담과 연계·협력을 통한 저비용·고효율 체제의 완성은 '이동성'에 달려 있다. 2년제 평생직업교육기관에서 배운 사람이 필요할 때 4년제 대학으로 자연스럽게 이동할 수 있어야 한다. 지금처럼 편입 정원이 매우 낮은 수준으로 묶여 있는 규제를 과감히 혁파해, 특히 지방대학의 경우 신입 정원 감축분의 상당 부분을 3학년 편입 정원으로 전환해 운영할 수 있도록 해 줘야 한다. 편입을 촉진하기 위해 권역 단위 표준화된 공통 교양 경로, 공통 강좌번호, 국가 차원의 편입 정보 포털 구축 등 '편입 인프라'를 함께 갖춰야 한다. 그래야 2년제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 된다.

폐교로 방치된 한 사립대 건물. /뉴스1 ⓒ News1 문요한 기자
'마중물 펀드'로 살릴 대학은 살리고, 정리할 대학은 정리하자

마지막으로, 구조 개선은 냉정해야 하지만 동시에 정교해야 한다. 대학이 문 닫을 때 지역 경제에 엄청난 파급효과를 미치는 점을 감안할 때 회생 의지와 역량이 있는 '경계선 대학'에는 기회를 한 번 더 주는 장치가 필요하다.

예컨대 RISE(지역혁신중심 대학지원체계) 재정지원 사업 등에서 아깝게 탈락한 대학 중 자구노력 계획이 설득력 있는 곳을 예비 후보로 선정해, 선정 대학의 10~20% 수준이라도 재정을 지원하고 추후 중간평가로 성과를 검증하는 '마중물 펀드'가 대안이 될 수 있다. 반대로 생존 가능성이 희박한 대학은 학생·교직원 보호와 지역 충격 완화를 전제로 하루라도 빨리 질서 있게 정리해야 한다.

2026년 대학 구조개선 마스터플랜은 대학의 '숫자'를 줄이는 계획이 아니라 고등교육의 '구조와 체질'을 바꾸는 설계도여야 한다. 퇴출은 수단일 수 있어도 목표가 될 수는 없다. 2040년을 제대로 대비하려면, 이제는 비전 없는 정리보다 발전을 위한 재설계를 중심에 놓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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