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직 만족도 최하위, 교육 붕괴 알리는 경고음 [전문가 칼럼]

오세목 대구가톨릭대 특임교수(전 중동고 교장)

오세목 대구가톨릭대 특임교수(전 중동고 교장)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최근 발표한 '교원 및 교직 환경 국제 비교 조사(Teaching and Learning International Survey·TALIS) 2024' 결과는 우리 교육의 현주소를 여실히 드러냈다. 한국 교사의 직무 만족도는 조사 대상 45개국 중 최하위권, 교직에 대한 사회적 존중 인식도 역시 바닥 수준이다. 교육의 질을 떠받치는 핵심축이 교사임을 생각하면, 이번 결과는 단순한 통계가 아니라 교육 붕괴의 전조로 읽힌다.

OECD 조사에서 한국 교사 만족도 최하위 기록

한국의 교사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 일하면서도 가장 피로한 직업군으로 꼽힌다. TALIS 조사에 따르면, 한국 교사는 주당 근무시간이 가장 많고, 행정업무 부담이 교과 수업 준비나 학생 지도보다 훨씬 크다. 수업 외에도 공문 처리, 민원 응대, 각종 평가와 행사 준비까지 떠안으며 '교육자'가 아닌 '행정 노동자'로 전락하고 있다. 그 결과 "교직을 후회한다"거나 "가능하다면 떠나고 싶다"고 응답한 비율이 가장 높았다. 이는 단순한 교사의 개인적 불만을 넘어 국가 교육시스템의 구조적 피로를 방증한다고 볼 수 있다.

ⓒ News1 김지영 디자이너

교사는 교육의 첫 번째이자 마지막 책임자다. 한 교사가 어떤 자세로 학생을 대하고, 얼마나 에너지를 쏟느냐에 따라 한 아이의 인생 궤도가 달라질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의 현실은 교사에게 '헌신'을 요구하면서도 그 헌신을 존중하지 않는다. 학생과 학부모, 행정 기관, 심지어 사회 전체가 교사를 비판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분위기 속에서 교직의 자긍심은 무너지고 있다. "선생님이 행복해야 아이가 행복하다"는 교육의 기본 진리가 외면받는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낮은 만족도가 단순히 교사의 사기 저하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교사의 피로와 무력감은 곧 학생의 학습 환경과 교육의 질 저하로 이어진다. 최근 학생 생활지도의 약화, 수업 몰입도 저하, 학급 붕괴 현상 등은 모두 교사들이 감당해야 할 과중한 역할과 낮은 사회적 지위가 결합한 결과다. 결국 TALIS 2024가 보여준 것은 '교사 개인의 불행'이 아니라 '교육 공동체에 대한 경고'다.

과도한 행정업무·낮은 신뢰, 교육 질 저하로 이어져

이제 필요한 것은 비판이 아니라 교사의 자긍심을 다시 세우는 사회적 투자다. 첫째, 행정 부담을 줄이고 교과·생활지도 중심의 근무 환경을 만드는 일이 시급하다. 현재 교사가 처리해야 하는 각종 공문, 평가 보고서, 행정업무의 상당수는 교육의 본질과 무관하다. 교육부와 시도교육청은 '교사 행정업무 제로화 로드맵'을 마련하고 행정 인력과 디지털 시스템을 적극 투입해야 한다. 교사가 아이를 돌보는 시간에 행정 업무와 씨름해서는 교육이 살아날 수 없다.

둘째, 교사의 전문성 강화를 위한 장기적 지원 시스템이 필요하다. 핀란드·에스토니아 등 교육 선진국들은 교사를 단순한 지시 수행자가 아닌 '전문 연구자'로 대우한다. 수업 혁신이나 교육 실험을 위한 연구 시간을 보장하고 교사 스스로 정책 개선에 참여할 권한을 준다. 우리도 교사 연수의 형식적 의무화를 넘어 현장 중심의 연구·실험 지원 제도를 강화해야 한다. 교육은 매뉴얼로 이뤄지지 않는다. 교사가 스스로 배우고 성장할 때만 진짜 교육 혁신이 가능하다.

서울 서이초 교사 49재 추모일을 '공교육 멈춤의 날'로 정한 2023년 9월 4일 서울의 한 초등학교 교실이 텅 비어 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함) / 뉴스1 ⓒ News1 신웅수 기자
교사의 자긍심 회복을 위한 투자 시급

셋째, 우리 사회 전체가 교사를 존중하는 문화를 다시 세워야 한다. 교권 보호는 단순히 교사를 보호하는 일이 아니라 교육의 지속 가능성을 지키는 일이다. 학생의 인권과 교사의 권위는 대립이 아니라 균형의 문제다. 교사가 학생에게 신뢰받을 수 있도록 명확한 권한과 책임을 부여하고 학부모 민원에 휘둘리지 않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학교는 '고객 만족 기관'이 아니라 교육의 전문성을 존중받는 공적 공간이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정부의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교사 만족도를 높이는 일은 단순한 복지나 처우 개선의 문제가 아니다. 국가 경쟁력의 토대는 인적 자원이며, 인적 자원의 시작은 교육이다. 교사가 행복하지 않은 나라에서 창의적 인재가 자랄 리 없다. 교육 예산을 단순히 '비용'이 아닌 '투자'로 인식하고, 교사 복지·연구·휴식 제도를 국가 전략 차원에서 설계해야 한다.

TALIS 2024의 메시지는 명확하다. 한국의 교사는 지쳐 있다. 그러나 여전히 교실의 불을 끄지 않고 학생을 향한 책임감으로 버티고 있다. 이들의 열정이 꺼지기 전에 사회가 응답해야 한다. 교사의 만족은 곧 학생의 성장이고, 교육의 신뢰다. 지금 우리가 살펴야 할 것은 교사의 '업무 태도'가 아니라 교사가 설 수 있는 '자리'다. 교사를 지켜야 교육이 산다.

opinion@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