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조직개편 첫 과제는 전문대·폴리텍대 엇박자 [변기용의 교육 포커스]
변기용 고려대 교육학과 교수/고등교육정책연구소장 = 새 정부의 정부 조직 개편 논의가 본격화하는 지금, 고등 직업교육 현장에서는 낯설지 않은 풍경이 되풀이되고 있다. 지역 전문대학은 학령인구 감소로 존폐의 기로에 서 있는데, 한국폴리텍대학의 지역 캠퍼스는 바이오·항공·반도체융합·로봇 등 각종 특성화를 내세우며 확장되고 있다.
직업교육의 목적이 '학생과 지역사회'에 있다면, 이 같은 자원 배분과 제도 설계가 과연 공익에 부합하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누가 더 가져가느냐'의 제로섬을 넘어, 같은 목표를 향한 정부의 제도들이 왜 서로 다른 레일 위에서 따로 달려야 하는가. 이번 조직 개편이 답해야 할 첫 번째 질문이다.
한국폴리텍대학이 지향하는 고등 단계 직업교육은 교육부 소관 전문대학이 수행해 온 기능과 본질적으로 중복되는 부분이 많다. 산업현장 중심 인력 양성, 실습 연계 직무 교육, 지역 산업체와의 협업이라는 캐치프레이즈도 유사하다. 따라서 추진해야 할 정책 방향은 명확해 보였지만, 현실은 정반대로 전개됐다.
2010년대 이후 전문대학 구조조정과 폐교 논의가 이어지는 동안 폴리텍대학은 지역 캠퍼스를 꾸준히 늘렸다. 물론 새로운 캠퍼스가 필요하다면 만들 수 있겠지만, 이미 지역에 존재하는 전문대학 인프라, 특성화고 공동실습소 등 공공 자원을 먼저 충분히 활용해 중복을 줄이고 효율을 높이는 것이 기본 원칙이 돼야 했었다.
2022년 기준으로 교육부 소관 전문대학 134개교에 4000여억 원이 투입됐지만 고용노동부 소관 폴리텍대학 34개 캠퍼스에는 3200억 원 정도가 투자됐다. 절대액만 보면 전문대 지원 규모가 크지만, 단위 기관당 투입 액수를 감안하면 폴리텍대학 쪽이 훨씬 많다.
보다 큰 문제는 유사한 목적의 고등 직업교육을 두 부처가 나눠 집행·관리하면서 설립과 예산, 성과 관리가 따로 움직이고, 그 결과 정책의 시너지 효과가 줄어들 수밖에 없는 구조로 움직이고 있다는 데 있다. 이런 엇박자를 바로잡는 일이 새 정부 조직개편의 명분이자 원칙이 돼야 한다.
현재 교육부는 전문대학과 직업계 특성화고를, 고용노동부는 한국폴리텍대학과 기술 대안 고등학교인 다솜고등학교를 관장한다. 정부를 감시하는 국회 또한 교육위원회와 환경노동위원회로 나뉘어 있다. 이에 따라 유사한 정책을 시행하고 있는 양 부처 간 협조와 정책 연계·조정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2000년대 들어 전문대는 지속해서 '퇴출 압박'을 받는 데 유사한 기능을 가진 폴리텍대는 새로 '증설'되는, 어처구니없는 정책 부조화는 바로 이 할거주의의 산물이다.
여기서 중요한 질문 하나를 던져 보자. "어차피 취업도 되지 않는데, 모든 고교 졸업생이 비싼 4년제 사립 일반대학에 가는 것이 반드시 옳은 일일까?" 한국은 직업교육·훈련 부문에서 사립의 부담이 유난히 높은 나라다. 학습자 관점에서 부담해야 하는 비용이 높다는 이야기다. 따라서 지역과 산업 현장의 수요에 맞춘 저렴하고, 접근 기회가 높은 직업교육 경로를 다층적으로 깔아 주지 않으면 결국 학생들은 학비만 많이 들고 실제 취업은 되지 않는 비효율을 겪을 수밖에 없게 된다.
사실 학생들의 입장에서 중요한 것은 '내가 다니는 학교의 담당 부처가 어딘가'가 아니라 '내가 원하는 교육을 원하는 장소와 시간에,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의 비용으로 받을 수 있는가'다. 대학 졸업자가 취업을 위해 다시 전문대학에 진학하는, 이른바 '유턴(U-turn) 현상'은 사회적 관점에서 나타나는 체제 비효율을 웅변으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2025년부터 본격 도입된 RISE 체계(지역혁신중심 대학지원체계)는 지자체가 고등교육의 한 축을 맡도록 한 중요한 제도적 변화였다. 하지만 지역에서도 중앙 부처 간에 만연한 할거주의가 그대로 유지된다면, 새로 출범한 RISE도 반쪽짜리 개혁에 그칠 가능성이 커진다.
이런 우려를 불식하기 위해서는 지역 RISE 체계를 하나의 플랫폼으로 하여 전문대와 폴리텍대, 특성화고와 다솜고 등 양 부처가 가진 수단을 지자체가 지역 실정에 맞게 다시 기획하고 운영하도록 해야 한다. 오랜 기간 동안 중앙정부에 드리워졌던 강고한 칸막이를 정책이 실제 집행되는 지자체에서 걷어낼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다. 학생·주민·지역 기업의 실제 수요를 현장에서 체감하면서 그 수요에 맞춰 학생과 주민들의 교육·훈련과 취업 지원을 연계·제공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지자체이기 때문이다.
지역에는 이미 오랜 경험과 역량이 있는 다양한 교육기관과 인적·물적 자원이 있다. 권역별로 존재하는 전문대학, 특성화고와 공동실습소, 지자체 산하 직업교육 거점 등이 그것이다. 지역에 새로운 폴리텍대 캠퍼스를 짓기보다 기존에 존재하는 인프라를 '연결'해 부족한 부분을 먼저 보완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생존이 어려운 지역 전문대학은 지자체 주도로 '폴리텍대화'하는 선택지도 함께 검토할 필요가 있다. 재정은 고용노동부의 고용보험기금을 적극 활용하되 지자체 자체 재원과 교육부에서 이관한 대학 지원 재정을 함께 활용하면 된다. 중요한 것은 누구의 재원을 '어디서 가져왔는가'가 아니라 학생과 주민들의 성공적 직업교육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공적 자금이 효과적으로 쓰이고 있는가에 있다.
필자의 공직 경험으로 볼 때 부처가 나뉘어 있는 한 관련 정책이 제대로 조율되기는 매우 어렵다. 부처 간 할거주의의 뿌리는 그만큼 깊고, 넓다. 이를 해결하는 가장 간명한 방법의 하나는 사실 하나의 부처로 관련 기능을 통합해 버리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전문대학과 한국폴리텍대학의 소관 부처를 하나로 조정하는 방안은 충분히 검토할 가치가 있다. 과거 교육부 소관의 한국학술진흥재단(인문사회·기초학문 연구 지원)과 과학기술부 소관의 한국과학재단(이공계열 연구 지원)을 한국연구재단으로 통합해 시너지를 낸 사례도 존재한다.
연계와 통합을 통한, 이 같은 시너지 효과 창출이 바로 이재명 정부 조직개편의 첫 번째 원칙이 돼야 한다. 부처의 이해가 아니라 학생과 사회의 이익을 기준으로, 판을 새로 짤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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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필자는 1991년 제35회 행정고등고시 합격 후 경북대 교무과를 시작으로 교육부의 정책 기획 부서에서 16년간 근무하면서 실제 정책을 입안했다. 2002년부터 3년간 OECD 교육국(프랑스 파리)에서 상근 컨설턴트로 국제적 프로젝트를 설계하고 수행했다. 2008년에는 고려대 교육학과 교수로 자리를 옮겨 현재 고려대 고등교육정책연구소장, 한국근거이론학회 회장, 한국교육행정학회 회장직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