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성 학교 민원인 대응책 [박남기의 미래 나침반]
박남기 광주교대 명예교수 = 2023년의 '서이초 사건' 이후에도 제주, 경기 화성 등 여러 곳에서 악성 민원으로 인한 교사 사망과 휴직, 퇴직이 증가하고 있다. 학생들의 학습권을 침해하고, 교사를 정신적으로 피폐하게 하는 악성 민원인 대책이 현장에서 체감할 수 있는 수준으로 실효성 있게 마련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러한 사태는 자칫 공교육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
'악성 민원인'은 법률상 용어는 아니다. '민원처리법'과 같은 법 시행령 등을 토대로 유추하면, 악성 민원인이란 폭언·폭행, 무기·흉기 등 위험한 물건의 소지, 목적이 정당하지 아니한 반복·중복 민원 제기를 통한 공무 방해 행위, 그 밖에 다른 민원인이나 담당자에게 신체·정신적 피해를 주는 행위, 부당한 요구 등의 행위자를 의미한다.
악성 학교민원인은 악성 민원인에 더해 다음 행위자까지 포함한다. '교원지위법'에 따르면 '다양한 법률에서 형사 처벌 대상으로 규정한 범죄 행위로서 교원의 교육활동을 침해하는 행위', ‘교원의 교육활동을 부당하게 간섭하거나 제한하는 행위로서 법 규정에 정한 행위' 등을 한 자를 의미한다.
여기서 말하는 교육활동 부당 간섭 및 제한 행위는 목적이 정당하지 아니한 민원을 반복적으로 제기하는 행위, 교원의 법적 의무가 아닌 일을 지속해서 강요하는 행위, 정당한 교육활동에 반복적으로 부당하게 간섭하는 행위, 기타 교원의 전문적 지위나 신분에 영향을 미치는 부당한 간섭 등을 포괄적으로 의미한다. 악성 학교민원인은 형사처벌 대상인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도 대별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는 형사처벌 대상으로 규정한 범죄 행위를 교원을 대상으로 행하더라도 교육자로서의 자기검열, 법적 지식과 경험 부족, 학교 문화, 도움 요청에 대한 지원 미비 상황, 학생의 처지 감안 등 다양한 이유로 피해 교원 혼자서 감내해 왔다.
이제는 학교와 교원이 이를 곧바로 신고할 필요가 있다. 학교민원인의 범죄 행위를 감내하면 해당 교원과 관련 학생만 피해를 보는 것이 아니라 악성 학교민원인을 확대 재생산하게 된다. 물론 가해자에게 사전 고지와 경고 등의 조치는 해야 할 것이다.
형사처벌 대상은 아니지만 악성 학교 민원으로 구분되는 행위를 한 사람에 대해서는 '교원지위법'에 따른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하다. 학교의 장은 악성 학교민원인의 행위로 교원의 교육활동이 침해된 경우에는 지역교권보호위원회에 알려야 한다.
그런데 동 위원회의 조치는 서면사과 및 재발 방지 서약, 교육감이 정하는 기관에서의 특별교육 이수 또는 심리치료에 불과하다. 이 정도의 조치는 악성 민원인에게 교원을 감정쓰레기통으로 활용하라고 조장하는 역효과를 불러올 수 있다.
교사의 교육활동 침해와 심리적 고통에 상응하는 수준으로 실효성 있는 조치가 취해지도록 법 개정이 이뤄져야 할 것이다. 교권보호위원회에도 교직단체가 추천하는 교원 비율을 높여 교원의 관점이 균형 있게 반영되게 해야 한다. 동 위원회 위원으로 추천되면 학교장은 근무시간 중에라도 해당 교사의 참여를 허용하고, 필요한 보완 조치를 하도록 규정할 필요가 있다.
악성 민원에 의한 교원의 고충과 교육목적 달성 곤란 문제를 완화하기 위해 정부는 2024년 12월 '초중등교육법' 개정을 통해 '학교 민원 처리 계획의 수립·시행 등'에 대한 조항을 신설했다.
이에 따라 교육부 장관이 학교 현장의 실정과 특성에 맞춘 학교 민원 처리의 방법과 절차를 마련하고, 학교 민원 처리를 위한 행·재정적 지원 방안 등을 마련할 것으로 기대된다. 교육감은 학교 민원을 처리하는 교직원 등에 대한 보호 방안 마련, 학교 민원 처리를 위한 행·재정적 세부 지원 방안을 마련할 것이다. 학교의 장은 이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을 학생·보호자에게 정기적으로 안내하게 돼 있다.
법이 발효된 지 얼마 되지 않은 탓인지 법이 정한 인력과 행·재정적 지원책이 제대로 마련되지 못하고 있다. 2024년 기준 전국 176개 교육지원청의 교육활동보호센터 상주 인력은 187명에 불과하다. 학교 차원에도 민원 처리 예산 확보, 전담 인력 배치 등의 조치가 이뤄져야 할 것이다. 이를 책임지고 있는 교육부와 교육청 담당자, 교육장 및 교장 대상 악성 민원 대응 역량 강화 연수도 필수적이다.
악성 민원 사태 악화 경로는 학생과 보호자에 의한 교육활동 침해나 불합리한 요구, 이에 대응한 교권보호위원회 개최, 보복 차원의 아동·학생 신고 또는 고소 등의 과정을 거친다. 이 고리를 끊으려면 교사가 요청할 경우 민원 처리 절차에서 교사 즉시 제외, 악성 민원인 대상 교육청과 학교의 적극적인 고발, 교원 대상 아동학대 신고 사안에 대한 별도 절차 마련 등이 필요하다.
악성 학교 민원인 대책 마련의 궁극적인 목적은 교원 보호와 더불어 학생 교육이다. 악성 민원인 탓에 법 절차를 통한 해결을 시도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부닥쳐 있다. 하지만 민원인과 학교가 지속해서 접촉·소통하고 협력해야 교육은 성공할 수 있다. 이러한 학교 상황에 적합한 악성 민원 대처법을 탐색해야 할 것이다. 학교와 교육청은 학부모들이 교육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고 상호 배려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제도와 문화를 만들어 가는 데 앞장서기를 기대한다.
미국 피츠버그대에서 교육정책학 박사를 취득했고 국가인재경영연구원 교육분과 위원장을 맡고 있다. 광주교대 총장, 한국교육행정학회장, 대한교육법학회장, 한국교원교육학회장 등을 역임했다. 최고의 교수법, 리더십 등을 주제로 1000회 이상의 강연을 통해 세상과 소통을 이어가고 있다. 저서로는 실력의 배신(2018), 생성 AI 시대 최고의 교수법(2024) 등 20여 권이 있고, 100여 편의 논문과 1000편 이상의 각종 칼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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