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범생의 역설…'부동산 투기학'을 정규교과로 편성하라! [변기용의 교육 포커스]

편집자주 ...필자는 1991년 제35회 행정고등고시 합격 후 경북대 교무과를 시작으로 교육부의 정책 기획 부서에서 16년간 근무하면서 실제 정책을 입안했다. 2002년부터 3년간 OECD 교육국(프랑스 파리)에서 상근 컨설턴트로 국제적 프로젝트를 설계하고 수행했다. 2008년에는 고려대 교육학과 교수로 자리를 옮겨 현재 고려대 고등교육정책연구소장, 한국근거이론학회 회장, 한국교육행정학회 회장직을 맡고 있다.

변기용 고려대 교육학과 교수/고등교육정책연구소장

교과서대로 살았더니 내가 바보?

초등학교 시절부터 '모범생'이라는 칭찬을 달고 살았다. 서울대를 졸업하고 행정고시에 합격했으며, 미국에 유학까지 다녀와 박사 학위까지 따냈다. 부모님도, 은사님도, 사회도 나를 '성공한 공붓벌레'라 불렀다. 그런데 정작 내 통장 잔고와 자산 목록을 들여다보면, 30년 전 장만한 서울 외곽 아파트 한 채가 전부다. 그마저도 '거주 목적'이니 팔아서 차익을 실현할 계획도 없다.

반면 대학 동기 A는 졸업 후 취업 대신 부동산 공부에 매달렸다. 2년 만에 전세 끼고 빌라를 샀다더니, 5년 만에 '실패'라며 팔고 아파트 2채로 갈아탔다. 지금 그는 '자산가'라 불린다. 그가 내 어깨를 툭 치며 하는 말. "네가 학교에서 배운 건 '집을 사면 안 된다'가 아니라 '집을 안 사면 안 된다'였어." 그 순간 깨달았다. 교과서에 없는, 그러나 시장에서는 필수인 '부동산 투기(투자?)' 과목을 우리는 한 번도 배운 적이 없었다는 사실을.

주택은 거주 공간?…부동산 투기는 나쁜 일?

내가 다닌 학교에서는 집을 거주 공간이라 가르쳤다. 투기성이 개입되면 서민 주거가 불안해지니 '절대 투기 목적 부동산 구매 금지!'가 정답이었다. 나는 시험마다 그 정답을 적었고, 덕분에 대부분 상위 1%를 지켰다. 그러나 현실 시험지엔 다른 답이 적혀 있었다.

[정답 A] "집은 거주 공간이 아니라 자산이다."

[정답 B] "자산은 불어나는 것이 미덕이다."

[정답 C] "미덕 실천 방법: 레버리지+갭투자+현금 흐름 설계"

이 세 줄을 맞히면 벼락같이 오르는 집값이 보너스 점수로 따라왔다. 틀리면? 30년 뒤의 나처럼 '가방끈은 길지만 집 끈은 짧은' 서글픈 캐릭터로 남는다.

정부의 의도 vs 시장의 반응

살아가면서 나는 정부의 수많은 부동산 대책 보도자료를 접해 왔다. 이 문건에는 '투기 억제', '가격 안정', '필요하면 세금 폭탄' 같은 문구가 기계적으로 담겨 있었다. 정책 발표 날이면 기자들은 정부 당국자에게 물었다. "이번에는 정말 잡힙니까?" 정부는 "네, 잡힙니다"라고 답하지만, 시장은 뒤에서 조용히 웃고 있는 것 같다.

2025년 새로 출범한 이재명 정부도 지난 6월 27일 부동산 대책을 내놓았다. 핵심은 수도권, 규제 지역의 주택담보대출(주담대)을 일괄 6억 원으로 제한하고, 2주택 이상 보유자의 추가 주담대를 전면 금지하는 초강도 '대출 옥죄기'다. 이번에는 과연 효과가 있을까? 대출 규제만으로는 현금이 넉넉한 투자자에게 더 유리한 '현금 경기'가 펼쳐질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 전망대 서울스카이에서 바라본 시내 아파트 단지 모습. /뉴스1DB ⓒ News1 오대일 기자
월급은 세금으로, 집값 상승분은 면세(?)로

직장을 다니면서 경력이 쌓이는 만큼 내게 적용되는 소득세율도 매년 올라간다. 세율이 매년 올라가는 만큼 내 월급 액수는 눈에 띠게 홀쭉해진다. 반면 부동산 공시지가는 현실 반영을 미루기 일쑤다. 실거래가가 수억 원 뛰어도 '조세 형평'이라는 말은 늘 후순위다. "집 한 채밖에 없는데 세금까지 올리면 어떡해요?" 맞다, 실거주 1주택자의 세 부담은 고려해 줄 수도 있다.

하지만 1주택자라고 하더라도 오른 집 가격에 따른 과도한 세금은 기본적으로 납부를 유예해 주되, 차익을 실현하는 경우는 매입가와 매도가를 정확히 반영해서 과세하는 방법도 있다. '전산 시스템 발달' 운운하며 의료급여 연동까지 해내는 나라가 왜 부동산 세금만큼은 계산기 두드리기를 망설일까?

이것이 어렵다면 최소한 2채부터는 '투기인지 투자인지' 묻지 말고 차액에 정직하게 과세하자. 그러면 투기를 위한 과잉 수요도, 시장 왜곡도 상당 부분 잦아들 것이다. 물론 건설사와 다주택을 가진 힘센 기득권층의 로비 파도가 몰아칠 테지만, 아이들에게 '정의'를 가르치려면 그 정도 파도쯤은 맞서야 하지 않을까?

60년 모범생 인생, 교과서 바꿀 시간?

나처럼 '공붓벌레+직장인+교수' 삼합을 60년간 지켜도 자산 포트폴리오가 풍성해지지 않는 이유는 단순하다. 교과서가 자산 증식 기술을 숨겨 놓았기 때문이다. 학생들에게는 '학력'만, 시장에는 '자산'만 요구하면서 말이다.

이쯤에서 급진적 제안 하나. '부동산 투기학'을 정규 교과로 편성하라! [초·중등] "의식주와 시장의 관계 - 주택 구매는 주거보다는 자산 증식이 목적이다" [대학 교양 필수] "주택담보대출 ABC" "갭투자 실습" "다주택 포트폴리오 전략"

물론 하도 답답해하는 말일 수도 있다. 그러나 현실을 직시하자. 부동산 투기가 자산 증식의 중요한 수단이 될 수밖에 없는 사회 구조라면 차라리 투기(투자?) 기술을 가르쳐서 시장 논리에 제대로 대비시키는 편이 솔직한 교육 아닐까?

투기는 나쁜 것 vs 모르면 나쁜 것?

물론 나는 아직도 '집은 사는 곳'이라는 교과서 문장이 좋다. 그러나 나이 육십에 어쩔 수 없이 터득할 수밖에 없었던 또 다른 문장. "집은 사서 버텨야 하는 곳." 교과서가 현실을 따라오지 못하면 모범생은 지식인이 아니라 호구가 된다. 교실에서 입으로만 정의를 외치기보다 가지지 못한 자를 위한 정의가 시장에서 이길 수 있도록 제도를 명확히 뜯어고치든, 그렇게 하지 못할 것이라면 학교 교육을 현실에 맞게 뜯어고치든, 둘 중 하나는 명확히 해야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번 달 칼럼을 마치며 이재명 정부에 묻는다. 정말 '집은 사는 곳'인가? '부동산 투기는 잘못된 것인가?' 이에 대한 정부의 답이 명확히 준비되어 있지 않다면, 차라리 앞으로는 학교에서 우리 아이들에게 부동산 투기를 가르칠 준비를 하는 것이 보다 현실적인 대안이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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