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의 확장] 건축 정치의 끝판왕-건축의 파괴
북한의 '파괴'에는 정치적 계산 깔려 있어
의연하게 대응해야 '새로운 관계' 설정 가능해
(서울=뉴스1) 임동우 홍익대 건축도시대학원 교수/프라우드 건축사무소 공동 소장 = 얼마 전 듣고 싶지 않은, 들려서는 안 되는 소식이 전해졌다. 북한이 개성에 있었던 남북 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시킨 것이다. 이후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회고록이 유출되면서 남북관계의 시계는 다시 2018년 이전으로 돌아간 것 같다.
희망이 크다면 실망도 큰 법. 지난 몇 년간 온 국민이 남북관계 진전에 품은 희망은 대단히 컸고,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북한의 최근 행보에 대한 충격과 실망도 더 큰 것 같다. 동시에 얼마 전까지도 심심치 않게 우리에 대한 무력 도발을 감행하던 체제가 북한이었다는 사실을 새삼 인식하는 계기도 됐다.
이 사건을 두고 많은 전문가들이 다양한 해석을 내놓고 있다. 본인은 남북 정세 관련한 전문가는 아니기에, 그리고 본 섹션이 조금 다른 시각으로 북한을 이해하는 '시선의 확장'이 주목적이기에 좀 다른 시각으로 이번 사건을 보려 한다.
북한은 대대로 '건축 정치'를 해왔다. 상징적인 건축물의 건립을 통한 체제의 우수성을 증명하기 위함이던, '빠른' 공사로 주택을 공급해 이를 이데올로기 선전에 이용하기 위함이던, 북한이 추구하는 건축는 정치적 판단이 들어가 있다.
때문에 평양의 가장 중요한 도시공간인 김일성 광장에 인민대학습당을 건립하며 전통적인 건축양식을 도입해 민족의 우수성을 고취했으며, 천리마 속도를 넘은 만리마 속도의 주택공급으로 정권의 우수성을 나타내고자 했다. 이는 북한 지도자들이 현지지도(시찰)에서 언급하는 내용과도 일치한다.
지난해 10월에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금강산을 찾았다. 그는 현지의 위락 시설들에서는 민족성이라는 것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며 건축미학적으로 심히 낙후되고 건설장의 가설건물을 방불케 한다고 지적했다. 지금은 남북 공동연락사무소의 폭파 때문에 이러한 언급이 기억에서 흐려졌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이에 대해 남측에서 다양한 해석이 나왔다. 많은 전문가들은 금강산 관광을 재개하고 싶어 하는 김 위원장의 심정이 드러난 것이라 판단했다.
건축계에서의 시각은 이와 조금 달랐다. 건축가들은 김 위원장의 이야기가 표면적으로는 틀린 말은 아니라고 입을 모았다. 실제 1990년대 말, 2000년대 초에 개발된 금강산 관광 관련 시설들을 보면 우리의 1970~80년대에 지어진 것 같다.
별다른 마감도 없이 콘크리트로 값싸게 지은 시설들은 당시에도 시대에 뒤떨어져 보였는데, 20여 년이 지난 지금 봤을 때는 오죽하겠는가. 때문에 김 위원장의 발언을 보고 남측의 많은 건축가들은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다. 아마도 올해 들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등으로 경제 상황이 많이 악화되지만 않았다면, 북한은 금강산의 남측 시설들부터 철거했을 것이다.
사실 건물을 철거하는 데는 돈이 많이 든다. 폭파 역시 그렇다. 하지만 그러면서까지 김 위원장이 남측의 주도로 지어진 건물의 철거를 언급하는 것은 정치적 계산이 밑에 깔려있기 때문이다. 고민 없이 지은 남측의 건물보다 우리가 지은 건물이 훨씬 더 위대하다는 것을 북한 주민들에게 각인시킬 수 있는 것이다. 특히 '파괴'라는 방식은 뇌리에 강렬하게 각인된다.
우리는 지난 2001년 9·11 사건 때 뉴욕의 세계무역센터(쌍둥이 빌딩)가 무너지던 장면과 1995년 국립중앙박물관(구 일본 총독부 건물)의 철거를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건축물이 준공될 때의 감동보다 철거 혹은 파괴될 때의 심리적 충격이 훨씬 더 큰 것이 사실이다.
"우리 민족의 언어와 역사를 말살하고 겨레의 생존까지 박탈했던 식민 정책의 본산 조선총독부 건물을 철거하여 암울했던 과거를 청산하고 민족의 정기를 바로 세워 통일과 밝은 미래를 지향하는 정궁 복원 작업과 새 문화 거리 건설을 오늘부터 시작함을 엄숙히 고합니다."
구 총독부 건물 철거 당시 문화체육부 장관의 낭독사다. 단어와 표현이 다르고, 실제 사안도 다르지만 굳이 비교하자면 북한이 "남측의 흔적을 청산하고 새로운 금강산 관광시대를 시작"하겠다고 말하는 그 정치적 의도와는 맥이 닿아 보인다. 우리도 당시에는 총독부 건물의 해체를 통해 일본은 물론 온 국민에게 새로운 시대를 각인시키고자 했던 '건축 정치'의 한 수를 놓았던 것이다. 이렇게 건축 정치란 건물을 짓는 것뿐만 아니라 해체하는 행위도 포함한다.
헌데 남측의 흔적을 청산한다는 계획이 급속도로 뒤바뀐 최근 정세 때문에 금강산에서 개성으로 옮겨간 것 같다. 금강산은 새로운 관광 상품의 개발이라는 후속 조치가 있어야 하는 반면, 남북 공동연락사무소는 북한 측에서 특별히 더 조치해야 할 사안이 없다. 아마 북한은 잔해도 제대로 처리하지 않고 있을 것이다.
이는 남측에 던지는 메시지임과 동시에 내부적으로 주민들에게 무언가를 보여 주기 위한 정치적 결단이다. 북한은 정치, 사회, 경제, 문화 모든 분야에서 자력갱생을 가장 중요한 원칙 중 하나로 추구하고 있다. 공동연락사무소 폭파를 통해 주민들에게 남측과의 관계를 끊더라도 우리는 생존할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다짐시킨 것으로 해석된다.
이렇듯 북한은 건축을 통한 정치를 잘 활용하고 있다. 그것은 해체, 철거, 폭파를 수반한다. 그렇다면 우리의 대응은 어때야 할까. 우리도 건축 정치를 펼쳐야 한다. 북한의 인민이, 군 간부가, 당국이 볼 때 기가 죽을 정도의 세련된 건축을 해야 한다.
북한은 금강산의 남측 시설들을 모두 헐어내더라도 '금강산 아난티 골프 & 온천 리조트'는 유지할 가능성이 크다. 높은 수준의 건축가가 설계한 미감 있는 건축물이기 때문에 북한도 이를 파괴할 명분을 찾기 힘들 것이다. 만일 우리가 북한에 어떠한 시설을 짓게 된다면 특별히 더 수준 높은 건축을 하는 것이 그들의 논리로서 그들을 공략하는 방법이 될 것이다.
반대로 건축의 해체 앞에서는 의연한 태도가 필요하다. 앞으로도 남측의 자본이 들어간 건축에 대한 폭파 혹은 해체가 이루어질 수도 있다. 우리는 최대한 침착하게 대응해야 한다.
공동연락사무소를 운영하지 않아도 남북대화는 새로운 국면으로 끌고 갈 수 있다. 북한이 이를 폭파한 이유는 남북 양측의 시민들에게 이미지를 각인시키기 위해서다. 그러면 일종의 트라우마가 생기게 되고, 그것이 곧 건축 정치의 효과이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이번 공동연락사무소의 파괴를 연락사무소의 기능 상실 그 이상의 의미로 볼 필요는 없다. 그 이상의 의미로 보는 순간 우리에게는 트라우마가 자리 잡는다. 그리고 이것은 북한의 건축 정치가 의도하는 전략에 그대로 휘말리는 꼴이 된다.
냉정하게 본다면 우리의 실질적 피해는 공동연락사무소 건립 때 들어간 돈뿐이다. 그렇다면 이제는 우리가 칼자루를 쥐고 냉정하게 새로운 관계를 설정해나갈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싸움은 언제나 먼저 성내는 쪽이 지는 것이다.
seojiba3@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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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시선의 확장]은 흔히 '북한 업계'에서 잘 다루지 않는 북한 이야기를 전달하는 코너입니다. 각 분야 전문가들이 그간 주목받지 못한 북한의 과학, 건축, 산업 디자인 관련 흥미로운 관점을 독자들에게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