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제스처' 모른척했지만…고민 속 김정은, 긴급 간부회의 소집

트럼프 대북 유화 메시지 이어진 뒤 첫 공개 행보…예고 없던 회의 개최
대외 사안 논의 여부 숨겨…최선희·김여정 등 외교 관련 간부들 모두 참석

(평양 노동신문=뉴스1) =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26일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은 역사적인 당 제9차 대회가 제시한 새로운 5개년 계획 수행의 첫해인 2026년도 중요 정책 과제들의 성공적 집행을 담보하는 정치실무적 대책들을 보강하기 위해 8월 25일 제9기 제4차 정치국 확대회의를 소집했다"라고 보도했다. [국내에서만 사용가능. 재배포 금지. DB 금지. For Use Only in the Republic of Korea. Redistribution Prohibited] rodongphoto@news1.kr

(서울=뉴스1) 김예슬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잇단 대화 제스처에 침묵하던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가 예정에 없던 노동당 정치국 확대회의를 소집해 고위 간부들을 한자리에 모았다.

북한 매체들은 표면적으로 이번 회의에서 경제·민생 관련 사안만 논의한 것처럼 보도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유화 메시지가 열흘가량 이어진 뒤 사실상 처음 나온 김 총비서의 공개행보라는 점에서 외교 현안에 대한 긴밀한 논의가 있었을 가능성이 26일 제기된다.

노동신문 "중요 정책에 대한 대책 '보강'했다"…'외교 변수' 논의 가능성 언급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이날 김 총비서가 전날인 25일 "2026년도 중요 정책 과제들의 성공적 집행을 담보하는 정치실무적 대책을 보강하기 위해" 당 중앙위원회 제9기 제4차 정치국 확대회의를 소집했다고 보도했다. 정치국은 노동당의 '브레인'에 해당하는 기구로, 약 서른 명의 상무위원과 위원, 후보위원으로 구성된다.

그런데 이날 정치국 확대회의에는 당 조직이 아닌 내각과 군 지휘관도 참석했다고 한다. 또 일부 당 부장들도 참석했다고 신문은 전했다. 이는 이날 회의에서 논의된 안건이 다양했음을 시사한다. 노동신문이 공개한 사진에서는 북한 외교의 사령탑인 최선희 외무상과 김 총비서의 동생으로 '대외총괄' 역할을 수행하는 김여정 당 총무부장이 참석한 것도 확인됐다.

신문은 이날 보도 서두에서 "정치국은 '먼저' 올해 중요 정책건설대상들의 추진 정형과 주요 경제부문 사업들의 실태에 대한 보고를 청취했다"라고 언급했다. '먼저'라는 언급을 감안하면, 이날 회의의 안건이 민생 및 경제 외에도 더 있음을 시사한다.

하지만 신문은 약 2000자의 보도에서 민생 및 경제 관련 사안 외에 다른 현안에 대한 논의 여부 자체를 공개하지 않았다. 의도적으로 주요 안건 및 관련 논의 여부를 숨겼다는 해석이 나오는 대목이다.

특히 정치국 회의가 정례적인 회의체가 아닌 필요에 따라 수시로 열 수 있는 회의라는 점과, 노동신문이 이날 회의가 "중요 정책 과제들에 대한 정치실무적 대책을 '보강'하기 위해" 열렸다고 밝힌 점을 고려할 때 지난 15일(현지시간)부터 이어지고 있는 '외교적 변수'인 트럼프 대통령의 대화 제스처에 대한 대응 방안 및 향후 시나리오 등을 논의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2026.8.22. ⓒ 로이터=뉴스1
최고지도자 메시지 자제하며 운신의 폭 넓히기·美의 '더 큰 양보' 유도 '이중 포석'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열흘 사이 △SNS에 김 총비서와의 과거 정상회담 사진 게재 △한미 연합연습 축소 △김 총비서와의 연내 정상회담 추진 의지 표명 등을 통해 북한을 향해 유화적인 메시지를 발신했다.

북한은 지난 19일 김여정 부장의 담화로 핵보유국 입지 인정과 대북제재 등 적대 정책의 철회라는 기존의 요구사항 수용 없이는 당장 대화에 나설 의사는 없음을 시사하면서도, 김 총비서와 트럼프 대통령의 관계가 "훌륭하다"면서 극적인 대화 가능성을 완전히 닫진 않았다.

하지만 김 총비서 본인은 지난 16일 광복절 경축 종합교예공연 관람과 이번 정치국 회의를 계기로도 대외 메시지를 전혀 언급하지 않으면서 매우 신중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최고지도자의 언급이 나오는 순간 북한의 향후 행보가 사실상 확정된다는 점에서 김 총비서의 선택지를 최대한으로 넓히며 미국의 동향을 주시하는 등 신중하게 상황에 대응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석좌교수는 이번 회의를 "9차 당 대회 제시 사업에 대한 상반기 이행 점검이 주목적"으로 평가하면서도 "북미 대화 등에 대한 언급은 없으나 간부들을 모아 내부 기강을 확립하면서 앞으로의 상황을 준비하겠다는 목적이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라고 분석했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도 북한이 "미국과의 외교전에 당장 대응하기보다 내부 사업을 우선하겠다는 프레임으로 해석할 수 있다"면서도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더 지켜볼 필요는 있다"라고 짚었다.

북한은 트럼프 대통령의 '러브콜'이 이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상황을 급하게 바꿀 때는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많은 주목을 받는 트럼프 대통령의 행동과 별개로 아직은 그의 제안이 '전과 달라지진 않았다'라는 판단을 유지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다만 최근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의 핵무기 개수를 '57개(기)'로 특정하며 북한이 원하는 '핵보유국 인정'으로 가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조금 더 미국을 외면하며 더 전향적인 카드를 끌어내려는 포석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yeseul@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