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 유화책 '속도전'에 망신 준 북한…남북·북미 대화와 '선 긋기'

김여정, 정부의 한반도 긴장 완화 조치에 "관심 없다" 평가 절하
한미에 '새 접근법' 압박하면서도 "당분간 대화 없다" 의지 피력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 (출처=조선중앙TV 갈무리) 2022.8.11/뉴스1

(서울=뉴스1) 최소망 기자 =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이 14일 이재명 정부가 출범 직후 연이은 내보인 대북 긴장 완화 조치를 '잔꾀', '허망한 개꿈', '헛수고'라고 평가 절하하며 다시 한번 남북·북미 대화의 가능성을 차단했다.

김 부부장은 지난달 담화에서 제시한 관계 개선의 '높은 문턱'을 재확인하면서도 당장은 대화와 관심이 없다는 의사를 분명히 했다. 당장은 한미와 외교를 할 수요가 없다는 북한의 입장을 부각한 것으로 풀이된다.

"'대북 조치' 평가할 만한 일 못 돼"…8·15 앞두고 김 빼기

김 부부장은 이날 '서울의 희망은 어리석은 꿈에 불과하다'라는 제목의 담화를 내고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2일 국무회의에서 "북측도 일부 확성기를 철거하고 있다"라고 발언한 것을 반박했다. 그는 "우리는 국경선에 배치한 확성기들을 철거한 적이 없으며 또한 철거할 의향도 없다"라고 말했다.

특히 "한국이 확성기를 철거하든, 방송을 중단하든, 한미연합훈련을 연기·축소하든 우리는 개의치 않으며 관심이 없다"라면서 정부가 대북 유화책으로 단행한 연이은 조치들이 "평가받을 만한 일이 못 된다"라고 선을 그었다.

우리 군은 지난 주말 북한이 접경지에 설치했던 대남 확성기를 철거하는 동향이 있다고 밝혔는데, 이를 두고 북한이 정부의 대북 조치에 호응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그러나 김 부부장은 이같은 군의 판단이 틀렸다고 주장하며 한국 정부가 여론을 오도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김 부부장은 이어 "한국의 현 정권은 윤석열 정권 때 일방적으로 취한 조치들을 없애버리고는 그 무슨 큰일이나 한 것처럼 평가받기를 기대하면서 누구의 호응을 유도해 보려는 것 같다"면서 "무진 애를 쓰고 있지만 헛수고이며, 잔꾀이자 허망한 개꿈"이라고 날을 세웠다.

일각에서는 이번 담화가 이 대통령이 15일 광복절 80주년 경축사에서 새로운 대북 구상이나 대북 메시지를 낼 가능성을 차단하거나 효과를 떨어뜨리기 위한 의도로 나온 것으로 보기도 한다. 김 부부장은 이 대통령의 실명을 언급하진 않았지만 '한국 대통령'을 언급하며 정부의 대북 조치에 날을 세우기도 했다.

"한국은 가장 적대적인 위협 세력"…'남북 적대적 두 국가' 기조 지속

김 부부장은 정부의 대북 조치가 "너절한 기만극"이라며 "서울의 대조선(북) 정책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으며 변할 수도 없다는 것을 확신한다"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우리는 미국의 충성스러운 하수인이고 충실한 동맹국인 한국과의 관계를 개선할 의지가 전혀 없다는 입장을 여러 차례 밝혀왔으며 이 결론적인 입장과 견해는 앞으로 우리의 헌법에 고착될 것"이라며 "우리의 국법에는 마땅히 대한민국이 가장 적대적인 위협 세력으로 표현되고 영구 고착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지난달 28일 담화에서 한국이 남북을 '적대적 두 국가'로 새로 규정한 자신들의 입장을 수용하지 않는다면 대화에 나서지 않겠다는 입장을 보다 더 강화한 것으로 해석된다. 특히 헌법 개정을 언급한 것은 압박 강도를 더 높이려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이 헌법에 북한 지역을 '한국의 영토'로 규정해 이를 바꾸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신들 역시 항구적인 장치를 설정해 관계 개선의 문턱을 크게 높이겠다는 의도인 셈이다.

북한은 내년 초 개최가 예상되는 최고인민회의(우리의 국회)에서 헌법 개정을 논의하면서 대남 관련 내용을 개정해 남북을 '국가 대 국가'의 관계로 굳히는 방안을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美에는 조건부 대화 가능성 시사?…러시아 중재 없는 '북미 양자 관계' 부각

김 부부장은 이날 담화에서 미국을 향해서도 "마주 앉을 일이 없다"라는 입장을 밝혔지만, 한미를 대하는 '온도 차'가 있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김 부부장은 "미국이 낡은 시대의 사고방식에만 집착한다면 수뇌(정상) 사이의 만남도 미국 측의 희망으로만 남게 될 것"이라고 말했는데, 전문가들은 미국이 지난 2018년 방식의 '비핵화' 협상이 아닌 새 안건을 제시한다면 대화가 가능하다는 조건을 제시한 것으로 보기도 한다.

아울러 김 부부장은 15일(현지시간) 알래스카에서 열릴 미러 정상회담에서 러시아가 북한의 의중을 미국에 전달할 수도 있다는 언론 보도에 대해 "억측이자 허황한 꿈을 꾸는 것"이라며 "우리가 무슨 이유로 미국 측에 메시지를 전달하겠는가"라고 말했다.

이는 일각에서 제기되는 러시아의 '북미 대화 중재론'을 반박하는 것으로 보인다. 북미관계는 '중재자'가 없는 양자관계로 추진하겠다는 의도로 분석되기도 한다.

홍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미러 정상회담에서 우크라이나 전쟁 종전 협상과 북한 문제를 연계하는 것을 북한 입장에서는 경계할 가능성이 있다"면서 "북한 문제는 누구의 개입 없이 미국의 입장 변화를 통해 북미가 협상할 문제로 제한하고 싶을 것"이라고 말했다.

somangchoi@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