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두 국가 선언 이전부터 '민족' 지우고 '국가' 앞세운 담론 설정"
류현정 박사, 노동신문 텍스트 1만 4223건 기계학습 분석
- 한상희 기자
(서울=뉴스1) 한상희 기자 = 북한이 2023년 12월 남북 관계를 '적대적 두 국가'로 규정하기 최소 6년 전부터 노동신문에서 '민족'과 '통일'의 언어를 지우고 '국가'와 '당'을 앞세우는 담론 재편을 진행해 왔다는 분석이 나왔다.
류현정 광운대학교 AI미디어솔루션학과 박사는 8일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열린 '노동신문을 통해서 본 북한: 노동신문을 읽는 두 가지 방법' 학술회의에서 이 같은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류 박사는 2012년 1월부터 2024년 12월까지 노동신문에 실린 사설·논설·논평·정론 등 '주장형' 텍스트 1만 4223건을 기계학습의 일종인 '통시적 단어 임베딩' 기법으로 분석했다. 각 단어와 함께 등장하는 주변 어휘를 시기별로 비교해 단어의 사용 빈도와 의미 변화를 추적하는 방식이다.
분석 결과 김정은 집권기 노동신문의 담론은 '외향 분산→내향 응집→반전'의 세 국면을 거친 것으로 나타났다. 2012~2019년에는 미국과 일본 등 외부 세계를 빈번하게 호명했지만, 2019년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 이후에는 내부 결속에 집중하는 방향으로 돌아섰다.
노동신문에서 외부를 향한 어휘의 비중은 김정은 집권 초기인 2012~2014년 69%에서 2018~2020년 49%로 낮아졌고, 2022~2024년에는 23%까지 떨어졌다. 반대로 내부를 향한 담론은 같은 기간 31%에서 51%, 77%로 높아졌다.
담론의 무게중심도 이념에서 당과 제도로 이동했다. 전체 어휘 가운데 제도 통합 비중은 집권 초기 33%에서 2018~2020년 50%로 뛰었고, 2022~2024년에는 58%까지 확대됐다. 같은 기간 이념 통합 비중은 43%에서 26%로 축소됐다.
특히 '민족'에서 '국가'로 주요 담론을 전환하는 듯한 모습은 2023년 '두 국가론' 선언보다 훨씬 일찍 시작됐다. 민족을 상징하는 '동족'이라는 말의 사용은 2017년 582회에서 2018년 156회로 급감했다. 반면 '우리국가'는 2016년 18회에서 북한이 '국가핵무력 완성'을 선언한 2017년 354회로 급증했다. 국가 계열 어휘의 점유율은 하노이 회담이 결렬된 2019년에도 민족 계열 어휘를 추월했다.
류 박사는 이를 두고 핵보유를 기정사실화한 북한이 선대의 '민족·통일·선군' 담론에서 벗어나 '국가·당·제도'를 중심으로 새로운 국가 형태를 구축한 과정이라고 분석했다.
집권 초기인 2012~2014년과 2022~2024년의 어휘를 비교해도 이 같은 변화가 뚜렷하게 확인할 수 있다고 한다. 단독 출현 기준으로 '남조선'은 6233회에서 44회로 99% 이상 줄었고, '북남 관계'와 '우리민족끼리'는 완전히 사라졌다. '조국통일'도 2225회에서 1회로, 김정일 시대의 통치 담론을 상징했던 '선군조선' 역시 940회에서 한 차례도 등장하지 않는 수준으로 감소했다.
반면 '우리국가'는 8회에서 2028회, '당 결정'은 1회에서 491회, '충성심'은 2회에서 255회로 늘었다. '결정 관철'과 '국가제일주의'도 각각 244회와 96회 새롭게 등장했다.
'주체사상'과 '사회주의', '자력갱생'처럼 사회주의의 보편적 어휘들도 쓰이는 맥락이 달라진 것으로 나타났다. 집권 초기에는 '수령 계승'이나 '대외 적대 서사'와 함께 등장했지만, 최근에는 '총비서(김정은)의 영도와 당 사업, 국가제일주의' 등 당·제도 중심의 서사와 결합하는 경향이 짙다.
류 박사는 이러한 변화를 김정은 총비서가 "물려받은 국가 형태를 스스로 해체하고 새로 조립하는 과정"이라고 해석했다. 이어 "적대적 두 국가론을 선언하기 적어도 6년 전부터 북한의 국가 틀 자체가 바뀌는 흐름이 나타난 것"이라고 말했다.
같은 학술회의에서 최선영 북한대학원대학교 박사는 노동신문의 대외 수사를 토대로 북한이 미국·한국·중국·러시아에 부여해 온 '타자정체성'을 분석했다. 남한에 대한 인식은 '적과 동족'이 공존하던 양가적 구조에서 동족 정체성을 폐기한 '제1의 적대국'이라는 단일 구조로 바뀌었다. 미국은 '최대의 주적', '핵적수국', '적수국'으로 규정해 체제 위협의 근원이라는 인식을 공식화했다는 평가다.
중국에 대해서는 6·25전쟁을 함께한 '혈맹'이라는 인식과 북한의 자주성을 위협하는 '대국주의 국가'라는 상반된 인식이 병존한 반면, 러시아를 향한 인식은 '해방자→사회주의 배신자→우호적 이웃→혈맹'으로 변화한 것으로 분석됐다.
최 박사는 "북한의 타자정체성은 추상적 관념이 아니라 현실적 요구 속에서 어떤 국가이익을 우선시하고 어떤 방식으로 추구할지를 규정하는 실질적 토대'라며 "북한의 대외정책적 행보는 정체성과 국가이익의 상호작용 속에서 보다 입체적으로 해석될 수 있다"라고 밝혔다.
angela0204@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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