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유산이냐 개발이냐'…리버풀·드레스덴이 종묘에 던진 질문

"종묘 가치 어디까지 보호할지 구체적 기준 필요"
세계유산 지위 상실에도…리버풀 관광 성장·드레스덴 교통 개선

서울 종로구 종묘 모습. 2025.11.14 ⓒ 뉴스1 박정호 기자

(서울=뉴스1) 신건웅 기자 = 서울 종묘 맞은편 세운4구역 개발을 둘러싸고 세계유산 보존과 도심 개발 간 갈등이 이어지면서 비슷한 논쟁을 먼저 겪은 영국 리버풀과 독일 드레스덴의 사례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두 도시는 유네스코의 우려와 경고에도 각각 낙후 항만 재개발과 도심 교량 건설을 추진하면서 세계유산 지위를 잃었다. 그러나 이후 리버풀은 관광산업이 성장했고, 드레스덴은 도심 교통 흐름이 개선됐다.

이에 종묘를 둘러싼 논쟁 역시 '세계유산 보존이냐, 개발이냐'는 이분법을 넘어 어떤 가치를 어느 범위까지 보호할 것인지 구체적인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3일 서울시와 국가유산청 등에 따르면 종묘 논란의 핵심은 세운4구역의 건물 높이다.

앞서 서울시는 세운4구역 정비계획을 변경해 종로변 건물 최고 높이를 기존 55m에서 98.7m, 청계천변은 71.9m에서 141.9m로 높였다. 대신 세운상가를 철거하고 종묘에서 남산까지 이어지는 약 13만6000㎡ 규모의 녹지축을 조성할 계획이다.

국가유산청은 세운4구역의 고층 개발이 종묘의 역사문화경관을 훼손할 우려가 있다며 세계유산영향평가를 요구하고 있다. 반면 서울시는 사업지가 종묘 담장에서 약 180m 떨어져 법정 역사문화환경보존지역인 100m 밖에 있는 만큼 현행 제도상 영향평가를 요구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세계유산 잃었지만…리버풀 관광 성장·드레스덴 교통 개선

해외에서도 세계유산 지위와 도시 개발을 둘러싼 논란이 있었다.

리버풀의 '해양산업도시'는 2004년 세계유산에 등재됐지만 낙후 항만을 재개발하는 '리버풀 워터스' 사업 등이 추진되면서 유네스코와 갈등을 빚었다.

유네스코는 리버풀을 '위험에 처한 세계유산'으로 지정하며 개발계획 변경을 요구했지만, 리버풀은 항만 재개발 자체를 포기하지 않았다. 결국 유네스코는 2021년 개발로 세계유산의 '탁월한 보편적 가치'(OUV)가 훼손됐다며 세계유산 목록에서 삭제했다.

다만 세계유산 지위를 잃었다고 리버풀의 도시 경쟁력이 함께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리버풀 시티 리전의 관광산업 규모는 2023년 62억5000만파운드로 전년보다 21% 증가했고, 방문객은 6029만 명을 기록했다. 관광 관련 일자리도 13% 늘었다.

독일 드레스덴도 2004년 엘베계곡이 세계유산에 등재됐지만, 교통난 해소를 위한 4차선 다리 건설을 놓고 유네스코와 충돌했다.

드레스덴시는 2005년 다리 건설 여부를 주민투표에 부쳤고, 67.9%가 건설에 찬성해 사업을 추진했다. 결국 2009년 세계유산 지위를 잃었다.

다리 개통 이후에는 교통 개선 효과가 나타났다. 개통 1년 뒤 엘베강을 건너는 주요 노선의 평균 주행속도는 평상시 시속 26.2㎞에서 31.3㎞로, 혼잡시간에는 20.3㎞에서 28.3㎞로 빨라졌다. 기존 교량의 교통량도 감소했다.

서울 종로구 종묘와 세운 4구역 재개발 공사 현장 모습. 2025.11.14 ⓒ 뉴스1 박정호 기자
종묘도 '우리 기준' 필요

리버풀과 드레스덴 사례를 종묘에 그대로 적용하기는 어렵다. 세계유산마다 등재 가치와 주변 도시환경이 다르기 때문이다. 다만 세계유산 지위 유지 여부와 별개로 종묘의 어떤 가치를 어디까지 보호할지 구체적인 기준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종묘에서 반드시 보호해야 할 조망 지점과 방향은 어디인지, 건축물이 수목선 위로 어느 정도 노출되면 역사경관 훼손으로 볼 것인지 등을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개발로 조성되는 녹지와 도시환경 개선 등 공공적 가치도 함께 평가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김지엽 성균관대 건축학과 교수는 "세계유산 보존에서 중요한 것은 '유네스코 등재를 유지하느냐' 자체가 아니라 해당 유산의 본질적 가치를 무엇으로 보고 어디까지 보호할 것인지 우리 사회가 명확한 기준을 갖는 것"이라며 "리버풀과 드레스덴 사례도 국제기구의 판단을 절대적인 기준으로 삼기보다, 문화유산 보존과 도심 발전의 공존을 위해 스스로 원칙을 세우고 그에 따른 책임 있는 선택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keon@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