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년 묶인 북부권 하늘 열렸다…'도시지도' 다시 그리는 속초
군 통신시설 규제 반경 2㎞→500m…장사·영랑 등 188만㎡ 해제
'접경지역 지정' 재정 기반 확보 이어 '군사 규제' 완화
- 윤왕근 기자
(속초=뉴스1) 윤왕근 기자 = 연간 2500만 명이 찾는 국내 대표 관광도시 강원 속초시.
2017년 서울양양고속도로 개통 이후 속초 도심에는 바다 조망을 내세운 아파트와 숙박시설이 잇따라 들어섰고, 시내 곳곳에서는 터파기와 골조공사가 이어졌다.
그러나 이 같은 개발 열기는 조양동과 대포동 등 남부권에 집중됐다.
영랑호와 동해, 장사항 등 뛰어난 자연환경을 품은 장사·영랑지역은 인접 군 통신시설에 따른 고도제한으로 35년간 건축물 신·증축과 각종 개발에 제약을 받아왔다. 속초가 관광도시로 급성장하는 동안 북부권의 발전 시계는 사실상 멈춰 있었던 셈이다.
최근 이 시계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국방부가 고성군 토성면 용촌리 군 통신시설 주변 제한보호구역 범위를 기존 반경 2㎞에서 500m로 축소하면서 속초시 장사동·영랑동·동명동·금호동 일대 188만 7025㎡가 규제에서 벗어났다.
1991년 군용전기통신 관련 규제가 강화된 이후 약 35년 만이다.
그동안 통신시설 반경 2㎞ 이내에서는 시설물을 바라보는 각도인 앙각 2도를 초과하는 건축물의 신축과 증축이 제한됐다. 개발사업을 추진하려면 군부대와 별도 협의를 거쳐야 해 주민 재산권 행사와 노후 주거지 정비에도 상당한 제약이 따랐다.
이 같은 규제는 속초 내부의 남북 간 개발 격차를 키운 원인으로 꼽혀 왔다.
서울양양고속도로 개통 이후 공동주택과 숙박시설 등 대규모 개발사업이 남부권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동안 장사·영랑지역은 상대적으로 낙후됐다.
인구 감소세도 북부권에서 두드러졌다. 최근 10년간 속초시 전체 주민등록인구가 약 4% 줄어든 것과 비교해 장사·영랑지역 인구는 약 20% 감소했다.
군사규제 해제 직후 속초시가 개최한 '북부권 고도제한 해제 비전 선포식'에는 주민과 국방부, 국민권익위원회 관계자 등 600여 명이 참석했다. 행사장에서는 '35년간 멈춰 있던 북부권의 시간이 다시 흐르기 시작한다'는 의미의 시계 퍼포먼스도 펼쳐졌다.
오랜 기간 규제에 묶였던 주민들의 기대감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장면이다.
이번 규제 해제는 속초시의 접경지역 추가 지정과 맞물리면서 더 큰 의미를 갖는다.
속초시는 지난해 접경지역으로 추가 지정돼 접경지역지원특별법에 따른 연간 150억 원 이상의 재정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발전지원사업과 특수상황지역개발사업 신청이 가능해졌고, 국비 보조 비율도 기존 50~70%에서 70~80%로 높아졌다.
과거 속초 북부권은 민간인통제선 이남 25㎞ 이내에 포함돼 각종 군사규제를 받으면서도 접경지역 혜택에서는 제외돼 있었다.
사실상 시 전체 면적의 절반이 접경지역 요건에 해당했지만 규제만 있고 지원은 없는 상태였다. 속초시는 비슷한 여건의 경기 가평군과 공동 대응하고 중앙부처를 지속적으로 설득한 끝에 접경지역 지정이라는 성과를 얻었다.
접경지역 지정으로 재정적 기반을 확보한 데 이어 군사시설 고도제한까지 해소되면서 북부권 개발은 비로소 제도적 장애물 두 개를 동시에 걷어내게 됐다.
가장 큰 변화가 예상되는 분야는 주거와 관광이다.
보호구역에서 풀린 지역에서는 노후 주거지 정비와 공동주택 건립, 도로와 생활 사회간접자본 확충을 이전보다 수월하게 검토할 수 있다. 개별 개발사업 때마다 필요했던 군부대 협의 부담도 상당 부분 줄어들 전망이다.
속초시는 공공산후조리원과 육아복합지원센터, 장사 새마을 도시재생사업 등 정주환경 개선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여기에 지난 5월 강원특별자치도로부터 지정 승인을 받은 1조 원 규모 영랑호 관광단지 조성사업과 설악명상문화센터, 맨발 황톳길, 영랑호 벚꽃축제 등 관광 기반을 연계해 북부권을 생활·관광 복합거점으로 육성하겠다는 구상이다.
특히 영랑호 관광단지는 군사규제 완화로 관광시설 배치와 주변 정주 기반 확충 등 사업 추진 여건이 한층 개선될 가능성이 있다.
시는 접경지역 재원을 활용한 청초호유원지 북측광장 정비와 속초해변 야간경관 조성, 설악산국립공원 진입도로 확장 등 도시 전반의 기반시설 사업도 병행하고 있다.
이에 따라 남부권에 집중됐던 관광·주거 개발축이 향후 북부권까지 확장되면서 속초의 도시구조 자체가 달라질 수 있다는 기대가 나온다.
다만 규제가 풀렸다고 곧바로 개발 효과가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공동주택과 숙박시설이 단기간에 집중될 경우 교통난과 난개발, 영랑호·해안 경관 훼손 등의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 실제 속초 남부권은 급속한 개발 과정에서 고층 건축물과 교통 혼잡, 기반시설 부족 등을 둘러싼 논란을 겪어왔다.
북부권이 남부권의 개발 방식을 그대로 답습하기보다는 기존 주민의 정주 여건과 자연경관, 기반시설 수용 능력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속초시도 주거 환경과 교통, 기반시설, 자연경관, 주민 수요 등을 종합적으로 반영해 무분별한 개발을 막고 지속 가능한 발전 방향을 구체화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병선 속초시장은 "이번 성과는 단순한 건축물 높이 제한 해소가 아니라 북부권 발전을 가로막아 온 유리천장을 걷어낸 전환점"이라며 "35년간 멈춰 있던 발전 시계가 속초의 미래 100년을 향해 나아갈 수 있도록 체계적인 도시개발과 정주 여건 개선에 행정력을 집중하겠다"고 말했다.
wgjh6548@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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