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끝나야 물건도 나간다"…50억 묶인 중소 한돌펌프의 한숨

[로컬 히든챔피언] 펌프 제작 기술 국산화 '100% 맞춤 제작 기술력'
"대출 상환 유예가 가장 현실적인 지원"

편집자주 ...지방에는 서울보다 덜 알려졌지만 묵묵히 기술을 키우고 시장을 넓히며 산업 현장을 지탱해온 기업이 많습니다. 규모는 크지 않아도 일자리와 투자, 산업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은 결코 작지 않습니다. 이들의 목소리는 지역 경제의 체온을 보여주는 기록이기도 합니다. 뉴스1은 [로컬 히든챔피언] 코너를 통해 각 지역 산업 현장에서 경쟁력을 쌓아온 기업들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한돌펌프의 이지훈 대표.유준상기자/뉴스1

(인천=뉴스1) 이시명 유준상 기자

"전쟁이 끝나야 합니다. 그래야 물건도 나가고, 대금도 받을 수 있습니다."

지난 4일 인천에서 만난 이지훈 한돌펌프 대표는 최근의 국제 정세를 묻자 이렇게 말했다. 짧은 답이었지만, 그 안에는 수출 중소기업이 겪는 어려움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한때 가장 컸던 러시아 시장은 막혔다. 중동 정세 불안까지 겹치면서 출하가 지연되고, 대금 회수도 늦어지고 있다.

한돌펌프는 1993년 설립된 산업용 펌프 제조기업이다. 석유화학, 정유, 액화천연가스(LNG), 발전소 등에 들어가는 고온·고압 펌프를 만든다. 미국석유협회(API) 규격에 맞춘 펌프를 자체 설계·제작하는 기술력을 갖췄다. 창업주는 국내 펌프 산업의 국산화를 이끈 엔지니어로 평가받는다.

이 대표는 기업에 대해 "미국석유협회(API) 규격에 맞춘 펌프를 자체 설계·제작하는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창업주는 국내 펌프 산업의 국산화를 이끈 엔지니어로 평가받는다"고 소개했다.

이 대표가 회사에 합류한 건 2008년이다. 현대그룹을 떠나 가업에 들어왔다. 부친이 기술 개발로 회사를 세웠다면, 그는 해외시장 개척으로 회사를 키웠다. 당시 연 매출 20억~30억 원 수준이던 회사는 해외 전시회와 무역사절단을 통해 조금씩 이름을 알렸다.

작은 중소기업이었지만 해외 전시회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독일 국제 화학 전시회 '아케마'(ACHEMA)에 대형 부스를 차렸고, 아프리카 수단 프로젝트 등 굵직한 해외 수주도 따냈다. 현재 한돌펌프 매출의 약 80%는 수출에서 나온다.

하지만 국제 분쟁은 기업의 영업력만으로 넘기 어려운 벽이었다.

러시아는 한때 한돌펌프의 주요 시장이었다. 그러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전략물자 수출 규제가 강화되면서 사실상 거래가 끊겼다. 관련 사업은 5년째 멈춰 있다.

이 대표는 "러시아는 한때 가장 큰 시장이었지만 전쟁 이후 사실상 거래하지 못하고 있다"며 "기업이 아무리 노력해도 국제 정세라는 벽을 혼자 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러시아 시장이 막히자 중동 의존도는 더 커졌다. 그런데 최근 중동 정세 불안이 겹치며 또 다른 문제가 생겼다. 현재 한돌펌프가 받지 못한 대금과 출하가 지연된 물량은 약 50억 원 규모다. 이 가운데 약 30억 원은 아직 출하하지 못한 제품이고, 약 20억 원은 이미 납품했지만 대금을 회수하지 못한 물량이다.

이란의 호르무즈해협 봉쇄로 출하하지 못하고 있는 한돌펌프 자체 생산 펌프.유준상기자/뉴스1

더 큰 문제는 제품 특성이다. 한돌펌프의 산업용 펌프는 대부분 주문 제작 방식이다. 고객사 설비와 운전 조건에 맞춰 처음부터 설계한다. 납품이 무산되면 다른 곳에 그대로 팔기 어렵다.

이 대표는 "고객사에서 대금을 주겠다고 했지만 아직 받지 못한 물량이 있다"며 "출하되지 않은 펌프도 모두 현장 조건에 맞춰 만든 맞춤 제품이다. 물건이 나가지 못하면 사실상 고철과 다를 바 없다"고 했다.

그래도 그는 시장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러시아 시장은 전쟁이 끝나는 즉시 다시 들어갈 계획이다. 미국 시장도 계속 문을 두드리고 있다.

이 대표가 꼽는 한돌펌프의 경쟁력은 '100% 맞춤 제작'이다. 대기업이 표준화된 제품을 앞세운다면, 한돌펌프는 고객사 조건에 맞춰 처음부터 다시 설계하는 방식을 택했다.

그는 "대기업은 표준화된 제품을 만들고 고객이 그 제품에 맞추도록 하는 경우가 많다"며 "우리는 고객이 요구하는 사양에 맞춰 처음부터 새로 설계하고 제작한다"고 말했다.

석유화학 플랜트, 발전소, 정유시설은 현장마다 온도와 압력, 유체 조건이 다르다. 같은 펌프처럼 보여도 실제로는 똑같은 제품이 거의 없다는 게 이 대표의 설명이다.

그는 "그런 맞춤형 생산 능력이 해외 시장에서 우리가 버틸 수 있는 힘"이라고 했다.

이처럼 중동 사태와 러·우전쟁 피해 기업인 한돌펌프는 현재 인천시와 인천상공회의소로부터 당장 필요한 물류비 지원을 받고 있다.

다만 정부 지원에 대해서는 보다 현실적인 대책을 주문했다. 물류비나 이자 지원도 필요하지만, 수출 대금이 묶인 기업에는 당장 현금 흐름을 버틸 시간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 대표는 "중소기업 입장에서는 대출 상환 기한을 연장해 주는 것이 훨씬 실질적인 도움"이라며 "수출 대금이 묶인 기업들이 버틸 시간을 확보할 수 있도록 최소 1년 단위의 상환 유예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인터뷰 끝에 "전쟁 기간에는 피해를 보지만, 전쟁이 끝나면 복구 수요가 생길 것이라고 믿는다"고 했다. 이어 "지금은 어려운 시기지만 결국 다시 기회는 올 것"이라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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