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곳간 비었다' 추미애, 재정분권 승부수…정부·지자체 설득 관건

교부세·지방세·국비 부담까지 중앙-지방 재정구조 개편 요구
경기도 몫 확대 땐 타 지자체와 이해 충돌…전국 의제화가 과제

추미애 경기도지사가 지난 5일 경기 수원시 영통구 경기도청 브리핑룸에서 열린 '경기도 재정상황 관련 기자회견'에서 재정 비상 선언을 하고 있다. ⓒ 뉴스1

(수원=뉴스1) 최대호 기자 = 경기도가 '재정 비상'의 해법을 도 내부의 세출 구조조정에서 중앙·지방 간 재정구조 개편으로 넓히고 있다. 지방정부가 복지·안전·교통 등 주민 생활과 직결된 행정을 책임지는 만큼 이에 걸맞은 세원과 재정운영 권한도 지방으로 넘겨야 한다는 주장이다.

문제는 경기도가 요구하는 상당수 방안이 중앙정부는 물론 다른 지방자치단체의 재정과 맞물려 있다는 점이다. 보통교부세 산식을 바꾸면 지자체 간 재원 배분에 영향을 미칠 수 있고 국가책임 사업의 국비 부담을 높이면 중앙정부의 부담이 커진다. 경기도가 자체 재정난에서 출발한 요구를 전국적인 재정분권 의제로 확장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16일 뉴스1 취재를 종합하면 경기도 재정 문제는 추미애 경기도지사가 당선인 신분이던 지난 6월 본격적으로 수면 위로 떠올랐다. 민선 9기 경기도정 인수기구인 '공정·혁신·포용 경기준비위원회'는 도의 누적 채무가 7조 원을 넘어서는 등 심각한 재정 상황에 놓였다고 공개했다. 추 지사도 당시 "곳간 사정이 넉넉지 않다"며 취임 즉시 재정혁신TF를 가동하겠다고 밝혔다.

추 지사는 취임 한 달여 만인 지난 5일 '재정 비상 상황'을 공식 선언했다. "마른 땅에 풀 한 포기 남지 않은 것처럼 더 이상 끌어다 쓸 재원도, 위기를 미룰 여력도 남아 있지 않다"며 재정 상황의 심각성을 강조했다.

하지만 해법을 단순한 예산 절감에서 찾지는 않았다.

지난 12일 공개된 경기도 재정혁신TF 활동 결과가 이를 보여준다. 추 지사 취임과 함께 정책 자문기구로 꾸려진 TF는 외부 전문가들과 40여 일간 도의 세입·세출과 재정제도를 들여다봤다.

TF는 도가 지출을 줄이고 재정관리 체계를 바꾸는 것과 함께 중앙정부에 집중된 재정 권한도 지방정부의 행정 책임에 맞춰 재배분해야 한다고 결론 내렸다.

도가 요구하는 것은 단순히 '돈을 더 달라'는 게 아니다. 세원과 행정 책임, 재정조정 권한, 성과관리까지 함께 넘겨 지방정부가 더 많은 재정 권한을 갖는 대신 그만큼 재정운영에 책임을 지도록 하자는 구상이다.

지난 6월 22일 당시 김영진 공정·혁신·포용 경기준비위원회 부위원장이 경기도 재정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경기준비위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곳간 비었다'에서 재정구조 개편으로…경기도가 꺼낸 카드

재정혁신TF의 제안은 도의 자체 재정혁신과 중앙정부·국회를 상대로 한 제도개선으로 나뉜다.

우선 도에는 초과세입을 적립하고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지출은 안정적인 반복세입으로 충당하는 구조를 만들도록 했다. 성과가 낮거나 집행률이 떨어지는 사업은 유지·축소·통합·폐지 등을 통해 재편하도록 제안했다.

국고보조사업도 국비를 얼마나 확보했는지만 볼 것이 아니라 향후 5년간 투입할 도비·시군비와 국비 지원 종료 후 운영비까지 계산해 지방정부의 실질적인 부담을 따져야 한다고 봤다.

중앙정부에는 보통교부세 산식부터 손질할 것을 요구했다.

현행 제도에 '초대규모 광역도' 유형을 신설하고 인구·아동·산업·광역교통 수요 등을 산식에 반영하자는 것이다. 1400만 명이 넘는 인구를 가진 경기도의 행정수요를 다른 도와 같은 기준으로 산정하는 현행 방식으로는 실제 재정수요가 충분히 반영되지 않는다는 게 도의 논리다.

조정교부금은 도 본청 부담률을 35%로 제한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TF 분석에 따르면 2015~2024년 10년 가운데 9년 동안 부담률이 35%를 넘었다.

지방세 확충과 소방·교육재정, 국가책임 보조사업의 국비 부담 확대도 요구했다. 국가가 책임져야 할 사업을 지방정부가 상당 부분 부담하는 구조도 함께 손봐야 한다는 것이다.

경기도가 '재정 비상'을 선언하면서도 자체 세출 구조조정과 중앙정부의 제도개편을 동시에 내세운 이유다. 재정분권을 요구하려면 도 역시 기존 사업을 정리하고 재정운영의 책임성을 높여야 중앙정부와 다른 지방정부를 설득할 명분을 확보할 수 있다.

경기도 재정혁신TF가 40여일 간의 활동을 마무리하며 내놓은 중앙정부·국회 상대 10대 제안 과제.(재정혁신TF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경기도 몫 늘리면 이해관계 충돌…전국 의제 만들 수 있나

경기도의 요구가 실제 제도개편으로 이어지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보통교부세 산식을 바꾸고 지방세를 확대하며 국가사업의 국비 부담을 높이는 것은 경기도만의 재정 문제가 아니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간 재원 배분은 물론 다른 시·도의 재정에도 영향을 미친다.

특히 경기도가 요구하는 보통교부세 제도 개편은 다른 광역자치단체와의 이해관계가 걸려 있다. 한정된 재원을 배분하는 산식을 경기도의 행정수요가 더 많이 반영되도록 바꾸면 다른 지방정부의 배분액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조정교부금 문제는 경기도 내부에서도 이해관계 조정이 필요하다. 도 본청의 부담을 줄이는 방향으로 제도를 개편하면 31개 시·군에 돌아가는 재원과의 관계를 함께 따져야 한다.

국가책임 사업의 국비 부담 확대 역시 중앙정부 입장에서는 추가적인 재정 부담이다.

결국 경기도가 중앙정부를 설득하려면 '경기도의 특수성'만 강조해서는 한계가 있다. 경기도에 유리한 제도를 요구하는 것으로 비칠 경우 다른 지방정부의 동의를 끌어내기 어려워질 수 있다.

재정혁신TF가 전국 시·도와 대도시권, 국회, 연구기관의 공동 대응을 제안한 것도 이 때문이다. 공동 산정자료와 공동 건의문을 통해 개별 지자체의 요구를 중앙·지방 간 재정구조 개편이라는 공동 의제로 만들자는 구상이다.

정치적 통로도 변수다.

추 지사는 대한민국시도지사협의회장에 출마했지만 지난 14일 열린 정기총회에서 박찬대 인천시장이 회장으로 선출됐다. 시도지사협의회장은 중앙지방협력회의 부의장을 맡는 등 지방정부의 현안을 중앙정부와 협의할 수 있는 자리다.

다만 박 시장 역시 지방정부의 안정적인 재정 확보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은 경기도가 재정분권을 공동 의제로 만드는 데 접점이 될 수 있다.

박 시장은 협의회장 선출 직후 "지방시대의 완성은 단순한 권한 이양을 넘어 지방이 스스로 성장 동력을 만들고 안정적인 재정이 뒷받침될 때 완성된다"고 밝혔다.

박찬대 인천시장이 14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빌딩에서 열린 제61차 대한민국시도지사협의회 정기총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 뉴스1

경기도로서는 협의회장 자리를 통한 직접적인 의제 설정보다는 다른 시·도와 공통분모를 찾아 재정분권 요구를 전국 단위 의제로 만드는 작업이 중요해진 셈이다.

재정혁신TF도 이를 염두에 두고 단계적인 제도개편 로드맵을 제시했다. 2027년에는 모의 산정과 공동 건의, 법령 개정안 마련 등을 통해 중앙정부와 협의하고, 2028~2030년에는 법률 개정이 필요한 과제까지 추진한다는 구상이다.

결국 추미애 도정이 던진 재정분권 요구의 성패는 경기도의 재정난을 얼마나 강조하느냐보다 다른 지방정부도 동의할 수 있는 제도개편 논리를 만들어내느냐에 달렸다.

중앙정부의 재정 권한을 지방으로 넘겨야 한다는 요구에는 그만큼 지방정부가 확대된 권한과 재정운영 결과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과제도 따라붙는다. 경기도가 자체 구조조정과 재정관리 개선을 실제로 얼마나 이행하는지, 다른 시·도의 동의를 얼마나 확보하는지가 향후 제도개편의 핵심 변수가 될 전망이다.

sun0701@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