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절초풍 예산' 꺼낸 추미애…'전임자 책임론'인가 '도정 수술'인가
취임 한 달여 만에 '재정 비상' 선언…감액 추경·사업 구조조정 예고
- 최대호 기자
(수원=뉴스1) 최대호 기자 = 추미애 경기도지사가 취임 한 달여 만에 도청에서 가진 첫 기자회견에서 '경기도 재정 비상 상황'을 전격 선언하면서 그 배경과 의도를 놓고 정치권의 해석이 분분하다.
추 지사는 지난 5일 경기도 재정 관련 기자회견에서 7700억원 규모의 감액 추가경정예산 편성 방침을 밝히며 "기절초풍할 예산", "마른 땅에 풀 한 포기 안 남았다", "신뢰를 말아먹은 예산" 등 이례적으로 강한 표현을 쏟아냈다.
회견 내내 비장한 표정으로 재정 상황을 설명한 추 지사는 지방채 발행과 기금 활용 등으로 당장의 재정 위기를 가려왔다고 지적했다. 특히 노인장기요양, 급식비 지원 등 민생·필수사업 예산이 올해 10~12월분까지 충분히 반영되지 않은 사례를 공개하며 재정 상황의 심각성을 강조했다.
정치권에서는 이번 선언을 단순한 재정 진단을 넘어 전임 도정과의 정치적 거리두기이자 새 도정의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한 승부수로 보는 시각이 나온다.
민선 7기 이재명 전 지사와 민선 8기 김동연 전 지사는 모두 더불어민주당 소속이다. 추 지사 역시 민주당 소속인 만큼 전임 도정의 재정 운용을 강하게 비판하는 것은 같은 당 전임자들과 선을 긋는 정치적 메시지로도 읽힌다.
특히 앞으로 감액 추경이나 사업 축소로 도민 불편이 발생할 경우 그 책임이 현 도정에 집중되는 것을 막기 위해 취임 초부터 재정 상황을 공개하고 전임 도정의 책임을 부각하는 '선제적 책임론'이라는 해석도 있다.
반대로 이번 선언을 대대적인 사업·조직 정비를 위한 명분 확보로 보는 관측도 나온다.
신임 단체장이 새로운 공약을 추진하려면 기존 사업의 우선순위를 조정하거나 유사·중복 사업을 줄여야 한다. 조직 개편 역시 기존 부서와 사업을 손질할 경우 내부 반발이 불가피하다.
추 지사가 "새로운 공약 사업 추진은커녕 기존 사업 유지도 어렵다"고 강조한 것은 역설적으로 기존 사업을 원점에서 재검토하고 조직을 재배치할 수 있는 강력한 명분을 확보한 것으로 볼 수 있다.
7700억원 규모의 감액 추경이 현실화할 경우 단순한 예산 절감을 넘어 사업 축소·폐지와 조직 개편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이번 기자회견이 사실상 고강도 긴축과 도정 구조조정의 신호탄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다만 정치적 부담도 적지 않다. 전임 도정의 재정 운용을 강하게 비판할수록 야권에서는 민선 7기 이재명 도정의 복지 지출 확대와 민선 8기 김동연 도정의 재정 운용을 묶어 '민주당 도정 책임론'을 제기할 수 있다. 추 지사의 발언이 결과적으로 야권에 공격의 빌미를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실제 재정 상황이 어느 정도로 심각한지를 둘러싼 논란도 불가피하다. 지방채와 기금 활용 자체가 지방자치단체의 통상적인 재정 운용 수단인 만큼, '재정 비상'이라는 진단이 실제 대규모 구조조정이 불가피한 상황을 의미하는지, 취임 초기 사업과 조직 정비를 위한 정치적 수사인지는 향후 감액 추경과 사업 조정 과정에서 판가름 날 전망이다.
재정 확보를 위한 대정부 협상도 추 지사의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특히 지방교부세를 받지 못하는 불교부단체 문제와 관련해 경기도의 재정 여건을 중앙정부에 어떻게 설명하고 제도 개선을 끌어낼지가 주요 과제로 꼽힌다. 재정 비상을 선언한 만큼 중앙정부에 추가적인 재정 지원과 제도 개선을 요구할 명분을 확보하려는 포석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자체 세입 기반을 넓히기 위한 세제 개편 전략도 뒤따를 수 있다. 법인지방소득세 등 지방세 제도를 손질해 지방정부의 안정적인 세입 기반을 확보하는 방안이 중앙정부와의 협상 테이블에서 주요 의제로 부상할 가능성이 있다. 단순한 지출 삭감을 넘어 세입 확충까지 병행해야 '재정 비상'을 구조적으로 해소할 수 있다는 판단이다.
결국 추 지사의 이번 선언은 재정 위기를 전면에 내세워 구조조정의 불가피성을 설명하는 동시에 전임 도정과 거리를 두고 새 도정의 색깔을 분명히 하려는 승부수로 풀이된다.
정가에서는 결국 추 지사가 이번 '재정 비상' 선언을 실제 성과로 연결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한 정가 관계자는 "재정이 어렵다는 사실을 공개하는 것만으로는 도민의 공감을 얻기 어렵다"며 "감액 추경 과정에서 어떤 사업을 줄이고 살릴지, 그 과정에서 도민 불편을 어떻게 최소화할지가 첫 번째 시험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조직과 사업을 대대적으로 손질하려면 공직사회와 도의회의 동의가 필요하고, 중앙정부와의 재정 협상에서도 경기도가 왜 추가적인 재정 지원과 제도 개선을 요구하는지 논리를 만들어야 한다"며 "불교부단체 문제나 법인지방소득세 등 지방세제 개편까지 성과를 내야 이번 선언이 단순한 취임 초기의 재정 경고가 아니라 실질적인 재정 구조 개편으로 평가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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