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충원서 지워지는 전두환 흔적…5·18특별법 개정해 속도 내야

[누가 국립묘지에 묻히는가⑥] 미흡한 잔재청산

편집자주 ...국립묘지는 국가를 위해 헌신하거나 희생한 이들을 기리는 공간이다. 그러나 국립 현충원 묘지에는 5·18 민주화운동 당시 유혈 진압에 관여한 계엄군 지휘관과 12·12 군사반란에 가담한 인사들 상당수가 안장돼 있다. 헌정질서를 무너뜨린 국가폭력의 가해자와 그로 인해 희생된 피해자가 같은 공간에 잠들어 있는 셈이다. 뉴스1 광주전남본부는 5·18 46주년을 맞이해 현충원에 안장된 인물들의 현황을 점검한다. 국가는 누구를 기리고, 우리는 무엇을 기억해야 하는지를 7편에 걸쳐 나눠 싣는다.

제46주년 5·18민주화운동을 앞둔 지난달 30일 대전현충원 현충문의 모습. 2026.5.7 ⓒ 뉴스1 이수민 기자

(광주=뉴스1) 이수민 박지현 기자 = 2020년 국립 대전현충원의 '현충문' 현판은 교체됐다. 기존 현판은 전두환의 친필을 바탕으로 제작된 것으로 알려져 오랜 논란 끝에 철거됐다. 철거된 현판은 폐기되지 않고 2020년 6월 1일 국가기록원으로 성남분원으로 이관됐다.

이와 관련해 국가보훈부는 "교체된 기존 현판은 '공공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른 행정박물(상징류)로 국가기록원과 협의를 통해 이관됐다"고 설명했다.

대전현충원은 전두환 정권 시기 준공된 시설인 만큼 곳곳에 그의 흔적이 있었으나 하나둘씩 철거되고 있다.

1983년 준공 당시 현충문 현판은 전두환이 종이에 쓴 '현충문' 글씨를 확대·탁본하는 방식으로 제작됐다. 현충탑 앞 헌시비 역시 시는 노산 이은상이 지었지만, 글씨는 전두환 친필이었다.

헌시비 뒷면에는 한때 '대통령 전두환은 온 겨레의 정성을 모아 호국영령을 이 언덕에 모시나니 하늘과 땅이 함께 길이길이 보호할 것입니다'라는 문구도 새겨져 있었다.

이후 5·18단체와 시민사회는 국립묘지의 상징적인 공간에 12·12 군사반란과 5·18 민주화운동 책임자의 흔적이 남아 있는 것은 부적절하다며 지속해서 철거를 요구했다. 결국 5·18 민주화운동 40주년이던 2020년 현충문 현판과 헌시비 글씨는 안중근체로 교체됐고, 헌시비 후면 문구도 삭제됐다.

이뿐만이 아니다. 전두환은 1986년 6월 대전현충원을 참배하며 현충문 안쪽 화단에 금송을 직접 식재하기도 했다. 이후 나무가 고사하면서 다른 나무로 대체됐지만, 2023년 다시 이식되면서 현재는 잔디 흔적만 남아 있는 상태다.

2026년 5월 현재 대전현충원에 남은 전두환의 흔적은 단 하나다. 바로 배우자 이순자의 아버지이자 그의 장인인 이규동 육군 준장의 묘역에 남은 이름 석 자다.

대전현충원에 마지막 남은 전두환의 흔적. 2026.5.8 ⓒ 뉴스1 이수민 기자

5·18기념재단은 현재 국회 계류 중인 5·18특별법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이러한 전두환의 흔적을 전수조사하고 관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해당 안은 제9조(헌정질서 파괴범죄자 기념 사업 예산 제한)를 신설해 전두환 등에 대한 기념 사업 공공 예산 지원을 금지하고, 이미 집행된 예산에 대해 환수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법이 통과되면 오는 6월 철거를 검토 중인 전남 영암의 영산호준공기념탑 전두환 기념 판을 비롯해, 전남 장성군 상무대 법당 전두환범종, 인천시 인천상륙작전기념관 현충탑 앞 기념 석판 등 '전두환 잔재'의 조성·유지·관리 과정에 들어가는 지방자치단체 예산을 막을 수 있다.

특히 잔재를 단순히 철거했을 때 역사적 증거와 맥락이 함께 소멸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기도 했지만, 존치했을 때 역사 왜곡 문제 등을 종식하고 역사적 맥락·책임·반성을 담아 관리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효과가 더 크다는 주장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한때는 전두환 역시 국립묘지에 안장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었다. 그는 12·12 군사반란과 5·18 관련 혐의로 무기징역을 확정받았지만 1997년 특별사면됐다. 실제로 전두환의 경호실장을 지낸 안현태는 뇌물수수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고도 사면·복권 뒤 2011년 대전현충원에 안장된 바 있다.

다만 국가보훈부는 전두환에 대해 "현행법상 국립묘지 안장이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밝혔고, 그는 2021년 사망 후 국립묘지에 안장되지 못했으며, 현재 서울 연희동 자택에 임시 안치돼 있다

반면 노태우의 경우 현충원은 아니지만 그에 준하는 위상의 '국가보존묘지'에 잠들어 있다. 그는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동화경모공원에 안장돼 있는데 이곳은 대한민국 국가보존묘지 2호로 지정됐다.

지난 2021년 12월 9일 오후 경기도 파주시 동화경모공원 전망대 옆 묘역에서 열린 고(故) 노태우 전 대통령의 국가장 안장식에서 고인의 딸 노소영 아트센터나비 관장이 취토를 하고 있다. 2021.12.9 ⓒ 뉴스1 임세영 기자

묘역은 별도 안내판과 진입로까지 갖춰져 있으며 넓은 잔디와 석축으로 조성돼 일반 묘역과는 확연히 다른 분위기를 띠고 있다. 규모와 조경이 두드러져 일부 시민들 사이에서는 "피라미드를 연상시킨다"는 반응도 나온다.

노태우는 12·12 군사반란과 5·18 민주화운동 관련 혐의로 무기징역을 확정받고 전직 대통령 예우도 박탈됐지만 특별사면 이후 안장 문제를 둘러싸고 논란이 이어져 왔다.

다만 국가보훈처는 2019년 "사면·복권이 됐더라도 범죄 사실은 남는 만큼 국립묘지 안장은 불가능하다"는 법률 해석을 내놓은 바 있다.

결국 노태우는 국립현충원이 아닌 국가보존묘지에 안장됐지만 시민사회 일각에서는 사실상 전직 대통령 수준의 예우가 유지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특히 동화경모공원은 이북 실향민을 위한 묘역으로 됐는데, 노태우는 안장 자격도 갖추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동화경모공원은 이북 실향민과 후손, 파주시민을 위한 묘지로 규칙 제3조에 따르면 파주시에 1년 이상 주민등록이 되어 있거나, 본적 또는 원적이 파주시로 되어 있는 등 연관이 있어야만 안장할 수 있다.

노태우의 경우 파주와 연고가 없는데 이례적으로 '특별'하게 안장된 것이다. 공원 측은 안장 자격은 없으나 규칙 중 '그밖에 시장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사람'이라는 특혜조항에 따라 안장됐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아울러 지나치게 크고 화려한 묘역도 비판 대상 중 하나다. 당시 아들인 노재헌 씨는 장례위원회에 8.3㎡의 묘역을 요청했다고 밝혔지만 실제로 조성된 묘역은 전직 대통령 5명의 묘역을 모두 합친 것보다 큰 1810㎡로 드러났다.

이승만 전 대통령 묘역은 363㎡, 박정희 전 대통령 580㎡, 최규하 전 대통령 264㎡, 김영삼 전 대통령 258.5㎡, 김대중 전 대통령 264㎡ 등이다. 이는 국가유공자나 독립유공자, 5·18민주유공자 548명을 안장할 수 있는 크기다.

막대한 비용이 소요됐음에도 출처가 불명확하다는 점도 문제다. 동화경모공원의 분묘 1기당 면적은 10㎡로, 묘지 사용료는 400만 원(15년), 관리비는 37만 4000원(5년)이다. 이를 기준으로 1810㎡의 묘지 사용료를 계산하면 약 7억 원 상당이고, 관리비는 약 6700만 원이다.

하지만 공사비와 묘역 조성, 유지를 위한 비용은 전혀 공개된 바 없다. 노태우는 전직 대통령 예우가 박탈됐기 때문에 유족들이 전적으로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데, 검찰 수사에서 밝혀지지 않은 비자금이 사용됐을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노태우는 12·12 군사반란 당시 파주를 관할하던 9사단장으로서 최전방 부대인 9사단을 수도권으로 이동시켜 파주의 안보에 심각한 공백을 초래한 인물"이라고 비판했다.

breath@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