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포명령 거부한 군인들…그 선택은 기억되고 있나"

[누가 국립묘지에 묻히는가④] 유혈진압 막았던 군인들

편집자주 ...국립묘지는 국가를 위해 헌신하거나 희생한 이들을 기리는 공간이다. 그러나 국립 현충원 묘지에는 5·18 민주화운동 당시 유혈 진압에 관여한 계엄군 지휘관과 12·12 군사반란에 가담한 인사들 상당수가 안장돼 있다. 헌정질서를 무너뜨린 국가폭력의 가해자와 그로 인해 희생된 피해자가 같은 공간에 잠들어 있는 현실이다. 뉴스1 광주전남본부는 5·18 46주년을 맞이해 현충원에 안장된 인물들의 현황을 점검한다. 국가는 누구를 기리고, 우리는 무엇을 기억해야 하는지를 7편에 걸쳐 나눠 싣는다.

제46주년 5·18민주화운동을 앞둔 지난달 30일 대전현충원의 모습. 2026.5.7 ⓒ 뉴스1 이수민 기자

(대전=뉴스1) 이수민 박지현 기자

"계급이 높을수록 위쪽에 안장되기 때문에 결국 죽어서도 감시받고 탄압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죠."

제46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일을 보름여 앞두고 찾은 국립대전현충원. 장군묘역으로 들어서자 따뜻한 햇살 아래 계단식으로 구성된 수백 개의 묘가 눈 앞에 펼쳐졌다.

관리인들은 꽃을 두고 비석을 닦으며 묘역을 정갈하게 정비하고 있었다.

이름과 계급, 그리고 '국가를 위해 헌신했다'는 내용의 공통된 문구들. 겉으로 보기에는 모두가 애국자다. 같은 사람들이다. 하지만 이곳에 잠든 이들의 선택은 같지 않았다.

1980년 5월. 5·18항쟁이 벌어지던 그해 광주에서 대한민국 국군에 의해 수많은 시민이 학살됐다. 당시 누군가는 발포를 명령했고, 누군가는 총을 쐈으며,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또 다른 누군가는 그 명령을 거부했다.

발포를 명령한 자는 결국 밝혀지지 않았으며 총을 쏜 자와 명령을 거부한 자는 함께 묻혀 있는 현실이다.

장군1묘역 15호에 안장돼 있는 윤흥정 중장은 당시 전라남북도계엄사령관으로 광주 진압작전 지휘관이었다. 당시 광주에는 7공수여단이 파견돼 있었고, 19일과 20일에는 11공수여단과 3공수여단이 추가 파견됐다. 이들에 대한 작전지휘권을 갖고 있던 것이 윤흥정 중장이다.

그는 처음에는 시위 진압을 수행했다. 하지만 군이 시민을 향해 과도한 폭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한 이후 진압 방식에 제동을 걸었다. 공수여단의 발포 요청을 거부하고, 강경 진압을 자제할 것을 지시했다.

그의 판단은 오래가지 못했다. 신군부는 그를 해임하고 보다 강경한 입장의 소준열 소장을 22일 새로운 전교사 사령관으로 임명했다.

윤흥정 중장은 1993년 12·12내란범을 고소했으며, 신군부 세력을 처벌하기 위해 애썼던 인물이다. 2002년 9월 15일 별세했다.

대전현충원에 자리한 윤흥정 중장의 묘. 윤 중장은 1980년 5월 당시 전라남북도계엄사령관으로 광주에 파견됐지만 발포 허용 요청을 거부한 인물이다. 2026.5.7 ⓒ 뉴스1 이수민 기자

묘역을 따라 몇 걸음을 옮기면 진압을 거부했던 또 다른 의인을 만날 수 있다. 이구호 준장이다.

이구호 준장은 1980년 당시 광주에 소재한 육군기갑학교 교장이었다. 1980년 5월 21일 그는 황영시 당시 육군참모차장으로부터 전차를 동원해 광주를 진압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하지만 이 교장은 "우리가 국민에게 포를 쏠 수야 있습니까? 지시는 지휘계통을 통해 주십시오"라며 명령을 거부했다. 결과적으로 전차는 움직이지 않았다. 더 큰 참상도 막았다.

명령을 따르지 않았던 이구호 준장은 이듬해인 1981년 강제 예편됐다. 이후 그는 홍성직업훈련원, 대전직업훈련원 원장을 잠시 맡았다가 이후 주유소를 운영하며 생계를 이어갔다. 그가 운영했던 주유소의 이름은 '무궁화 주유소'로 알려졌는데, 이 준장의 각별한 애국심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대전현충원 장군1묘역 이구호 준장의 묘. 이구호 준장은 12·12와 5·18관련 수사 때 황영시 참모자장의 불법적인 지시를 폭로한 인물이다. 2026.5.7/뉴스 ⓒ 뉴스1 이수민 기자

이구호 준장은 1999년 2월 1일 향년 65세로 사망, 대전현충원 장군1묘역 95호에 안장됐다.

현장을 찾은 정성일 사단법인 평화통일교육문화센터 기획홍보팀장은 "묘역 구조상 계급이 높을수록 상층부에 자리하게 된다"며 "결과적으로 더 높은 위치에 있었던 인물들이 더 좋은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나쁜 인물일수록 더 높은 자리에 남게 되며, 정의를 위해 싸웠던 이들은 죽어서도 이들로부터 감시받고 탄압받는 아이러니가 발생한다"고 말했다.

breath@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