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묘지에 묻히고 싶었지만…결국 반란군 옆에 잠들다
[누가 국립묘지에 묻히는가②]12·12군사반란 앞장서 막은 장태완 수도경비사령관
- 이수민 기자, 박지현 기자
(대전=뉴스1) 이수민 박지현 기자 = "계엄 한 놈들과 함께 묻힐 수 없다. 나는 나중에 국립5·18민주묘지에 묻히고 싶다."
장태완 전 수도경비사령관은 생전에 "현충원에 안장되고 싶지 않다"는 뜻을 주변에 누차 밝혔던 것으로 확인됐다. 12·12 군사반란 당시 신군부 인사로서 군사반란에 가담했던 이들과 함께 묻히고 싶지 않다는 이유였다.
12·12 군사반란 당시 신군부에 맞서 군 내부에서 가장 치열하게 저항했던 인물로 평가받는 장태완 전 수도경비사령관은 영화 '서울의 봄' 주인공의 모티브가 된 인물이다. 영화와 마찬가지로 전두환을 중심으로 한 신군부의 군사반란을 가장 앞장서 막고자 했다.
이런 그가 마지막까지 원했던 안장 장소는 현충원이 아닌 5·18민주묘지였다. 하지만 그는 현재 대전현충원 장군 제2묘역 132호에 잠들어 있다.
그의 바람은 여태까지 한 번도 알려지지 않았다.
<뉴스1> 취재에 따르면 장태완 장군은 자신과 1994년부터 의형제를 맺었던 김성대 정치학박사와 실제로 생전에 5·18묘역을 찾기도 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김 박사는 취재진에게 "장태완 장군이 계엄군들과 함께 묻히고 싶지 않다고 해 함께 5·18묘역을 찾는 등 노력했었다"며 "당시 5·18 묘지관리소장을 찾아가기도 했지만 관련법상 어렵다는 답을 들었다. 결국 어쩔 수 없이 현충원에 안장됐다"고 말했다.
모순되게도 장 장군의 바람을 비웃기라도 하듯 현재 그의 바로 옆 묘지인 131호에는 그를 감청하며 반란군 수뇌부에 정보를 전달했던 정도영 당시 보안사령부 제1처장(보안처장)이 묻혀 있다.
반란을 막은 사람과 반란을 완성한 사람이 동일 국가예우를 받는 구조의 모순을 지난달 30일 찾은 대전현충원에서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두 사람의 묘역은 불과 몇 걸음 거리였다. 따뜻한 봄 햇살이 내리쬐던 대전현충원 장군 묘역은 조용하고 평온했다. 묘역은 잘 정돈돼 있었고, 묘비에는 이름과 계급, 훈장 이력 등이 새겨져 있었다. 그러나 12·12 군사반란과 관련된 설명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장태완 장군은 1979년 12월12일 전두환을 중심으로 한 신군부 세력의 군사반란을 가장 앞장서 막으려 했던 군인이다.
당시 수도경비사령관이었던 그는 반란군 병력 이동을 저지하기 위해 곳곳에 출동을 요청했지만 번번이 좌절됐다. 특전사령부와 타 부대에 지원을 요청하는 통화 내용은 보안사령부에 의해 도청됐고, 반란군은 이를 토대로 회유와 협박을 벌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반란 이후 장태완의 삶은 급격히 무너졌다. 그는 서빙고 대공분실로 끌려가 45일간 조사를 받은 뒤 강제 예편됐다. 이후 가택연금 상태로 보안사의 감시를 받았고 가족들도 잇따라 비극을 겪었다.
서울대 자연대에 입학해 학년 수석을 했던 아들은 1982년 실종 뒤 한달만에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고, 아내 역시 극심한 고통 속에 2012년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장태완 본인도 심근경색과 폐암 등을 앓다 2010년 7월 26일 향년 7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반란군인 정도영의 묘비에는 '참군인으로서, 든든한 아버지로서, 인자한 할아버지로서 항상 최고셨던 분', '최선을 다하라'는 말씀 가슴 깊이 새기겠습니다'라는 유족들의 추모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정도영은 당시 보안사령부 보안처장으로, 반란군의 핵심 정보·감청 라인을 주도한 인물로 평가된다. 보안사령부 내부에서 군 지휘관들의 통신을 도·감청하며 주요 정보를 신군부 수뇌부에 전달했던 인물이다.
정도영은 장태완보다 이틀 앞선 같은 해 7월 24일 숨졌다. 결국 장태완은 죽어서도 자신을 감청했던 반란군 인물 옆에 묻히게 됐다.
장태완과 오랜 기간 교류했던 김성대 박사는 "장 장군은 헌법을 준수하고 제대군인의 명예와 공익을 위해 싸운 참군인이었다"며 "생전 5·18 민주묘지에 묻히고 싶다는 뜻도 밝혔는데 현재 반란군들과 함께 있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어 "12·12 이후 장군 본인의 고문 피해뿐 아니라 아들 사망과 아내 사망까지 가족 전체가 큰 상처를 입었다"며 "유족들도 오랜 세월 극심한 고통 속에 살아왔다"고 덧붙였다.
현재 장태완 추모사업도 추진되고 있지만 내부 사정 등으로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현충원에서 만난 김두현 씨(22)는 "묘비만 보면 모두 나라를 위해 헌신한 영웅처럼 느껴진다"며 "군사반란이나 시민 학살과 관련된 인물이라는 사실을 현장에서는 전혀 알 수 없다. 후에 역사적으로 밝혀진 내용을 비석을 통해서라도 반드시 명시해서 후대에서 이 사람이 진정한 애국 영웅인지, 군사반란 가담자인지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breath@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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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국립묘지는 국가를 위해 헌신하거나 희생한 이들을 기리는 공간이다. 그러나 국립 현충원 묘지에는 5·18 민주화운동 당시 유혈 진압에 관여한 계엄군 지휘관과 12·12 군사반란에 가담한 인사들 상당수가 안장돼 있다. 헌정질서를 무너뜨린 국가폭력의 가해자와 그로 인해 희생된 피해자가 같은 공간에 잠들어 있는 현실이다. 뉴스1 광주전남본부는 5·18 46주년을 맞이해 현충원에 안장된 인물들의 현황을 점검한다. 국가는 누구를 기리고, 우리는 무엇을 기억해야 하는지를 7편에 걸쳐 나눠 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