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100원' 27년 고집이 이룬 '기적'…학생 1171명에 희망 심어줘
[빛,나눔] 광주 100원회 김희만 회장
장학금 위해 폐지 주우며 지켜낸 약속
- 박지현 기자
(광주=뉴스1) 박지현 기자 = 커피 한 잔 값도 되지 않는 하루 100원. 사소한 돈이 27년 동안 모여 1171명의 학생에게 2억여 원의 장학금으로 돌아갔다. 김희만 회장(77)이 만든 '100원회' 이야기다.
김 회장을 추석연휴 시작 전인 지난 2일 만났다.
1999년 IMF 외환위기 직후 광주 서구청 공무원이던 김 씨는 신문 한 구절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휴가 나온 아들에게 고기 한 근을 사주지 못해 구속된 어머니.' 그는 충격을 받았다. 아무리 어렵다 해도 이렇게까지 무너질 수는 없다는 절망감이 엄습했다.
그 순간 책상 위에 놓인 동전 몇 개가 눈에 들어왔다. 그날의 '하루 100원이라면 누구나 낼 수 있지 않겠는가' 결심이 100원회의 시작이었다.
처음에는 비웃음도 따라다녔다. '100원으로 뭘 할 수 있겠냐'는 회의적인 시선, 공무원 신분으로 영달을 노린다는 오해까지 겹쳤다. 하지만 김 회장은 포기하지 않았다.
김 회장은 "하다 말면 '그럴 줄 알았다'는 말을 들을 것 같았다. 그래서 더 고집을 꺾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렇게 시작한 모임은 어느덧 전국 750여 명이 참여하는 작은 공동체로 자라났다.
100원회의 회원은 유치원생부터 80대 어르신까지 다양하다. 지금까지 대학생 277명, 중·고교생 894명 등 모두 1171명의 학생이 이 장학금을 받아 학업을 이어갔다. 생활비, 의료비, 난방비 지원과 독거노인을 위한 영정사진 무료 제작도 꾸준히 이어왔다.
단체 운영에는 원칙이 있었다. 회원들의 회비는 오로지 장학금으로만 사용했다. 행사비나 운영비는 김 회장이 직접 충당했다. 퇴직 후에는 화물트럭을 몰며 경비를 마련했고, 밤길에서 공병과 폐지를 주워 팔기도 했다. 그는 "회원들이 맡긴 돈을 한 푼도 다른 데 쓰지 않는다"는 다짐을 27년째 지키고 있다.
회원들도 넉넉한 주머니 사정이 아닌 경우가 많다. 김 회장은 "어떤 분은 수년째 자동이체로 100원을 보내고, 어떤 분은 5년 만에 다시 떠올려 저금통을 가져오기도 한다"며 "중요한 건 금액이 아니라 꾸준함"이라고 전했다.
그의 기억 속엔 잊지 못할 장학생들이 있다.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대학 졸업까지 장학금을 받으며 지금은 대학병원 간호사가 된 제자, 유치원 시절 도움을 받다가 군 장교로 성장한 청년도 있다. 김 회장은 작은 씨앗이 사회 곳곳에서 꽃을 피우는 걸 보면 보람을 느낀다.
장학금 전달 현장에서는 예기치 않은 순간이 울림을 남기기도 했다. 몇 해 전에는 할머니 손을 잡고 온 네 살배기 아이가 돼지저금통을 내밀었다. 안에는 5만3000원이 들어 있었다.
봉사라는 일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가족들의 만류도 있었다. 아내는 "이젠 나이도 있고 건강도 챙겨야 한다"며 활동을 그만두길 권했다. 하지만 김 회장은 버티기로 했다. 버려진 공병 하나까지 주워 팔며 여기까지 왔는데 중간에 멈출 수는 없어서다. 지금은 가족들도 김 회장의 뜻을 존중하고 오히려 격려해 준다.
100원회의 활동은 사회적으로도 주목받았다. 2018년 국민추천포상 국무총리 표창을 받았고, 2021년에는 광주시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 하지만 김 회장은 "상을 받으려고 한 게 아니고 상금이 나오면 몽땅 장학금에 보탰다"며 전했다.
그는 IMF 때와 지금의 현실을 겹쳐 본다. 요즘 경제가 어렵다는 말을 매일 듣기 때문이다. 커피 한 잔이 수천 원, 소주 한 병이 5000원 하는 세상이지만 하루 100원조차 버거운 사람들도 있어 나눔은 더 필요하다.
김 회장은 장학금을 받는 학생들에게 늘 같은 말을 건넨다. 언젠가는 또 다른 누군가의 '100원회'가 되어 나눔의 선순환을 이어가달라고 부탁한다.
김 회장은 "100원회는 제 청춘을 다 바친 인생의 전부"라며 "저는 그저 심부름꾼일 뿐이다. 학생들이 꿈을 이어가는 걸 보는 게 제 보람이다"면서 환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warm@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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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내 가족, 내 동네, 내 나라라는 표현보단 우리 가족, 우리 동네, 우리나라라는 말이 더 자연스럽다. 우리들 마음에 '공동체 정신'이 녹아 있어서다. 자신의 빛을 나눠 우리 공동체를 밝히는 시민들을 소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