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잡한 신소재 없이 '분자 바람개비'로 빛 회전방향 마음대로 제어

KAIST-충남대-아주대-일본 이화학연구소 공동연구

분자 배열을 이용한 원편광 제어 연구 이미지(AI 생성·KAIST 제공) /뉴스1

(대전=뉴스1) 김종서 기자 = 복잡한 신소재 없이 분자의 집단적인 배열을 제어해 빛의 회전 방향을 결정할 수 있는 새로운 길이 열렸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은 화학과 윤동기 교수 연구팀이 충남대학교, 아주대학교, 연세대학교 및 일본 이화학연구소(RIKEN) 연구진과 공동으로 마이크로미터 크기의 카이랄 바람개비 구조를 형성하고 이를 고분자 나노섬유로 영구적으로 복제하는 기술을 개발했다고 14일 밝혔다.

우리의 왼손과 오른손처럼 거울에 비친 모습과 같지만 서로 완전히 겹쳐지지 않는 성질을 카이랄성이라고 한다. 단백질과 DNA 같은 생체분자는 물론, 차세대 디스플레이와 광센서, 광통신 등에 사용되는 광학 소재의 핵심 특성이다.

지금까지는 카이랄 광학 소재를 만들기 위해 분자 자체를 비대칭 구조로 복잡하게 합성하거나 많은 양의 카이랄 물질을 첨가해야 했다. 제작 과정이 복잡하고 소재 선택의 폭이 제한돼 넓은 영역에서 하나의 회전 방향을 구현하기 어려웠다.

연구팀은 '집단적인 배열이 카이랄성을 만든다'는 새로운 접근법을 제시했다. 접는 방향에 따라 회전을 다르게 하는 바람개비의 원리를 분자에 적용해 특정 방식으로 분자가 집단 배열되면 카이랄성이 나타날 수 있다는 점에 착안했다.

연구팀은 막대 모양의 분자들이 스스로 초미세 바람개비처럼 모이도록 만든 뒤 전체 물질의 1%도 되지 않는 극소량의 카이랄 첨가제를 넣어 모든 바람개비가 같은 방향을 향하도록 유도했다. 이어 이 구조를 고분자 나노섬유 위에 그대로 복제하는데 성공했다.

제작된 구조에 일반적인 발광 물질을 도입하자 구조의 회전 방향에 따라 서로 반대 부호의 원편광 발광 신호가 나타났다. 이는 발광 분자 자체에 카이랄성을 새롭게 도입하지 않고도 주변 구조의 배열만으로 방출되는 빛의 편광 특성을 제어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원편광은 회전하며 나아가는 특수한 빛으로, 회전 방향에 따라 다른 정보를 담을 수 있어 차세대 디스플레이, 광통신, 보안기술의 핵심 광원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번 연구는 새로운 카이랄 분자 합성이 필요 없는 원편광 제어 가능성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연구팀은 설명했다. 향후 다양한 유·무기 발광 소재와 반도체, 나노입자 등과 결합해 기능을 확장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왼쪽부터 KAIST 한정연 박사과정, 아주대 허정무 교수, 충남대 이경진 교수, KAIST 윤동기 교수(KAIST 제공) /뉴스1

윤 교수는 "이번 연구는 복잡한 카이랄 분자의 화학구조가 아닌 배열 방식만으로 빛의 회전 방향을 제어한 것이 핵심"이라며 "복잡한 신소재를 새로 만들지 않고도 차세대 디스플레이와 AR·VR 광학소자, 편광 센서, 광통신 등에 활용할 수 있는 새로운 광학 소재 설계 원리를 제시했다”고 말했다.

KAIST 한정연 박사과정 학생이 제1저자로 참여한 이번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Nature Communications)에 게재됐다.

jongseo12@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