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기후위기시대, 도시의 생존법 ‘숲’과 ‘정원’에서 찾는다
남성현 국민대 석좌교수(전 산림청장)
지금 우리는 인류 역사상 첫 ‘기후 비상사태’의 한복판을 지나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그 영향권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지난해만 하더라도 기록적인 폭염과 예측 불가능한 국지적 집중호우, 그리고 역대 최대 규모의 산불이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는 초유의 사태를 목격했다. 이러한 극한 기상은 우리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경고등이다. 특히, 인구와 기반 시설이 고도로 밀집된 도시는 기후 재난의 최전선인 동시에,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70% 이상을 쏟아내는 기후 위기의 발원지라는 역설적 위치에 놓여 있다. 열섬 현상과 대기 정체는 도시민의 삶의 질을 급격히 떨어뜨리고 있다.
이 삼중고의 굴레 속에서 도시의 생존을 담보할 전략적 해법은 무엇인가? 필자는 그 답을 우리 곁의 ‘도시 숲’과 ‘정원’에서 찾고자 한다. 도시 숲은 단순한 녹색 휴식처를 넘어 기후 위기에 대응하는 가장 효율적인 ‘천연 에어컨’이자 ‘거대한 공기청정기’다. 실제로 잘 조성된 숲은 여름 한낮의 평균 기온을 3~7도 낮추고 습도는 9~23% 높여 도심 열섬 현상을 실질적으로 완화하는 효과가 있다. 일례로 버즘나무(플라타너스) 한 그루가 하루 평균 15평형 에어컨 5대를 5시간 동안 가동하는 것과 맞먹는 냉방 효과를 낸다는 사실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더욱이 정원은 도시가 가져야 할 ‘회복력(Resilience)’을 상징한다. 도시 숲이 탄소흡수원이자 거시적인 생태적 기능을 담당한다면, 정원은 시민의 삶 속에 밀착된 ‘녹색 복지’를 제공한다.
현재 우리 사회가 직면한 가장 고통스러운 환경 문제 중 하나는 ‘미세먼지’다. 도시 숲은 미세먼지 농도를 평균 25.6%, 초미세먼지를 40.9%까지 저감하며 시민의 건강권을 지키는 핵심 인프라다. 기후 변화로 인해 대기 정체가 심화(深化)될수록, 기계적인 미세먼지 저감 장치보다 자연의 섭리를 이용한 도시 숲의 기능은 더욱 중요해진다. 이를 위해 정교하고 과학적인 대책을 추진해야 한다. 우선, 도시 외곽의 깨끗하고 찬 공기를 도심으로 끌어들이는 ‘바람길 숲’을 체계적으로 조성하여 열기와 오염물질을 배출해야 한다. 또한, ‘미세먼지 저감 숲’과 ‘도시 탄소저장 숲’ 등 기능별로 특화된 숲을 확충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특히 어린이보호구역 내 ‘자녀안심 그린 숲’과 같이 우리 아이들의 생활권에 밀착된 녹지를 확대함으로써 녹지 형평성을 달성해야 한다. 방치된 자투리땅을 시민 참여형 정원으로 탈바꿈시키는 것은 도시 전체의 녹색 밀도를 높이는 실천적인 방법이다.
최근 ‘도시 숲’ 정책의 패러다임이 ‘양적 확대’에서 ‘질적 관리’로 전환되고 있는 점은 매우 고무적이다. 2023년 기준 우리나라 1인당 생활권 도시 숲 면적은 14.07㎡로 세계보건기구(WHO) 권장 기준인 15㎡에 상당히 근접했다. 그러나 지표 이면을 들여다보면 서울(13.08㎡)이나 경기(11.07㎡) 등 인구 밀집도가 높은 대도시권의 지역별 편차는 여전히 심각한 수준이다. 이제는 캐나다 밴쿠버나 호주 멜버른 등 선진 도시들이 채택하고 있는 ‘3-30-300 규칙’을 적극적으로 도입할 때다. 이는 ‘집에서 나무 3그루를 볼 수 있고(3), 도시 내 수관(樹冠) 피복률(Canopy Cover)을 30% 이상으로 유지하며(30), 거주지에서 300m 이내(걸어서 5분 거리)에 도시 숲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300)’라는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질적 지표다. 숫자상의 면적을 넘어 시민 개개인이 일상에서 녹색의 혜택을 체감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해야 한다.
정부와 지자체는 탄소 중립과 기후 적응을 위한 정책적 우선순위에 ‘녹색 인프라’를 최우선으로 배치하고, 관련 예산과 법적 근거를 공고히 다져야 한다. 도시 숲 지원센터와 같은 중간 조직의 전문성을 강화하고, 기업의 ESG 경영과 연계한 탄소흡수원 확충 프로그램이나 시민 과학자가 참여하는 모니터링 체계를 활성화해야 한다.
기후 위기는 먼 미래의 예고된 재앙이 아니라 지금 우리 문 앞까지 들이닥친 현실이다. 우리가 오늘 심는 나무 한 그루와 정성껏 가꾸는 작은 정원은 단순한 조경 시설이 아니다. 그것은 기후 재난으로부터 시민의 생명을 보호하는 최후의 ‘생명줄’이다. 숲과 정원이 숨 쉬는 도시, 그것이야말로 기후 위기 시대 우리가 나아가야 할 유일한 생존의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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