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마민주항쟁 불씨 지핀 '이화여대 가위배달 사건' 진위는?

16일 오후 부산대학교 상남국제회관 2층 효원홀에서 열린 10·16 부마민주항쟁 부산대학교 증언집 출판 기념회에서 증언 참여자로 참여한 동문과 전 직원들이 발간된 증언집을 증정받고 있다. ⓒ 뉴스1 조아현 기자
16일 오후 부산대학교 상남국제회관 2층 효원홀에서 열린 10·16 부마민주항쟁 부산대학교 증언집 출판 기념회에서 증언 참여자로 참여한 동문과 전 직원들이 발간된 증언집을 증정받고 있다. ⓒ 뉴스1 조아현 기자

(부산=뉴스1) 조아현 기자 = 1979년 10월 16일 부마민주항쟁이 시작되기 보름 전쯤.

부산대학교 법대생들이 앉아 고시공부를 하던 열람실 '학봉정(學峰廷)'으로 이화여대에서 보낸 가위가 도착했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이화여대에서 가위가 소포로 배달됐다는 소문에 대해 부산대 학생들은 '독재정권에 반발하는 목소리조차 내지 못한다면 가위로 신체 일부를 잘라버려라'는 치욕적인 조롱으로 여겼다.

유신체제 하에서 큰 시위 없이 조용한 상태가 계속되자 부산대 학생들은 모교를 자조적으로 '유신대학'이라고 부르던 상황이었다.

자존심이 상한 학생들의 가슴 속 무언가가 꿈틀대기 시작했다.

당시 부산대 구정문에서 남포동 부영극장까지 시위를 했던 최인석씨(77학번·기계)는 "(이화여대에서)면도칼을 보냈다는 등 어쨌다는 등 나중에 알고보니 그쪽 주모자들이 다 퍼뜨린 내용들이었다고 들었다"라면서 "자존심도 상하기도 하고 (그 소문을)많이 퍼뜨리고 다니고 그랬다"고 증언집을 통해 회상했다.

부마민주항쟁 시위에 동참했던 주기재 부산대 생명공학과 교수는 "이화여대에서 가위를 보냈다는 이야기로 학생들이 약이 많이 올랐다"며 "'부산대는 시위도 한 번 제대로 못하고 이게 무슨 짓이냐'라는 의미로 받아들이고 열이 받은 것"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억압된 학생들의 감정은 목구멍 끝까지 차올랐고 마침내 10월 16일 부마민주항쟁으로 이어졌다.

'이화여대 가위배달 사건'은 정말 있었던 일이었을까.

16일 오후 열린 10·16 부마민주항쟁 부산대 증언집 출판기념회에서 신재식씨(75학번·법정)는 "실제로 있었던 일은 아니다"라고 증언했다.

신씨는 "전국적으로 유신체제에 반대하는 움직임이 언론 보도조차 안되니까 상황을 잘 모르긴 했지만 부산대는 유독 조용했다"며 "학내에서 부산대를 자조적으로 부른 이름이 '유신대학'일 정도였고 당시 시위를 계획할 때만해도 학교 앞은 논이고 옆은 밭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백날 시위해봐야 소용없다'는 생각이 들어 시내로 진출했다"며 '폭발력을 끌어 올리기 위해 '이화여대에서 가위가 소포로 날아왔다'는 소문을 선,후배들과 퍼뜨리기 시작했다"고 회상했다.

그는 "유신대학이라는 자조섞인 별명과 이같은 소문은 학내에서 굉장한 반향을 불러 일으킨 사건이었고 10월 중순에 임박하면서 분위기가 고조됐다"며 "아직도 많은 증언들이 나와야하고 지금의 과정이 비사(鄙事)를 정사(正史)로 만들어가는 과정이라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이화여대 가위 배달 사건'이라는 방편(方便)이 결과적으로는 부산대에서 시작된 부마민주항쟁 시위를 성공으로 이끈 중요한 요소가 된 셈이다.

주 교수는 "당시 시위대를 따라 남포동으로 가니까 오후 5시부터 넥타이 부대(직장인)들이 합류하면서 시민운동으로 커졌다"며 "시민들이 박카스를 사주고 학생들을 독려해주면서 분위기가 고조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시위는 부산대에 이어 동아대가 합류했고 마산으로 퍼졌다"며 "성공한 또 하나의 이유는 남포동 국제시장의 미로처럼 얽혀있는 복잡한 골목"이라고 말했다.

구도심 특성상 좁고 여러 갈래로 나뉘어진 길목에서 시위대가 두더지처럼 튀어나와 경찰 진압대가 억류하거나 가로막을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주 교수는 "서울처럼 지속적으로 데모를 했으면 주동자를 미리 찍어놓고 제압했겠지만 부산대는 좌충우돌에 가까울 정도로 계획없이 한꺼번에 터져나온 것이었기 때문에 시위 참가자 모두가 사령탑인 셈이었다"며 "그만큼 막을 수 없었던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날 전호환 부산대 총장은 출판기념회 축사를 통해 "부산대가 부마민주항쟁의 발원지인만큼 10·16 부마민주항쟁 부산대 기념관을 꼭 만들고 싶다"며 "예산 문제도 있지만 간절함을 모아 부마민주항쟁과 관련된 주요 기록물을 전시할 수 있는 기념관 반드시 건립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choah4586@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