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덕후의 인썸니아] 어떤 공연장을 좋아하세요? - '에무'와 '채널1969'

'채널1969'에서 공연 중인 '전국비둘기연합'
'채널1969'에서 공연 중인 '전국비둘기연합'

지난 주말에는 광화문에 소재한 '에무'와 처음 가보는 공연장인 '채널1969'에서 열린 두 공연을 보았습니다. 항상 가는 곳이 아닌, 새로운 두 장소에서의 공연이었습니다. '에무'는 몇 번 가본 적 있기는 하지만, 홍대가 아닌 광화문의 한적한 언덕 위에 있다는 점에서 새롭다고 표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계절 출판사에서 운영하는 '에무'는 '복합문화공간'을 표방하며 레스토랑과 갤러리, 영화관과 라이브 공연 공간이 있는 펍 등이 한 건물에 있습니다. 밝고 화려한 조명이 갖춰진 넓은 무대에, 플로어에는 테이블이 있어서 편히 앉아 음료를 마시며 공연을 관람할 수 있는 에무의 지하 펍 '팡타 개러지'에 비하여, 그다음날 갔던 '채널1969'는 합정역 부근의 지하 술집으로, 무대랄 것도 없는 구석의 공간에 텅스텐 불빛이 비치고 있는 소박한 곳이었습니다.

'복합문화공간 에무'의 지하 펍 '팡타 개러지'에서 연주 중인 밴드 '익시'

금요일 밤, 한 시간이 넘도록 버스를 타고 꽉 막힌 도로를 지나 광화문의 에무에 갔던 이유는 새로운 장소에서 공연을 하는 밴드 '익시'를 보기 위해서였습니다. 늘 하는 곳이 아닌 곳에서 연주를 하는 모습은 어떻게 보일까 궁금했기 때문이죠. 익시를 비롯하여 세 팀이 함께 공연을 했는데 나머지 두 팀은 잘 모르거나 처음 보는 밴드였습니다. 익시는 첫 순서로 무대에 올랐는데, 여러가지 사정으로 좀 늦게 오는 관객들이 있으므로 첫 순서는 아무래도 관객이 좀 적은 게 사실입니다. 팡타 개러지는 상당히 넓은 공연장인데, 무대 앞으로 나가서 구경할 수 있도록 공간을 비워두고 무대에서 좀 떨어진 뒤쪽에 테이블을 배치해 두었습니다. 사람들은 다들 테이블 쪽에 앉아 있었고 무대 앞 플로어에 선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요. 가까이서 사진을 찍고 싶었던 저는 다른 관객들의 시야를 가릴까봐 무대 끝 쪽에 섰습니다. 그랬더니 바로 옆에 있는 스피커가 한쪽 귀에 붙은 셈이 되어 연주 소리가 전체적으로 들리지 않고 보컬님의 목소리만 제 귀에 크게 들려왔어요. 물론 보컬님의 목소리는 정말 듣기 좋았지만 그렇다고 다른 악기소리가 제대로 들리지 않고 목소리만 듣는 것은 올바른 음악감상 방법이 아니겠지요.

다른 관객들이 저의 뒷모습을 보고 있다고 생각하니 맘놓고 뛰기도 어렵고, 음악을 듣는 것도 사진을 찍는 것도 100% 집중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연주자들 역시 그런 분위기에 조금 위축되어 실력발휘를 마음껏 하지 못하는 듯 보였습니다. 30분 만에 익시의 공연은 끝이 났고, 뒤를 이은 두 밴드는 딱히 제 취향이 아닌 음악을 하는 팀이어서 뒤에 앉아 건성으로 연주를 보던 저는 결국 공연을 끝까지 보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다음날은 '전국비둘기연합'과 '57'의 공연을 보기 위해 '채널1969'에 처음 가보았습니다. 역시 세 팀이 함께하는 공연이었는데 첫 팀은 '노니파이(nonifi)'라는 들어보지 못한 이름의 밴드였어요. 어두침침한 지하공간에서 별 기대 없이 차를 마시던 저는, 노니파이가 연주를 시작하자 깜짝 놀라서 고개를 들었습니다.

전주에서 활동하는 밴드 '노니파이'

어쿠스틱 기타를 들고 무대로 간 보컬님의 목소리가 엄청나게 좋았으며, 조용하게 연주할 줄 알았던 기타는 줄이 끊어져라 격렬한 사운드를 뿜었던 것입니다. 기타음과 꼭 어울리는 드럼의 챙챙거리는 소리도, 화음을 넣은 화려한 키보드도 상당히 매력적이었으며 특히 보컬님은 드물게 잘생긴 꽃미남이기까지 했습니다. 얼른 앞쪽으로 뛰어나간 저는 어두워서 잘 나오지도 않는 사진을 마구 찍었지요. 전주에서 올라왔다는 노니파이는 아마도 인기가 좋아서 지역의 팬이 많은 것 같았고, 그 팬들의 일부는 공연을 보러 따라 온 듯 했습니다. 뒤쪽 테이블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바로 팬들인 것 같았는데 곡이 끝날 때마다 큰 소리를 치며 응원의 박수를 보냈습니다. 그 바람에 저까지 함께 신이 나더라구요.

두번째 순서인 '57'이 세팅을 하는 사이 저는 무대에 바짝 붙어 섰는데 어느새 사람들이 쏟아져 들어와 플로어는 바글바글했습니다. 단이 없는 무대에 붙어 있으니 연주자가 매우 가깝게 보였어요. 연주자의 바로 앞에서 라이브 공연을 보는 관객들은 흥분했고, 몸을 흔들고 박수를 치는 관객들에 둘러싸인 57님들 역시 신이 나서 전기충격이라도 받은 듯이 격렬한 움직임으로 연주를 했습니다.

마지막 순서였던 '전국비둘기연합'의 기타 김동훈님은 마침 저의 바로 앞쪽에 이펙터를 놓고 연주를 시작했습니다. 기타에 얼굴을 맞지 않도록 조심해야 했을 정도로 말 그대로 코앞에서 동훈님의 연주를 보았는데, 반짝거리는 예쁜 얼굴에 땀이 송글송글 맺히고 줄줄 흘러내리다가 뚝 떨어져 공중에 분사되는 모습까지 자세히 볼 수 있었지요. 기다란 손가락이 기타줄을 뜯고 발로는 연신 이펙터의 버튼을 눌러댔는데 그걸 바로 옆에서 지켜보자니 마치 합주실에 놀러 간 듯한 느낌이 들어서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관객들은 함께 뛰고 소리지르고 몸을 흔들고, 공연장 안은 열기가 올라 뜨거워졌어요.

밴드 '57'의 파워풀한 무대

이틀에 걸쳐 두 곳의 공연을 보면서, 저는 '재미있는' 공연이 되려면 어떤 요소가 있어야 하는 것일까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손님의 편의를 최대한 배려한 공간이었던 '에무'에서의 공연은 저에게는 조금 지루한 것이었지만, 특별한 인테리어가 없고 어두침침한 '채널1969'에서는 너무나 재미있어서 법석을 떨었으니까요.

1. 앉아서 본다 vs 서서 본다

몇시간의 공연 내내 서 있어야 하는 스탠딩 공연이 체력적으로 힘이 드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역시 공연은 스탠딩이 진리입니다. 앉아서 보아도 되는 경우는 조용한 노래 중심의 공연뿐이죠. 조용히 노래를 하는데 가만히 서서 듣는다면 서 있는 것 자체가 쑥스러워지겠으나, 신나는 음악은 뛰고 춤출 수 있어야 합니다. 예전에 한 밴드의 단독공연을 고급스러운 클래식 공연장에서 한 적이 있었는데, 격조 높은 붉은색 안락의자에 앉아 고막을 찢을 듯한 하드록을 듣는 것은 차라리 고역이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환호를 하기는 고사하고 박수치는 것도 눈치를 보아야 했었어요. 대단한 실력을 지닌 밴드의 공연이었지만 정말 재미가 없었습니다.

2. 무대와의 거리가 멀다 vs 가깝다

사실 제대로 연주 사운드를 감상하자면 무대에서 좀 떨어진 중앙에 자리잡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양쪽 스피커에서 뿜어내는 소리가 잘 어우러질 수 있는 정도의 거리를 두어야 연주자들이 의도하는 음악이 들리겠지요. 하지만 팬들은 좋은 사운드와 함께 애정밴드의 숨결을 느끼고 싶어 합니다. 기왕 공연을 보러 갔다면, 사운드는 포기하더라도 좋아하는 뮤지션을 가까이에서 잘 보고 싶은 마음이 더 클 것입니다. 넓은 플로어는 많은 관객을 들이기에는 좋지만, 관객이 아주 많지 않은 경우에는 오히려 작은 공연장에서 연주자와 바싹 붙어서 복작거릴 때 더욱 흥분이 고조되곤 합니다.

3. 밝다 vs 어둡다

저처럼 사진 찍는 것이 취미인 사람은 밝은 공연장을 선호합니다만, 어디까지나 무대의 조명에 한해서입니다. 플로어까지 훤하게 밝다면 눈치보지 않고 망가져가며 춤추고 날뛰기는 좀 힘이 들기 때문이죠. 아무리 음악에 몰입했다고 해도 훤하게 밝아 주변 사람들의 얼굴이 또렷이 보이는 곳에서 몸을 흔들어댈 용기가 날 만한 사람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무대와 뚝 떨어진 테이블에 앉아서, 넓은 플로어에는 사람이 별로 없고 좀 밝은 편이었던 에무에서는 그래서 관객도 연주자도 음악에 푹 빠져 공연을 즐기기에는 조금 어색한 분위기가 되었고, 게다가 저의 취향과는 약간 동떨어진 밴드가 두 팀 있었다는 개인적인 이유까지 더해 감흥이 적은 공연이 되었습니다. 그에 비해서 무대의 단이 없어서 관객과 뮤지션이 같은 눈높이에서, 손을 내밀면 연주자를 만질 수 있는 가까운 거리에서 행해진 채널1969의 공연은 그야말로 광란의 도가니였지요. 더구나 실내는 좀 어두웠고 플로어도 넓지는 않아서, 관객들은 옆사람과 몸이 닿을 정도로 붙어 있었기 때문에 서로의 흥분이 전달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채널1969에도 테이블이 있었지만, 실내의 구조상 테이블쪽에 앉아 있으면 무대를 잘 볼 수 없어서 공연을 보려면 플로어로 나와야 했으므로 결국 관객들은 선택의 여지가 없이 스탠딩으로 공연을 보아야 하는 곳이었구요.

하지만 공연장의 이런 조건들과 상관없이, 재미있는 공연이란 '내가 좋아하는 밴드'가 하는 공연이라는 건 불변의 사실입니다. 좋아하는 뮤지션들의 얼굴만 봐도 행복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덕후의 본능이거든요. 그러니 애정밴드님들! 작은 곳이든 큰 공연장이든 공연만 해주신다면 언제든지 달려갑니다. 그리고 수익과 상관없이 인디밴드의 공연을 위해 장소를 제공해주는 분들 역시 참 감사하고 존경합니다. 최근에는 홍대 인근이 아닌 광화문, 또는 강남 쪽에서도 벤드의 공연을 볼 수 있는 곳이 생겼는데, 이렇게 공연 문화가 홍대에 집중되지 않고 지역을 넓혀가는 것은 대단히 고무적인 현상이라 생각합니다. 더 많은 곳에서 더 많은 사람들이 인디 음악을 접하고 즐길 수 있도록 힘쓰는 모든 분들 응원합니다! 그리고 인디음악을 해주시는 뮤지션님들, 사랑합니다♡

필자 강지연은

나이가 좀 되는 서울아줌마.

대학에서 신문방송학을 전공하고 졸업 후에는 일본으로 가서 패션스쿨을 다녔으나 배운 것을 써먹은 적은 없음. 결혼 후 남편을 따라 미국 시골의 대명사 오클라호마에서도 살았던 경험 있음.

2007년 우연히 본 인디가수의 뮤직비디오를 보고 그에게 한눈에 훅 빠져서, 태어나서 처음으로 스탠딩 공연이라는 걸 가보게 되고 그 공연에서 눈앞에서 펼쳐지는 기타, 베이스와 드럼연주 모습에 넋을 잃고 그 후 홍대 인근 클럽을 쏘다니며 인디밴드의 공연을 보는 취미를 얻게 되었다.

-연세대학교 신문방송학과 졸업

-일본 Bunka 패션스쿨 졸업

-서강대학교 영상대학원 졸업

kh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