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성룡은 '징비록' 저술할 때 어떤 책상을 썼을까

민속박물관, '풍산류씨 집안의 가족 이야기' 상설 전시

'풍산류씨 집안의 가족 이야기' 전시 모습 ⓒ News1

(서울=뉴스1) 박창욱 기자 = 이중환의 '택리지'에 살기 좋은 곳으로 소개됐으며, 2010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경북 안동의 하회마을. 이곳에는 조선의 대표적인 명문가 중 하나인 풍산 류씨 가문이 있다.

고려말 조선초에 풍산류씨 류종혜 이래로 그의 5대손 류중영(1515~1573)을 중심으로 류운룡(1539~1601)과 류성룡(1542~1607)을 비롯해 수많은 학자와 훌륭한 신하들이 배출됐다.

류운룡과 류성룡 형제가 이황(1501~1570)의 문하에서 수학하면서 대대로 가학(家學)을 형성했으며, 특히 영의정까지 지낸 류성룡은 임진왜란을 이겨낸 공신으로 잘 알려져 있다.

국립민속박물관은 한국국학진흥원과 함께 '풍산류씨 집안의 가족 이야기' 전시를 상설전시실3관 가족 전시코너에서 2016년 5월까지 1년간 진행한다고 17일 밝혔다.

이번 전시에선 한국국학진흥원 소장의 풍산류씨 집안의 기탁자료 160여점을 통해 ‘충효(忠孝)’를 가훈으로 삼아 실천했던 하회마을 풍산류씨 집안의 가족 이야기를 소개한다.

류운룡과 류성룡 두 형제는 항상 부모님을 모시기 위해 번갈아가며 안동 근처 고을에서 벼슬살이를 했다. 임진왜란 때 류성룡은 영의정으로서 왕을 모심에 따라, 형인 류운룡은 벼슬을 그만 두고 어머니를 모시고 가족들과 피난하기로 정하는 등 평생 충(忠)과 효(孝)에 힘썼다.

그래서 류성룡은 임종하기 전에 자손들에게 “충효 이외에 힘쓸 일은 없다”라는 유훈을 남겼고, 그의 증손자 류의하(1616~1698)는 그 유훈을 받들어 ‘충효당(忠孝堂)이라는 당호를 지어 자제들을 교육했다.

전시장에는 허목(1595〜1682)의 글씨로 알려진 충효당 현판과 임진왜란 당시 국정을 운영하였던 류성룡의 영의정 교지와 ‘문충공’ 시호교지 등이 전시된다. 류운룡과 류성룡은 '퇴계학'을 발전시켰고, 후손들도 이를 이어받아 '서애학파'라는 가학(家學)을 형성했다.

류성룡의 8대손 류이좌는 “화(和)로써 어버이를 섬기면 효(孝)요, 경(敬)으로써 임금을 섬기면 충(忠)이다”는 ‘화경당(和敬堂)’ 당호로 그 유훈을 실천하고자 했다.

전시에는 석봉이라는 호로 더 유명한 한호(1543〜1605)의 글씨를 모각한 ‘화경당’ 현판, 한 집안에서 동시에 2명의 문과 합격자를 배출한 경사를 한글가사로 표현한 ‘쌍벽가’도 소개된다. 아울러 문중 행사를 효의 실천으로 여긴 풍산류씨 집안 사람들의 모습이 영상물로 선보인다.

아울러 하회마을이 내려다보이는 옥연정사에서 류성룡이 임진왜란의 회고록인 '징비록'을 작성할 때 사용했던 대나무 경상(經床)이 특별히 전시된다. 여기에 쓰여진 이만부(1664~1731)의 글에 따르면 류성룡이 아들 류진(1582∼1635)에게 전한 것이라 한다.

민속박물관은 5월 가정의 달을 맞이하여 대대로 ‘충효’를 가훈으로 삼고 실천한 풍산류씨 집안의 가족이야기를 통해서 오늘날의 내 가족을 있게 해준 조상을 생각해 보고, 가족 간의 소중한사랑과 실천이 삶에 큰 힘을 가져다주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전시품목들의 모습. (위에서부터) 류성룡의 경상, 류성룡의 영의정 교지, 충효당 현판. 사진-민속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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