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을 습격하고 폭행한 아나니 사건 발생 [김정한의 역사&오늘]

1303년 9월 7일

아나니 사건을 묘사한 회화. (출처: French educational card,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서울=뉴스1) 김정한 기자 = 1303년 9월 7일 이탈리아 아나니에서 프랑스 국왕 필리프 4세의 측근 기욤 드 노가레 군대와 이탈리아 귀족 시아라 콜론나의 병력이 교황 보니파키우스 8세의 별장을 기습 점거했다. 군인들은 침실까지 난입했고 시아라 콜론나는 교황의 뺨을 때리고 폭언을 퍼부었다. 지상 최고의 영적 권위였던 로마 교황이 세속 군주의 물리력 앞에 무릎을 꿇은 초유의 사건이었다.

발단은 성직자 과세권을 둘러싼 국왕과 교황청의 충돌이었다. 전쟁 비용 마련을 위해 교회에 과세하려던 필리프 4세에 맞서, 보니파키우스 8세는 1302년 교황의 절대적 수위권을 선언한 칙서 '우남 상탐'을 반포했다. 세속 권력까지 통솔하며 구원을 얻으려면 교황에게 복종해야 한다는 교황 지상주의의 표명이었다.

필리프 4세는 교황을 이단 혐의로 몰아세우며 파면 공의회 소집으로 맞받았다. 보니파키우스 8세가 국왕 파문을 준비하자, 밀명을 받은 노가레가 선제 기습을 감행했다. 교황은 십자가를 쥔 채 위엄을 지키려 했으나 감금당했다. 사흘 만에 시민들의 봉기로 구출됐지만, 86세 노구의 교황은 치욕과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한 달 뒤 로마에서 숨을 거뒀다.

아나니 사건은 '카노사의 굴욕' 이래 유럽을 지배하던 교황권의 몰락을 알렸다. 영적 권위만으로는 중앙집권화를 추진하던 신흥 민족국가의 군사력을 통제할 수 없음이 드러났다. 세속 군주는 자기 영토 안에서 독립된 통치권을 행사하는 주권자임을 증명했다.

파장은 교황청의 구조적 붕괴로 번졌다. 교황 사후 프랑스 출신 클레멘스 5세가 즉위했고, 교황청은 1309년 프랑스 아비뇽으로 강제 이전됐다. 약 70년간 이어진 '아비뇽 유수'의 시작이었다. 교황청은 프랑스 왕권의 영향력 아래 놓였고, 중세 종교 질서는 회복 불가능한 균열을 맞았다.

아나니 사건은 중세 신정주의의 황혼과 근대 민족국가 탄생을 재촉한 분기점이었다. 절대적 영적 권위가 현실 권력의 칼날 앞에서 해체되는 양상을 보여준 이 비극은, 권력 중심 이동의 냉혹함을 여실히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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