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작가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출생 [김정한의 역사&오늘]

1749년 8월 28일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출처: 요제프 카를 슈틸러,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

(서울=뉴스1) 김정한 기자 = 1749년 8월 28일, 독일 프랑크푸르트 암마인의 유복한 가문에서 서구 문학사를 송두리째 뒤바꿀 거인이 태어났다. 요한 볼프강 폰 괴테다. 어린 시절부터 라틴어, 그리스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등 고전어와 외국어를 익히고 문학·예술 교육을 전방위로 흡수한 그는 조숙한 천재성을 드러내며 일찌감치 지적 토대를 다졌다.

라이프치히와 슈트라스부르크에서 법학을 전공했으나 그의 영혼은 언제나 문학을 향했다. 1774년 발표한 서간체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실연의 열병과 사회적 제약을 비극적으로 묘사해 유럽 전역에 파란을 일으켰다. 심지어 주인공의 옷차림과 행동을 모방하는 열풍까지 낳았다.

1775년 바이마르 공국의 카를 아우구스트 공작의 초청을 받아 정계에 입문한 그는 재정·광산·도로 관리 등 행정가로 활약했다. 공무의 피로 속에 단행한 1786년의 이탈리아 여행은 결정적 전기가 됐다. 고대 로마의 조화와 균형미를 체득하고 돌아온 그는 프리드리히 쉴러와 손잡고 감정의 과잉을 정제한 '바이마르 고전주의'를 꽃피우며 독일 문학의 황금기를 열었다.

괴테는 문인을 넘어 자연과학 연구에도 깊이 몰두한 르네상스적 만능인이었다. 식물의 형태 변화를 추적한 '식물 변태론'과 뉴턴의 광학에 도전한 '색채론'을 집필하며 형태학과 생물학 분야에 독창적 관점을 제시했다.

문학적 정점은 60여 년에 걸쳐 집필해 생애 말년에 완성한 대작 '파우스트'였다. 지식과 쾌락의 한계에 부딪힌 인간 파우스트와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의 계약을 통해 인간 존재의 방황과 부단한 노력, 그리고 궁극적인 구원의 드라마를 장엄한 시극으로 구현했다.

독일 문학을 유럽의 변방에서 단숨에 세계 지성사의 중심으로 도약시킨 그의 발자취는 오늘날에도 뚜렷하다.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한다"는 그의 선언처럼, 괴테는 시대의 한계에 안주하지 않고 삶의 본질을 치열하게 탐구한 지적 거인으로 영원히 기억되고 있다.

acenes@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