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견과류' 은행열매의 부활 [전호제의 먹거리 이야기]

전호제 셰프

전호제 셰프

요즘 집 근처에는 커다란 은행나무에서 나오는 노란색 잎이 장관이다. 가을을 실감하게 해주는 황금빛이 보는 이의 마음을 포근하게 해준다.

이때를 놓칠세라 11월까지 전국 각지의 은행나무 축제가 한창 열리고 있다. 500년 정도 수령의 커다란 나무군락부터 황금빛 터널을 만드는 산책로까지 다양한 형태의 풍경을 보여준다. 멀리 갈 필요 없이 동네 어디든 은행나무는 마을의 한 중심을 차지하고 있는 곳도 많다.

멋진 경관과 함께 은행나무는 맛있는 열매를 생산하니 여러모로 쓸모가 많은 셈이다. 이 은행열매는 예전엔 거리에서 구워 파는 상인도 꽤 많았던 식품이었다. 특히 야구장이나 극장 앞에서는 군밤, 쥐포, 오징어와 함께 길거리 군것질에 포함될 정도로 선호도가 높았다.

요리 재료로는 값어치가 있는 고급 음식의 고명 자리를 차지하곤 했다. 궁중 음식인 신선로에는 한두 개씩 정갈하게 담아 주었고, 갈비찜을 담을 때도 은행을 올려주곤 했다. 노란색 은행은 색감이 좋고 맛도 잘 어울렸다.

갈비찜 위에 올라간 은행나무 열매. (뉴스1DB) ⓒ News1

어릴 적 명절에 은행을 준비하던 기억도 난다. 단단한 껍질에 쌓인 은행을 나무 도마 위에 놓고 망치로 살살 치면 알맹이가 물러지지 않게 껍질을 제거할 수 있었다. 자칫 세게 치면 알맹이는 으스러져 버린다.

은행열매는 견과류치고는 쫄깃한 맛이 일품이다. 프라이팬 위에 기름을 살짝 돌리고 구워 먹는 것이 은행 자체의 맛을 느끼는 방법이다. 더 먹고 싶어도 손을 놓게 만들던 말이 "은행은 하루 10개 이상 먹으면 탈 난다"였다.

그때는 참 맛있었다는 기억이 있었는데 요즘 좀 뜸해졌다. 국내산 견과류인 잣, 밤, 호두와 어깨를 나란히 하던 은행열매가 잊혀 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궁금했다.

견과류 선호도에 대한 2019년 연구를 보면 은행열매는 60대 이상에서 선호도가 높은 편이다. 또 건강을 위해 먹는다는 분들도 많았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견과류는 주로 60대와 20대가 소비를 주도한다. 바로 건강과 미용이라는 키워드로 설명할 수 있다.

또 은행열매를 하루에 많이 먹지 못한다고 하지만 대부분의 견과류 권장량도 하루 28~30g 정도다. 이렇게 보면 은행열매의 약점인 옛날 식품, 10개 미만 소비도 다른 견과류에 비해 큰 제한사항이라고 하긴 어렵다.

20대의 미용을 타깃으로 잡아 은행열매를 적극적으로 홍보하면 사라진 소비도 되살릴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은행을 재료로 한 다양한 디저트와 음료를 만든다면 일단 관심을 끌기도 좋을 것이다.

은행열매는 온라인에서 구하기 쉽다. 예전과 달리 먹기 편하게 손질되어 나온다. 딱딱한 껍질을 제거한 것도 있고 알맹이 은행은 날 것과 익힌 것으로 세분돼 선택하기 좋다. 보관은 냉동으로 하면 오랜 기간 두고 먹기 편하다.

가장 쉬운 요리로는 영양밥을 권한다. 밥을 지을 때 살짝 볶은 은행알을 넣어 준다. 약식을 만들 때도 잣, 밤과 함께 섞어주면 색과 맛을 모두 잡을 수 있다. 건강을 위해 전통차를 즐길 때 한두 개씩 함께 내는 것도 좋다.

하루 섭취량 기준만 잘 지키면 은행처럼 맛있는 견과류도 드물다. 특히 다른 견과류에 비해 지방함량이 낮은 점도 비만이 문제가 되는 요즘 시대에 딱 맞다.

할매푸드라고 불리던 약과가 다시금 조명을 받는 시대가 됐다. 은행열매가 예전의 사랑을 다시 받게 되면 좋겠다. 어릴 적 필자가 그랬듯 젊은 세대도 함께 즐길 수 있으면 어떨까 상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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