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극·로드무비·스탠드업 코미디…15년만에 조인호 두번째 시집

[신간] '처음으로 물에 뜨는 시간'

[신간] '처음으로 물에 뜨는 시간'

(서울=뉴스1) 박정환 문화전문기자 = '처음으로 물에 뜨는 시간'은 고아와 병실, 공장과 전쟁터를 가로지르며 상처와 농담, 괴물과 부활의 서사를 밀어 올린다. 조인호는 15년 만의 두 번째 시집에서 법정극과 로드무비, 스탠드업 코미디와 무성영화까지 끌어와 버려진 존재의 감각을 밀도 높게 묶는다.

이번 시집을 관통하는 중심 형상은 '고아'다. 보호받지 못한 존재, 이름 불리지 않는 존재가 세계의 냉혹함을 배우는 장면이 여러 편의 시에 걸쳐 되풀이된다. 다만 이 감각은 상처의 진술에 머물지 않고 농담과 기도, 신화의 언어로 갈라지며 다른 결을 만든다.

그 움직임은 '형이 아홉 살 내게 말씀해주신다'와 '부활절 달걀' 같은 작품에서 먼저 선명해진다. 고아원과 예배, 달걀과 기도 같은 익숙한 소재는 거룩함과 불경함, 웃음과 공포가 뒤엉킨 장면으로 다시 배치된다. 세계를 버티는 방식이 신성모독처럼 보이는 문장과 절박한 기도로 함께 놓이는 셈이다.

이 시집의 힘은 이야기의 속도와 장르 감각에서도 드러난다. '앵무새 죽이기'를 비튼 법정극, 용광로로 뛰어든 노동자의 죽음에서 출발하는 로드무비, 이라크전과 가족사를 엮는 스탠드업 코미디, 전쟁터로 향하는 안드로이드의 편지까지 각 편의 시가 서로 다른 문법으로 밀고 나간다. 한두 구절의 인상보다 작품 전체가 사건처럼 밀려온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무대의 폭도 크다. 고아원과 병실, 공장과 전쟁터, 무성영화의 세트장과 조선총독부, 우주와 밤바다가 한 권 안에서 이어진다. 시집은 개별 작품집이라기보다 기묘한 단편영화들이 잇달아 상영되는 거대한 상영관에 가까운 질감을 만든다.

표제와 맞닿은 '녹색 광선'은 이 세계의 서정을 가장 또렷하게 보여준다. 밤바다에 들어간 아이들은 투명해지고, 서로를 통과하며 가까스로 부력을 얻는다. 물을 무서워하던 존재가 처음으로 물에 뜨는 순간은 고통의 소멸보다 버려진 존재들이 서로를 붙드는 장면으로 읽힌다.

시집의 대미를 장식하는 장시 '도라무깡'은 역사적 상상력이 닿는 끝점에 놓여 있다. 일제강점기 731부대의 생체 실험에서 태어난 존재가 만주 벌판의 드럼통 안에서 살아남는 설정을 통해 제국의 광기와 인간의 공포를 밀어 올린다. 괴물은 역사가 낳고 버린 또 하나의 고아가 되고, 시선은 현대사의 어두운 바닥까지 파고든다.

조인호는 2006년 문학동네신인상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고 시집 '방독면'을 펴냈다. 이번 책은 그 이후 15년 만에 나온 두 번째 시집이다.

△ '처음으로 물에 뜨는 시간'/ 조인호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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