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OTA 장악·中 공습 속수무책…기울어진 운동장 갇힌 K-여행

[글로벌 여행플랫폼 공습 10년]① 부킹·트립닷컴, 한국 상륙 10년…판 흔들다
인바운드·아웃바운드 수수료 해외 유출…정책 대응 절실 목소리

편집자주 ...부킹닷컴과 익스피디아가 한국에 상륙한 지 10년. 글로벌 OTA 빅4가 세계 여행시장을 독과점한 가운데 중국 플랫폼까지 한국 시장을 양면으로 잠식하고 있다. 그 사이 국내 여행사는 체질을 바꾸지 못했고, 소비자 피해는 급증하는데 법과 소관 부처는 여전히 공백이다. 글로벌 여행플랫폼 공습 10년, 한국 여행산업의 현주소를 3회에 걸쳐 짚어본다.

ⓒ 뉴스1 양혜림 디자이너

(서울=뉴스1) 윤슬빈 관광전문기자 = 한국인이 도쿄행 항공권을 결제할 때도, 외국인이 부산 해운대 호텔을 예약할 때도 토종 여행사의 자리는 없다. 스마트폰 화면에서 결제 버튼을 누르는 순간 중개 수수료는 미국과 중국에 본사를 둔 글로벌 온라인여행사(OTA)로 흘러간다. 이제 여행시장의 경쟁은 여행사 간 경쟁이 아니라 플랫폼 간 경쟁으로 재편되고 있다.

글로벌 OTA가 세계 여행시장을 사실상 독과점한 가운데 최근에는 강력한 자본력을 앞세운 중국계 플랫폼까지 한국 시장 공략을 본격화하고 있다. 부킹닷컴과 익스피디아 등 서구권 OTA가 국내에 안착한 데 이어 트립닷컴은 국내 항공권 판매 1위에 올랐고, 알리바바 계열 플리기는 인바운드 시장까지 파고들고 있다.

업계에서는 해외 OTA가 여행상품 판매를 넘어 결제와 고객 데이터까지 장악하면서 국내 여행 생태계의 주도권이 해외 플랫폼으로 넘어가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글로벌 OTA 빅4, 세계 여행시장 사실상 장악

글로벌 온라인 여행시장은 부킹홀딩스(부킹닷컴·아고다 등), 익스피디아, 에어비앤비, 트립닷컴 등 이른바 '빅4'가 사실상 주도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들 기업이 글로벌 OTA 시장의 90% 이상을 차지하며 과점 체제를 구축한 것으로 보고 있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 한희정 부연구위원의 'OTA 시장 동향과 정책 방향' 보고서에 따르면 부킹홀딩스의 2023년 매출은 213억 6500만 달러(약 32조 5000억 원)로 2019년보다 41.8% 증가했다. 에어비앤비는 같은 기간 106.4%, 트립닷컴은 22.4% 성장했다.

이들은 숙박 예약을 넘어 항공권과 액티비티, 교통 등 여행 전 과정을 하나의 플랫폼 안에서 제공하며 시장 지배력을 키우고 있다.

부킹닷컴과 익스피디아도 2010년대 중반 국내 시장에 진출한 이후 외국인 대상 숙박 예약에서 한국인의 해외여행 예약까지 사업 영역을 넓혔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스태티스타에 따르면 2023년 기준 국내 OTA 이용률(복수 응답)은 야놀자(44%), 에어비앤비(43%), 인터파크(41%) 순으로 조사됐다. 해외 플랫폼이 국내 대표 플랫폼과 사실상 비슷한 영향력을 확보한 셈이다.

트립닷컴, 토종 1위 하나투어 제치고 'BSP 선두' 등극

최근 가장 빠르게 존재감을 키운 곳은 중국계 OTA 트립닷컴이다.

여행업계에 따르면 올해 5월 국제항공운송협회(IATA)의 항공여객판매대금정산제도(BSP) 실적에서 트립닷컴은 총발매액 668억 원을 기록하며 국내 진출 이후 처음으로 BSP 판매 실적 1위에 올랐다.

트립닷컴은 하나투어(508억 원)를 제쳤고, 놀유니버스(266억 원), 마이리얼트립(215억 원)이 뒤를 이었다.

국내 이용자 증가세도 뚜렷하다.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트립닷컴의 국내 월간활성이용자수(MAU)는 2024년 1월 145만 명에서 같은 해 12월 257만 명으로 1년 만에 100만 명 이상 늘었다. 반면 야놀자와 여기어때는 같은 기간 증가 폭이 상대적으로 제한적이었다.

업계에서는 막대한 마케팅과 연구개발(R&D) 투자, 계열 플랫폼을 활용한 가격 경쟁력이 성장의 배경으로 작용했다고 분석한다. 트립닷컴은 2023년 광고·홍보에 약 1조 3000억 원, 연구개발(R&D)에 약 1조 원을 투자했다. 여기에 스카이스캐너와 취날(Qunar) 등 계열 플랫폼을 활용해 국내 업체들이 따라가기 어려운 가격 경쟁력까지 확보했다.

울 중구 신라면세점 서울점에서 중국인 관광객들이 면세점을 둘러보고 있다. 2025.9.29 ⓒ 뉴스1 김성진 기자
알리바바까지 가세…인바운드 시장도 흔든다

아웃바운드 시장에서 트립닷컴이 영향력을 키우는 사이 인바운드 시장에서는 알리바바 계열 플리기가 빠르게 존재감을 확대하고 있다.

플리기는 중국 내 이용자만 3억 2000만 명을 보유한 대형 OTA로 최근 한국어 예약 시스템을 구축하며 국내 시장 공략을 본격화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국내 관광업계도 중국 관광객 유치를 위해 해외 OTA와 협력을 확대하고 있다.

신세계면세점은 플리기와 협력해 중국 관광객 대상 마케팅을 강화했고, 올마이투어닷컴도 플리기와 전략적 파트너십을 체결했다. 한국관광공사는 트립닷컴과 공동 마케팅을 이어가고 있으며, 남이섬은 트립닷컴 글로벌 콘퍼런스에서 전략 파트너상을 받는 등 협력 범위를 넓히고 있다.

업계에서는 중국 관광객 유치라는 단기 성과를 위해 해외 플랫폼 의존도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는 점을 우려한다.

여행업계 관계자는 "당장은 해외 OTA를 활용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일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예약과 결제, 고객 데이터까지 해외 플랫폼에 종속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특히 올해 방한 중국인 관광객이 700만 명에 육박할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상당수가 자국 OTA를 통해 예약과 결제를 진행하면서 관광 수요 증가에 따른 수익 역시 해외 플랫폼으로 흘러가는 구조가 고착화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 뉴스1 김초희 디자이너
같은 시장, 다른 규제…피해는 늘고 제도는 제자리

글로벌 OTA의 영향력이 커질수록 소비자 피해도 증가하고 있다.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2021년부터 올해 7월까지 접수된 글로벌 OTA 관련 피해구제 신청은 총 3456건이다. 아고다가 2190건으로 가장 많았고 트립닷컴도 1266건에 달했다. 환불 거부와 과도한 취소 수수료 부과 등이 대표적인 피해 사례다.

정부도 뒤늦게 해외 OTA 규제에 나서고 있다.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는 환불 조건과 취소·변경 수수료 등을 제대로 고지하지 않은 아고다에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 24억 2400만 원을 부과했다.

다만 업계에서는 개별 제재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트립닷컴은 2017년부터 2025년까지 통신판매업 신고 없이 영업하다 적발됐지만 과태료 처분에 그쳤다. 반면 하나투어와 모두투어, 야놀자, 여기어때 등 국내 업체들은 관광진흥법상 등록 의무와 정보보호 관리체계(ISMS) 인증 등 각종 규제를 적용받고 있다.

업계에서는 같은 시장에서 경쟁하면서도 적용받는 규제가 다른 '기울어진 운동장'이 장기화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 관계자는 "OTA 플랫폼 시장에 대한 실태조사와 함께 코로나19 이후 중단된 민관협의체 운영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며 "국내 관광산업의 플랫폼 경쟁력을 높이고 공정한 경쟁 환경을 마련하기 위한 정책적 지원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seulbin@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