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 쌓을 곳 없는데 경력직만"…70년 이어진 삼성 공채의 재발견
8일부터 삼성 하반기 공채…19개 그룹사 참여
이재용 회장 '사업보국·인재제일' 창업 이념 계승 '의지'
- 박기호 기자
(서울=뉴스1) 박기호 기자 = 삼성그룹의 70년째 이어진 '신입사원 공개 채용'이 재조명받고 있다. 국내 대기업 가운데 공채 제도를 유지하고 있는 곳은 삼성이 유일하다. 당장 업무에 투입할 수 있는 경력직을 채용하는 것이 보편화한 상황에서도 공채를 유지하는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기업들이 경력직만 채용하면서 사회 초년생은 경험을 쌓을 기회마저 잡지 못하고 있다. 사회 진출 문턱이 높아지면서 취업준비생들의 고통이 더 커지고 있다. 삼성 공채는 경력이 없는 청년들이 양질의 일자리에서 경험을 쌓을 수 있는 유일한 통로인 셈이다.
삼성은 오는 8일부터 올해 하반기 공채 절차를 진행한다. 공채에 나선 삼성 관계사는 삼성전자, 삼성물산, 삼성바이오로직스, 삼성바이오에피스, 삼성생명, 삼성디스플레이, 삼성SDI, 삼성전기, 삼성SDS, 삼성화재, 삼성카드, 삼성증권, 삼성중공업, 삼성E&A, 호텔신라, 제일기획, 에스원, 삼성의료원, 삼성웰스토리 등 19곳이다. 올해 상반기 공채보다 참여 그룹사가 한 곳 늘었다.
삼성은 지난 1957년 국내 최초로 신입사원 공채 제도를 도입했고 올해 70년째를 맞았다. 4대 그룹 중 공채 제도를 유지하는 기업은 삼성이 유일하다. 1990년대 외환위기 등 극히 이례적인 상황을 제외하면 공채를 중단 없이 해왔다.
삼성의 공채는 최근 기업들의 흐름과는 다소 배치된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지난해 초 100인 이상 기업 500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신규 채용 계획을 수립한 기업은 60.8%였다. 반면, 중고 신입 채용은 크게 늘었다. 신입 공채 때 직무 관련 업무 경험을 가장 중요한 평가 요소로 본다는 응답은 81.6%였다.
지난해 상반기 대한상공회의소가 기업들이 올린 채용 공고를 분석한 결과 10곳 중 8곳은 경력직만 채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반해 대졸 청년의 절반 이상은 재학 중 직무 경험을 못 했다고 응답했다. 기업의 경우 실전에 바로 투입할 인력을 원하는데 청년 구직자들은 직무 경험을 쌓을 기회가 적어 자연스럽게 구직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청년들 사이에선 "경력을 쌓을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삼성 공채에는 매년 수십만 명이 몰리고 있다. 별다른 경력이 없더라도 동등한 기회를 제공해 주기 때문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청년들에게 양질의 일자리를 예측 가능한 주기로 제공하는 것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한다는 측면에서 높게 평가받아야 할 일"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삼성의 공채 제도는 학연과 지연 등 연고주의 부작용을 막고 성별에 따른 차별을 막는 데도 일조했다. 삼성은 1993년 대졸 여성 신입사원 공채를 신설했고 1995년에는 지원 자격 요건에서 학력을 제외하는 등의 열린 채용 문화를 조성했다.
삼성이 공채를 지속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이재용 회장의 의지가 결정적으로 작용했다는 후문이다. '사업보국'과 '인재제일'이라는 삼성의 창업 이념을 그대로 계승하겠다는 게 이 회장의 생각이다.
실제로 이 회장은 지난 2월 청와대에서 열린 청년 일자리 및 지방 투자 관련 기업인 간담회에서 "실적이 많이 올라가고 있어서 올해 조금 더 채용할 수 있는 여력이 생겼다"며 채용 확대를 약속했다.
앞서 지난해 8월 대통령실에서 열린 간담회에서도 "대미 투자와 별개로 국내에서도 지속적으로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고부가가치 산업을 육성할 수 있게 관련 투자를 지속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회장은 2022년 회장 취임 후 사내 게시판에 올린 소회와 각오에서 "창업 이래 가장 중시한 가치가 인재와 기술"이라며 "성별과 국적을 불문하고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인재를 모셔 오고 양성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같은 해 유럽 출장 후 귀국길에선 "저희가 할 일은 좋은 사람 모셔 오고, 조직이 예측할 수 있는 변화에 적응할 수 있도록 유연한 문화를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외에도 "이미 국민들께 드린 약속들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 투자와 고용 창출이라는 기업의 본분에 충실해야 한다"라거나 삼성은 "앞으로도 성별과 학벌 나아가 국적을 불문하고 훌륭한 인재를 모셔 와야 한다"는 메시지를 여러 차례 냈다.
'사업보국'에 대한 의지 역시 강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 회장은 지난해 이재명 대통령이 경영계에 청년 고용 동참을 요구하자 향후 5년간 6만 명, 연간 1만 2000명을 신규 채용, 미래 성장산업 육성과 청년 일자리 창출에 나서겠다고 했다.
이날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8월 고용행정 통계에 따르면 청년층의 고용보험 가입자 감소 흐름이 계속됐다. 29세 이하는 5만 6000명 감소했다. 이와 달리 다른 연령층의 고용보험 가입자는 증가하는 모습이었다.
한국경제인협회가 국무조정실의 '2024년 청년의 삶 실태조사'의 마이크로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일자리를 갖지 못한 청년 둘 중 한 명은 '번아웃'(burnout·탈진)이라는 스트레스 증후군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가장 큰 이유는 '진로 불안' 때문이었다.
재계 관계자는 "당장 눈앞의 이익만 생각한다면 공채는 효율성이 떨어지는 제도"라며 "공채가 청년들에게 일을 배우고 경험을 쌓는 기회를 준다는 점에서 지금 시대에 가장 필요한 기업의 사회공헌 가운데 하나"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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