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AI 시대 공부, 태블릿과 종이가 만나야 비로소 완성

신종호 서울대 교육학과 교수./뉴스1
신종호 서울대 교육학과 교수./뉴스1

신종호 서울대학교 교육학과 교수 = 식당이나 카페, 심지어 이동하는 차 안에서도 태블릿 화면에 푹 빠져 있는 아이들의 모습은 이제 너무나 익숙한 풍경이다. AI가 맞춤형 지식을 찾아주고 복잡한 내용도 단숨에 요약해 주는 시대에 디지털 기기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생활의 일부이자 강력한 교육 도구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최근 세계 교육의 흐름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흥미로운 균형 찾기가 한창이다.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국가들의 교내 스마트기기 제한 정책이나, 우리나라 교육부의 초등학교 저학년 AI 교과서 도입 신중론은 결코 디지털 기술의 효용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첨단 기술에 무비판적으로 매몰되지 않고, 이를 온전히 통제하며 지혜롭게 활용할 생각의 근육이 먼저, 그리고 함께 자라나야 한다는 깊은 성찰에서 비롯된 것이다.

화려한 영상과 끊임없는 링크로 연결된 디지털 환경은 방대한 정보를 빠르게 탐색하고 흥미를 유발하는 데 압도적으로 유리하다. 모르는 내용이 나오면 언제든 검색창을 띄워 몇 초 만에 정답을 찾아낼 수 있다.

그러나 인지과학적 관점에서 보면, 쏟아지는 시각적 자극은 뇌의 인지부하를 가중시킨다. 스크린 위를 빠르게 훑어보는 데 익숙해진 아이들의 뇌는 무의식적인 멀티태스킹 상태에 놓이게 되며, 정작 학습 내용을 깊이 있게 처리해야 할 작업기억 용량은 불필요하게 분산되고 만다.

텍스트를 제대로 읽고 구조화하지 못했음에도, 단순히 정보를 쉽고 빠르게 찾았다는 사실만으로 자신이 내용을 충분히 이해했다고 착각하기 쉬운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바로 이때 필요한 것이 아날로그 학습과의 융합이다. 디지털 학습과 손글씨 학습을 함께할 때 더 큰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 태블릿이 정보의 넓이를 확장해 준다면, 인쇄된 종이와 연필은 사고의 깊이를 더해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디지털 기기를 통해 효율적으로 수집한 지식을 잉크로 인쇄된 종이로 다시 마주할 때, 학습의 질은 완전히 달라진다. 종이 위에는 주의를 빼앗는 방해 알림도, 다른 곳으로 빠져나갈 화려한 하이퍼링크의 유혹도 없다. 오롯이 눈앞의 글과 나 자신만 남는 고요한 몰입의 환경이 열리는 것이다.

단번에 이해하기 어려운 길고 복잡한 문장을 만나면 다시 앞장으로 넘어가 맥락을 짚어보고, 자신이 알고 있는 배경지식을 총동원하여 흩어진 정보를 퍼즐처럼 맞춰나가는 능동적인 과정이 비로소 시작된다.

무엇보다 종이 위에 직접 연필을 쥐고 밑줄을 그으며 여백에 생각을 끄적이는 손글씨 학습은 아이들에게 일종의 바람직한 어려움을 제공한다. 화면을 가볍게 터치하거나 키보드를 두드리는 것보다 속도는 느리고 수고롭지만, 이 느림 속에 인지발달의 비밀이 숨어 있다.

손끝의 감각을 동원하여 문맥을 파악하고 스스로 질문을 던지는 과정 속에서 아이들의 메타인지가 활발하게 깨어난다. 내가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 스스로 점검하며, 단순한 정보의 파편들을 자신만의 논리로 구조화하는 진정한 의미의 자기주도학습 능력이 길러지는 것이다.

따라서 진정한 의미의 디지로그(Digilog) 교육은 아날로그와 디지털 중 어느 한쪽을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 두 매체의 장점을 영리하게 융합하는 데 있다. AI와 태블릿을 활용해 방대한 자료를 가볍고 폭넓게 탐색하되, 깊은 사유와 비판적 이해가 필요한 핵심 과제는 반드시 종이로 출력하여 손으로 만지고 쓰며 공부하는 조화에 그 해답이 있다.

예를 들어, 특정 주제에 대해 AI를 통해 다양한 관점의 자료를 수집한 뒤, 가장 핵심이 되는 텍스트는 인쇄물로 출력하여 밑줄을 긋고 자신의 언어로 요약해 보는 식이다. 이 두 가지 방식이 결합할 때, 아이들이 접하는 정보는 단순한 데이터를 넘어 통찰력 있는 지식으로 격상된다.

우리 아이의 진정한 학습 짝꿍은 즉각적인 정답을 내어주는 똑똑한 스마트 기기 하나로만 완성되지 않는다. AI가 넓혀준 광활한 정보의 바다를 흔들림 없이 주체적으로 항해하기 위해서는, 빳빳한 종이와 사각거리는 연필이라는 든든한 닻이 반드시 함께해야 한다.

오늘 저녁, 아이가 태블릿으로 흥미롭게 찾아본 유익한 자료를 종이로 직접 출력해 책상 위에 놓아주는 것은 어떨까. 사각거리는 연필 소리와 함께 종이 위에서 느리지만 깊게 사유하는 시간, 첨단 디지털 기술의 속도와 아날로그적 사유의 깊이가 만나는 바로 그 순간에 우리 아이들은 미래 시대를 주도할 가장 강력한 무기를 얻게 될 것이다.

jin@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