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 몰라 과징금·벌금…중소·중견기업 10곳 중 8곳 '법무 사각지대'

대한상의 조사, 최근 3년간 과징금·벌금 등 행정제재 경험 17%
법 개정 인지 못하거나 해석 오류 43%…"맞춤형 가이드라인 필요"

대한상공회의소 전경 (대한상의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2025.4.17 ⓒ 뉴스1

(서울=뉴스1) 박기범 기자 = #1. 가전제품을 제조하는 중견기업 A사는 최근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수억 원대 과징금을 부과받았다. 하도급법을 제대로 숙지하지 못한 탓이었다. 재무담당 직원 1명이 법무 업무를 겸하는 구조여서 연간 수천만 원의 외부 자문 비용을 들이고도 복잡한 법령을 모두 챙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2. 직원 30여 명 규모의 철강 중소기업 B사도 사정은 비슷하다. 총무팀 직원 1명이 인사와 법무를 함께 맡고 있는 데다 최근에는 노동관계법은 물론 탄소국경조정제도(CBAM)까지 검토해야 하지만 전문 인력도, 외부 자문을 받을 여력도 부족하다.

이처럼 중소·중견기업들이 인력과 비용 부족으로 법·제도 변화에 제때 대응하지 못하는 사례가 잇따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 중소·중견기업 10곳 중 8곳은 법무 전담 조직이나 인력을 두지 않고 있었으며, 10곳 중 2곳은 최근 3년간 법령을 제대로 숙지하지 못해 벌금이나 과징금 등 행정제재를 받은 경험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법무 전담' 없는 중소·중견기업…평균 인력 0.7명 불과

8일 대한상공회의소가 중소·중견기업 300개 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중소·중견기업 법·제도 대응역량 및 애로사항 조사'에 따르면 전체 응답 기업의 75.3%는 법무 전담 조직이나 인력을 보유하지 않은 것으로 집계됐다.

조사 결과 '전담 인력이 없고 필요할 때 외부 자문에 의존한다'는 응답이 35.3%로 가장 많았다. 이어 '타 부서 직원이 법무 업무를 병행한다'가 22.7%, '별도 대응 체계가 없다'는 응답도 17.3%에 달했다. 반면 법무 전담 조직과 인력을 모두 갖춘 기업은 14%, 전담 인력만 보유한 기업은 10.7%에 그쳤다.

기업 규모가 작을수록 상황은 더 열악했다. 중소기업의 83.5%가 법무 전담 조직이나 인력을 두지 않았고, 중견기업도 59.0%가 별도 법무 조직 없이 운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법무 전담 인력은 기업당 평균 0.7명에 불과했으며, 중소기업은 0.4명, 중견기업도 1.3명 수준에 머물렀다.

인력 부족으로 새로운 제도가 도입되더라도 이를 빠르게 인식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새로운 법·제도가 도입되거나 변경될 때의 통상적 인식시점'에 대한 질문에는 응답 기업의 52.7%가 '법 시행 이후'라고 답했다. 입법예고나 국회 심의 단계부터 미리 모니터링한다는 기업은 13.7%에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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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 시행 뒤에야 알았다…규제 대응 늦어 제재로 이어져

이 같은 대응 부족은 실제 제재로 이어졌다. 응답 기업의 17%는 '최근 3년간 법률·규제를 위반해 벌금 등 행정제재나 형사처벌을 받은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제재 사유로는 '자사 적용 여부나 이행 방법을 잘못 해석했다'는 응답이 31.3%로 가장 많았고, '법·제도 신설 또는 개정 사실을 몰랐다'는 응답도 11.8%였다. 법령 인지·해석 부족이 전체의 43.1%를 차지했다. '업계관행으로 준수가 어려웠다'(33.3%), '대응 전담인력 부족'(11.8%), '시설투자·시스템 구축 비용 부담'(5.9%) 등이 있었다.

기업들이 법무 대응 시 가장 부담을 느끼는 분야는 근로·노무(63.3%)였으며 산업안전(38.3%), 공정거래·하도급(31.7%), 세무·조세(29.0%)가 뒤를 이었다.

기업들은 필요한 정책 과제로 '중소·중견기업 맞춤형 법령 가이드라인 마련'(51%)을 가장 많이 꼽았고, '법 시행 전 충분한 유예기간 보장'(47%), '저비용 법률 상담·자문 서비스 확대'(44.3%) 등을 요구했다.

강호준 대한상공회의소 기업정책팀장은 "중소·중견기업은 법·제도를 꼼꼼히 챙길 여력이 부족한 만큼 예측 가능한 규제 환경을 조성하고 법 도입 과정에서 현장의 목소리를 충분히 반영할 필요가 있다"며 "대한상의도 하반기 전국 순회설명회를 통해 기업들의 법·제도 대응 역량 강화에 나설 계획"이라고 말했다.

pkb1@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