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변압기 주문 폭주로 가동률 80%도 부족…일진전기 공장 가보니
슈퍼사이클 전력설비 핵심 설비 변압기 생산 일진전기 홍성공장
주문 폭주에 생산 공정마다 작업 '한창'…"내년에는 가동률 95%"
- 박기호 기자
(서울=뉴스1) 박기호 기자 = 집채만 한 초고압 변압기 생산이 공장 내 곳곳에서 다발적으로 이뤄지는 모습은 K-전력설비가 가히 슈퍼사이클을 맞았다는 사실을 여실히 느끼게 하는 장면이었다.
5일 방문한 일진전기 홍성 제2공장. 일진전기가 시장 변화에 대응하고자 약 700억 원을 투입해 증설 투자한 곳으로 작년 말부터 가동, 올해 딱 1년이 된 따끈따끈한 신상 공장이다. 일진전기 홍성공장은 현재 80%의 가동률을 기록하면서 전 세계에서 쇄도하는 주문에 맞춰 초고압 변압기 생산에 여념이 없었다.
에어 샤워장치를 지나 공장 내부에 들어서니 전기가 새지 않게 절연하고 권선을 단단히 지탱하는 구조물을 만드는 작업이 분주하게 이뤄지고 있었다. 변압기 생산의 초기 단계인 권선 공정이었다. 2인 1조로 구성된 4명의 근로자가 권선 작업을 하고 1명의 작업자는 도면을 보면서 지시하는 중이었다. 바로 옆에는 나무로 촘촘하게 엮어 원통 모양으로 만들어진 권선기에는 '미국' 발주라는 라벨이 붙어있었다. 현장을 안내한 김정찬 일진전기 상무는 "모두 수작업으로 진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바로 옆에선 3m가 넘는 크기의 철심 조립 작업도 진행 중이었다. 특수강판을 가공, 익숙한 손놀림으로 철심을 층층이 쌓아 올리는 적층 작업으로 이 역시 초기 제조 공정이다. 80~90톤 규모의 변압기에 들어가는 철심 구조물을 만드는 중이었다. 설계 작업에서 정한 치수대로 정밀하게 가공·적층해야 하기에 조금이라도 이상 징후가 있으면 논의 후 수정 작업이 이뤄진다고 김 상무는 전했다.
옆으로 이동하니 육중한 크기의 중신 조립 현장이 눈에 들어왔다. 중신은 철심과 권선의 조립체다. 적층이 이뤄진 철심에 코일에 쌓인 권선다발을 연결한 모습은 변압기의 알몸과도 같았다. 공장에선 쿠웨이트에서 발주한 분로리엑터의 중신 작업이 진행 중이었다. 분로리엑터는 장거리 송전선로의 전압 보상 및 안정화에 사용된다. 분로리엑터는 워낙 까다로운 제품이기에 철심도 다른 변압기와는 다른 소재를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중신 작업 이후에는 진공 건조도 이뤄진다. 전기의 가장 큰 적은 물이기에 변압기에 들어가는 목재의 수분과 이물질을 모두 빼줘야 한다. 일진전기 관계자는 "초고압 변압기 제품 한 대를 건조할 때 나오는 수분만 300리터"라고 전했다.
변압기 조립 작업도 한창이었다. 엄청난 육중한 쇳덩이가 곳곳에 놓여있었고 작업자들은 크레인으로 본체를 덮을 상부판을 올리는 작업을 진행 중이었다. 조립이 완료된 변압기의 외부 페인트칠 작업도 동시에 이뤄지고 있었다. 외형적으로도 완벽을 기하는 작업이라고 했다. 조립이 마무리된 제품들이 곳곳에 쌓인 채 시험 단계를 앞두고 있었다.
시험장에는 탱크보다 더 커 보이는 다수의 변압기 완성품이 도열해있었다. 공장의 높이가 32m(1공장 기준) 정도인데 변압기 본체에 안테나 모양의 부싱(bushing)을 조립하면 높이는 20m, 운송 중량만 130톤에 달하는, 말 그대로 집채만 한 크기였다. 공장에선 변압기가 설치되는 제각각의 환경에 대비해 모든 종류의 충격 시험을 수행하고 있다고 했다. 인공 낙뢰를 가하는 등의 충격을 통해 변압기의 안전 여부를 확인하기도 하고 지진 등에 대비한 시험도 이뤄지고 있다. 김 상무는 "온도, 소음 등 고객이 원하는 변압기의 사양이 다 다르다"며 "일부 지역은 지진 이슈 등을 고려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공장 앞으로 가니 전 세계 곳곳으로 향할 변압기들에 대한 출하 작업이 이뤄지고 있었다.
인공지능(AI) 시대에서 전기는 필수품이 됐다. AI를 상징하는 데이터센터는 전기 먹는 하마로 불린다. 변압기는 발전소에서 만든 전기를 먼 곳에까지 효율적으로 보내는 송·변전 핵심 설비다. 전압을 승압 또는 강압하는 역할을 한다. 당연히 데이터센터 구축에 있어서 꼭 필요한 존재다. AI 붐으로 변압기는 글로벌 슈퍼사이클에 진입했다.
일진전기 역시 훈풍에 제대로 올라탔다. 이미 수년 치 일감을 확보했다. 일진전기에 따르면 9월 말부터 최근 한 달간 변압기, 차단기 등의 전력기기 부문에서 약 1000억 원 규모의 해외 신규 수주를 확보했다. 특히, 기존 변압기 시장에서의 영역 확장뿐 아니라 진입 장벽이 높은 유럽 변압기 시장에 새로 진입했다. 또한 그간 미국 동부 지역에 500kV 초고압 변압기를 공급했지만 최근에는 미국 캘리포니아 지역에서도 500kV 초고압 변압기 프로젝트를 수주했다.
공장에선 쿠웨이트로 향할 변압기가 출하를 앞두는 등 중동 지역에서도 수주가 확대하고 있다.
이 같은 성과로 일진전기의 상반기 총수주액(전선 및 전력기기 전체)은 7853억 원으로 이는 지난해 상반기(6960억 원)보다 성장한 수치다. 하반기 수주 역시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전망도 상당히 긍정적이다. 미국에선 노후 전력망 교체 수요와 데이터센터, 전기차 산업 성장으로 신규 전력 인프라 투자가 활발히 진행 중이고 유럽 등에서도 데이터센터 건설이 폭발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일진전기는 AI 3대 강국을 목표로 이재명 정부가 야심차게 준비 중인 서해안 에너지고속도로 사업을 주시하고 있다. 사업 계획표에 맞춰 HVDC 변환용 변압기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고 한다.
일진전기는 홍성공장에서 변압기와 차단기를 생산하고 있는데 제1공장에 이어 지난해부터는 제2공장도 가동 중이다. 1공장에선 345~765kV, 2공장에선 345kV 이하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홍성 1~2공장에선 연간 140대 정도의 변압기를 생산 중인데 현재 80%의 가동률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김 상무는 "미국은 60%, 유럽은 70%의 가동률을 기록 중"이라며 "내년에는 95%까지 가동률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가동률 증가로 생산량 역시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변압기의 가격은 천차만별이지만 대당 100억 원에 달하는 고가의 제품들이 즐비하다. 제작 기간은 설계 단계 3개월, 제작 단계 3개월이 소요되기에 공장 곳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제작이 진행 중이었다.
미국의 관세 정책에 따른 영향에서도 전력설비 제조업체가 공급자 우위 시장인 점을 볼 때 여파가 제한적이기도 하다. 일진전기 역시 고객과 관세 문제에 대한 협의를 진행 중이라고 한다. 중국 기업과의 경쟁 역시 아직은 크게 문제로 작용하지 않고 있다. 중국 전력기기 업체에선 다양한 제품을 생산하고 있지만 품질에 대한 신뢰도가 낮은 상황이기 때문이다.
유상석 일진전기 대표는 취재진과 만나 "일진전기도 전력 산업의 메가 트렌드에 맞춰 준비하고 있다"며 "미국 외에도 아시아, 중동, 유럽으로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 대표는 전력 산업의 호황이 언제까지 지속될 것으로 보느냐는 질문에 "2050년까지 성장세가 간다는 의견도 있다"며 수요에 공급이 따라가지 못하기에 성장세가 둔화할 수 있지만 성장은 앞으로도 상당 기간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추가 공장 증설 등의 투자 계획에 대해선 "홍성 2공장을 증설할 때도 설비부터 인력 투자 등을 사전에 오랫동안 준비했다"며 "당장 언제 하겠다고 말할 수는 없고 고민 중이지만 다음 투자도 이상 없이 운영할 수 있게 준비가 돼야 실효적인 성과가 있을 것"이라고 답했다. 변압기 제작은 다품종 소량 생산 구조이기에 모두 수작업으로 이뤄질 수밖에 없다고 한다. 일진전기 역시 생산 인력 강화에 주력하고 있다고 김 상무는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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