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O 해운 탄소세 통과 불발…K-조선 '트럼프 리스크' 결국 현실화
IMO, 논의 연기…회원국들, 트럼프 보복 우려에 '기권'
"EU 외 비용 부과되는 규제 없어…발주 유인 감소 우려"
- 박종홍 기자
(서울=뉴스1) 박종홍 기자 = 국제해사기구(IMO)의 해운 탄소세 도입 논의가 1년 연기되면서 국내 조선업계 안팎에선 '트럼프 리스크'가 현실화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글로벌 무역 전쟁으로 해운 업황 악화 우려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친환경 선박 교체 수요마저 사라지면 국내 조선업계가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20일 외신과 업계에 따르면 IMO는 지난 17일(현지 시간) 영국 런던에서 해양환경보호위원회(MEPC)를 열어 넷 제로 프레임워크의 구체적 중기이행조치 마련을 위한 회의를 진행했지만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이 논의를 1년 연기하자는 안건을 제출했고, 이에 대해 57개 회원국이 찬성하면서 연기가 확정됐다. 연기에 대한 반대는 49개국, 기권은 21개국이었다.
넷 제로 프레임워크는 5000톤 이상의 대형 선박을 대상으로 기준치 이상 배출된 탄소 1톤당 100~380달러의 세금을 부과하는 해운 탄소세 제도를 골자로 한다. 선박 연료의 온실가스 집약도를 단계적으로 제한해 화석연료 사용을 줄여나가는 제도인 연료 표준제도 포함된다.
지난 4월 열린 IMO MEPC에서 넷 제로 프레임워크는 찬성 63개국, 반대 16개국, 기권 24개국으로 통과한 바 있다. 이달 열린 MEPC에선 구체적 이행 조치 마련을 위한 논의가 진행됐지만 끝내 무산됐다.
여기에는 미국 트럼프 정부의 노골적인 반대가 영향을 미쳤다. 미국 정부는 지난 4월 MEPC 논의에서 이탈한 바 있으며 이번 회의를 앞두고도 미국 입항 차단이나 비자 제한, 수수료 부과 등의 방안을 언급하며 찬성 회원국에 대한 보복 의사를 드러냈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한국을 비롯해 일본, 그리스, 키프로스 등 국가는 4월에 탄소세 도입을 지지했지만 이번에 기권했다. 마찬가지로 4월에 탄소세 도입에 찬성했던 중국은 이번에 연기하자는 안건에 동조했다.
당초 해운 탄소세는 2027년부터 시행할 예정이었으나 이번에 세부적 시행 방안에 대한 표결이 연기되면서 도입 시기도 불투명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나예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다음 MEPC는 내년 봄에 열릴 것으로 예상하는 데 공식적인 채택 시점이 늦어진 만큼 조치 시행 시기도 2027년에서 2028년으로 미뤄질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내다봤다.
최악의 경우 트럼프 정권 임기 기간 내내 도입하기 어려울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최광식 다올투자증권 연구원은 "이번 1년 연기가 트럼프 정부 임기 내내 3~4년의 지연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시장의 우려에 공감한다"며 "조선업에 악재"라고 평가했다.
탄소세 부과 가능성을 높게 점쳐 온 국내 조선업계는 당혹해하는 분위기다. 그간 중국 업계 공세에도 국내 업계가 호황을 이어갈 수 있었던 이유에 IMO의 탄소중립 로드맵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친환경 선박 발주를 이어왔던 해운업계의 움직임이 변화하면 조선업계 역시 전략 수정이 불가피하다.
탄소중립 논의를 주도해 온 유럽에서 분열 분위기가 감지되는 점도 우려스러운 대목이다. 그간 IMO 표결에서 유럽연합(EU) 회원국은 단일 투표 관행을 이어왔지만 이번 투표에선 그리스와 키프로스가 기권하면서 이 같은 관행이 깨진 것으로 알려졌다.
그에 앞서 지난달에는 EU 회원국들이 IMO와 별도로 시행하려던 선박·항공유 탄소세 시행 시기를 당초 계획보다 10년 뒤인 2035년 이후로 연기하는 방안을 논의하기도 했다. EU 내 해운·관광 산업이 발달한 회원국을 중심으로 반발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다만 EU는 현재 온실가스 배출 총량을 제한하고 기업 간 배출권을 거래하게 하는 배출권 거래제(EU ETS) 등의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양종서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현재 해운업계 입장에서 EU의 규제를 제외하면 비용이 직접적으로 발생하는 규제는 없고, 미국에서 관세로 세계 교역을 흔들면서 업황은 안 좋은 방향으로 가는 상황"이라며 "친환경 선박 규제까지 지연되면 선박을 발주할 유인이 더 떨어져 조선 업황이 부진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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