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p! 간접흡연①]미세먼지보다 더 싫은 '길빵'…무용지물 금연구역
서울시 3분의1 금연구역이지만…간접흡연 갈등 '여전'
"담배 금지 못한다면, 흡연구역 늘려서 간접흡연 막아야"
- 신건웅 기자
(서울=뉴스1) 신건웅 기자 = # 서울 종각역 1번 출구. 높게 치솟은 빌딩 숲 사이 골목길, '금연구역' 팻말이 무색하게 담배 연기가 코를 찔렀다. 골목길 양옆에는 담배꽁초가 수북이 쌓인 재떨이가 보였고, 옹기종기 모인 흡연자들이 뻐끔뻐끔 담배 연기를 내뿜었다. 길에서 한 걸음만 옮기면 빌딩에서 지정한 흡연구역이었다. 길을 지나치는 사람들은 인상을 찌푸렸다.
흡연자들도 편치 않은 눈치다. 담배를 피우면서도 어린아이들이나 임산부가 지나가면 뒤돌거나, 허공을 향해 손을 휘저으며 연기를 날려 보냈다. 금연구역과 흡연구역의 경계가 모호한 탓이다.
지방자치단체가 간접흡연을 막겠다며 금연구역 확대에 나섰지만 흡연자와 비흡연자 어느 한쪽도 제대로 만족시키지 못하고 있다. 흡연자들은 담배를 필 수 있는 공간이 없다고 하소연하고 금연자들은 금연구역이 무용지물이라고 비판한다. 동선 등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무작정 금연구역만 탓이다.
흡연자들은 금연구역을 피해 골목과 빌딩 사이, 이면도로 등을 자체적인 흡연 장소로 정해 이용하고 있다. 모호한 경계에 간접흡연도 늘고 있다. 금연구역이 제 역할을 못 하는 셈이다.
◇서울시 3분의 1이 금연구역…간접흡연 피해는 '여전'
서울시가 금연구역으로 지정한 실외 금연구역은 2011년 670개소에 불과했으나, 지난해 말에는 1만9201개소로 27배 이상 증가했다. 실내 금연구역까지 포함하면 26만5113곳으로 늘어난다.
금연구역으로 지정한 공원·광장·거리만을 산정한 수치로 각종 시설과 지하철역 출구 등을 포함하면 서울 면적의 3분의 1이 금연구역에 해당할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인파가 몰리는 공간은 대부분 금연구역이다. 광화문 광장·강남대로·여의도공원은 물론 지하철역 입구와 버스 정류장 모두 금연구역으로 지정돼 있다. 금연구역 팻말이 익숙할 정도다.
그러나 간접흡연에 대한 불만은 끊이질 않고 있다. 길을 걸으며 담배를 피우는 '길빵'을 비롯해 골목 사이에서는 흡연자들이 뭉쳐있다. 길거리 하수구에서 담배꽁초를 찾아보는 일은 어렵지 않다.
실제 통계청 국민건강영양조사에 따르면 비흡연자의 직장 실내 간접흡연율은 2016년 기준 17.4%이며, 가정 실내 간접흡연율은 6.4%이다. 공공장소 간접흡연율은 20%를 웃돈다.
서울시가 지난 2015년 말에 조사한 결과에서는 간접흡연 수치가 더 올라갔다. 응답자의 91%가 간접흡연으로 피해를 본 적 있다고 답했다. 피해 장소는 길거리(63.4%), 건물 입구(17.3%)가 많았다.
사실상 간접흡연의 피해가 여전한 셈이다. 나백주 서울시 시민건강국장은 "실내 금연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정착됐지만 길거리 흡연이 늘어나는 추세"라며 "길거리 흡연을 막기 위해 자치구와 금연거리 지정 등에 대해 논의 중"이라고 말했다.
◇성인남성 10명 중 4명이 흡연자…"담배 피울 곳도 필요"
간접흡연이 끊이질 않는 것은 금연구역이 제 역할을 못 하기 때문이다.
흡연구역과 금연구역의 경계가 모호하고 흡연자들을 위한 공간도 적다. 흡연자들이 금연구역으로 지정되지 않은 회색 구역으로 몰리면서 일반 보행자들의 간접피해 사례가 발생하는 셈이다. 지난해 말 기준 서울시의 흡연부스는 59개에 불과하다.
지자체가 간접흡연을 막겠다며 지정한 금연구역의 부작용이다. 사람이 몰리는 곳 위주로 금연구역을 지정하다 보니 흡연자들은 어쩔 수 없이 뒷골목이나 건물 구석에서 담배를 피울 수밖에 없다. 서울 광화문광장이나 강남대로가 대표적이다. 앞에서는 담배를 못 피우지만 뒷골목에는 흡연자들이 삼삼오오 몰려있다.
한 담배업체 관계자는 "담배가 마약은 아니지 않으냐"며 "금연구역만 만들면 흡연자들은 어디서 담배를 피워야 하느냐"고 반문했다.
실제 담배 소비량이 과거보다 많이 줄었다고는 하지만 한국의 흡연율은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통계청 국민건강영양조사에 따르면 2016년 한국의 19세 이상 흡연율은 22.6%이며, 이중 남성(19세 이상) 흡연율은 39.4%다.
한국 성인 남성의 4분의 1이 담배를 피우는 만큼 이들을 위한 공간도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제대로 된 흡연공간을 만들고, 청결하게 관리하는 것이 오히려 골목길 사이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보다 낫다는 것.
그러나 지난해 서울시가 만든 흡연부스는 '0'개다. 예산을 편성하고 신청을 받았지만 신청한 자치구가 한 곳도 없었다. 올해는 예산도 배정하지 않은 상태다. 그나마 담배회사인 KT&G와 필립모리스가 자체 예산으로 흡연부스를 공공장소에 설치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간접흡연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흡연구역을 설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미 신경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간접흡연을 막기 위해 시설 전체가 금연구역으로 지정된 시설에는 흡연실을 의무적으로 설치하도록 하는 '국민건강증진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이성규 한국건강증진개발원 국가금연지원센터장도 "실외 금연구역은 흡연자와 비흡연자 갈등이 심하다"며 "제한적으로 흡연구역을 설치하되 가이드라인을 지켜서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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