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벤츠 '파라시스' 해외 57개국서 리콜…벤츠·국토부 '국내 계획 無'

파라시스 배터리 탑재 EQA·EQB 대상…美 "배터리 셀 내구성 떨어져"
청라 화재 'EQE'도 파라시스 배터리…"결함 신고 많지 않아 조사 안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인천경찰청 과학수사대 조사관들이 지난해 8월 인천 서구의 한 정비소에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로 전소된 메르세데스-벤츠 준대형 전기 세단 'EQE'에 대한 합동 감식을 진행하는 모습(자료사진). 2024.8.8 ⓒ 뉴스1 민경석 기자

(서울=뉴스1) 김성식 기자 = 2024년 인천 청라에서 발생한 메르세데스-벤츠 전기차 화재 원인으로 지목된 중국 파라시스 배터리가 해외 57개국에선 이미 리콜된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메르세데스-벤츠 코리아는 국내에서 화재가 난 차량의 배터리 종류가 해외 리콜 대상과 다르다는 이유로 국내 리콜 계획이 없다는 입장이다. 주무 부처인 국토교통부도 강제 리콜의 근거가 되는 제작 결함 조사에 착수하지 않았다.

美·中·日·獨 등 57개국서 무더기 리콜…파라시스 탑재 EQA·EQB 대상

17일 박상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한국소비자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메르세데스-벤츠는 파라시스 배터리를 탑재한 'EQA'(준중형 전기 SUV)와 'EQB'(준중형 전기 SUV) 등 2개 차종을 대상으로 미국·중국·일본·독일 등 총 57개국에서 배터리 안전을 이유로 리콜을 진행했다.

미국 도로교통안전국(NHTSA)은 리콜 보고서에서 해당 차종의 "고전압 배터리의 셀 내부에서 단락이 발생할 경우, 열화 현상이 발생해 화재 발생 위험이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며 "공급 업체의 생산 공정 편차로 특정 배터리 셀은 내구성이 떨어지는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국내 판매 EQA와 EQB는 SK온과 중국 CATL이 각각 배터리 셀과 모듈을 제작해 이번 글로벌 리콜 대상에선 제외됐다. 해외에서 리콜된 EQA와 EQB의 배터리는 셀·모듈·팩 제조는 물론 배터리관리시스템(BMS) 소프트웨어(SW) 설계에 이르기까지 모두 파라시스가 맡았다.

국내에서 판매된 메르세데스-벤츠 전기차 중 파라시스 배터리를 탑재한 차량은 'EQE'(준대형 전기 세단)와 'EQS'(대형 전기 세단) 등 2종이다. 그중 EQE는 2024년 8월 인천 청라의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불이 난 차종이다. 국내에서 판매하는 EQE·EQS 중 파라시스 배터리가 들어간 차량은 배터리 셀과 모듈은 파라시스에서, 팩과 BMS SW 설계는 메르세데스-벤츠가 맡았다.

벤츠 "EQE·EQS, 배터리 종류 달라"…국토부 "제작 결함 조사할 근거 부족"

리콜은 크게 제조사가 결함을 스스로 인정해 자율적으로 시행하는 '자발적 리콜'과 정부의 제작 결함 조사 이후 명령에 의해 제조사가 시행하는 '강제적 리콜'로 나뉜다. 메르세데스-벤츠 코리아는 국내에 판매된 EQE와 EQS 차량에 대해 자발적 리콜을 진행할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메르세데스-벤츠 코리아 관계자는 뉴스1에 "국내에서 판매된 EQE와 EQS에 탑재된 배터리의 경우, 파라시스에서 제조한 것도 있지만, 다른 국가에서 리콜 대상인 배터리와는 배터리 종류와 용량 모두 다르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모든 차종을 면밀히 모니터링하고 있으며, 고객 안전을 위해 국내 법규에 따라 적절한 조치를 취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국토교통부는 아직 EQE·EQS 차량에 대한 제작 결함 조사를 진행하지 않았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특정 배터리 제조사가 리콜된 배터리를 생산했다고 해서 해당 제작사의 다른 배터리에도 제작 결함이 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이어 "통상 같은 사양에 같은 제원을 가진 배터리에 대해 다수의 결함 신고가 접수되면 제작 결함 조사에 착수하는데, 현재로선 그렇지 않다"고 설명했다. 메르세데스-벤츠 코리아가 국토교통부에 제출한 통계에 따르면 파라시스 배터리를 장착한 EQE·EQS에서 불이 난 사례는 국내외를 통틀어 6건이다.

다만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다수의 신고가 접수되지 않더라도 사회적인 문제가 예상될 경우에는 제작 결함 조사에 돌입할 수 있다"며 "해외 EQA·EQB 리콜 사례 등을 면밀히 모니터링하고 있다"고 했다.

박상혁 의원 "화재 파장 감안, 조사했어야"…공정위, 벤츠에 112억 과징금 부과

그럼에도 주무 부처인 국토교통부가 제작 결함 조사조차 진행하지 않은 것은 메르세데스-벤츠 전기차 화재 사고의 사회적 비용을 감안할 때 안일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박상혁 의원은 "벤츠 차량에 탑재된 파라시스 배터리에 대해 해외에서는 리콜이 진행되고 있다"며 "국내에서도 큰 사고와 관련이 있었던 만큼 결함 여부에 대한 조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청라 화재 사고로 지하주차장에 주차된 차량 959대가 불에 타거나 그을렸고, 지하주차장 오수 배관과 전기 배선 등이 화재로 망가지거나 소실돼 소방 추산 38억 원의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이후 전기차 지하주차장 출입을 둘러싸고 아파트 입주민 간 갈등이 이어졌고, 화재 공포로 국내 전기차 판매량은 전년에 이어 2년 연속으로 줄었다.

한편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 10일 메르세데스-벤츠 코리아와 독일 본사에 과징금 112억 3900만 원을 부과하고 양사를 검찰에 고발했다. 세계 1위 배터리 업체인 중국 CATL의 배터리를 사용했다는 설명과 달리 EQE 6개 모델 가운데 4개 모델, EQS 7개 모델 중 1개 모델에 세계 10위권 내외로 국내에선 인지도가 없던 중국 파라시스 배터리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이런 배터리 제조사 상세 제원은 청라 화재 사고를 계기로 뒤늦게 밝혀졌다.

메르세데스-벤츠의 준대형 전기 세단 'EQE'의 모습(자료사진. 메르세데스-벤츠 코리아 제공).

seongskim@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