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폴트옵션 85.4%, 연 2% 안정형에 방치…"원리금 보장 빼야"
기금형 퇴직연금에선 진정한 디폴트 구조 설계해야
- 손엄지 기자
(서울=뉴스1) 손엄지 기자 = 퇴직연금 디폴트옵션(사전지정운용제도) 적립금의 약 85%가 연 2% 수준의 안정형 상품에 머물러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제도 도입 3년이 지났지만 실적배당형 상품으로의 자금 이동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서 원리금보장 상품을 디폴트옵션 대상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8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디폴트옵션 적립금 중 85.4%인 약 45조 5000억 원이 안정형 상품에 쏠린 것으로 집계됐다. 올해 2분기 전체 퇴직연금 적립금은 45조 원 늘었지만 디폴트옵션 증가분은 117억 원 늘어나는 데 그쳤다.
안정형 상품에서 빠져나간 1조 4891억 원 중 디폴트옵션 내 실적배당형 상품으로 이동한 금액은 921억 원으로 6.2%에 불과했다. 안정형에서 자금이 빠져나가더라도 디폴트옵션을 통한 적극적인 투자로 연결되지 않고 있는 셈이다.
영주 닐슨 성균관대 교수는 지난 7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디폴트옵션 3년, 기금형 퇴직연금의 성공 조건' 정책 세미나에서 "아무리 좋은 디폴트옵션 상품을 만들어도 가입자의 자금이 그곳으로 이동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앞으로 도입될 기금형 퇴직연금 역시 단순히 좋은 상품을 갖추는 것을 넘어 자금이 실제로 투자로 이어지게 만드는 구조적 설계가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세미나는 안도걸·김윤·전진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개최하고 서스틴베스트와 한국퇴직연금데이터(GLIDE)가 공동 주관했다. 고용노동부와 금융감독원, 노사 단체, 자산운용업계 및 학계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전문가들은 안정형 상품에 자금이 쏠리는 원인으로 가입자가 직접 상품을 선택해야 하는 현행 구조를 지목했다.
손수진 미래에셋자산운용 디지털마케팅부문 대표는 "현재 안정형 85% 안팎의 편중은 상품 실패가 아닌 가입자에게 선택을 강제하는 선택설계(옵트인·Opt-in) 구조에서 비롯된 의사결정 회피의 결과"라며 "기금형 퇴직연금에서는 가입자 미선정 시 자동 편입되는 진정한 디폴트 구조를 설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안정형 상품 선호에는 가입자들의 노후자금에 대한 인식도 반영돼 있다는 의견도 나왔다.
이상철 한국경영자총협회 본부장은 "디폴트옵션의 안정형 쏠림 현상은 단순한 무관심이 아니라 퇴직급여를 노후를 위한 '안정적 자산'으로 인식하는 가입자의 선호와 정보 부족이 복합 작용한 결과"라며 "실적배당형 상품을 자동 편입하려는 경우에는 금융소비자 보호 법제와의 정합성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아예 원리금보장 상품을 디폴트옵션 대상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남재우 한국연금학회장(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디폴트옵션의 안정형 쏠림 현상이 지속되는 근본적인 원인은 원리금보장 상품이 디폴트옵션 적격 상품에 포함됐기 때문"이라며 "디폴트옵션이 제 기능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100% 원리금보장 상품을 적격 상품에서 제외하고 가입자 투자성향별로 하나의 상품을 제시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기금형 퇴직연금 도입 과정에서 책임투자와 스튜어드십 원칙을 운용 체계에 함께 반영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서스틴베스트가 2018년 12월부터 올해 8월까지 약 7년 6개월간 분석한 결과 코스피200 환경·사회·지배구조(ESG) 지수 수익률은 390.5%로 코스피200 지수(289.3%)보다 101.2%포인트 높았다.
정승혜 서스틴베스트 전무는 "퇴직연금은 수십 년을 바라보고 굴려야 하는 최장기 노후자금이기 때문에 기후변화나 기업 지배구조 같은 중장기 리스크를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eom@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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