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느린 돈' 시대 흔드는 스테이블코인…한국은 더 느리다

느리고 비싼 '50년 결제망' 스위프트…빠르고 값싼 스테이블코인 부상
스위프트 '금융 제재' 대체 경로로 부상…각국 산업 육성에도 韓은 제자리

스위프트(SWIFT) 로고.

(서울=뉴스1) 최재헌 기자

스위프트(국제은행간통신협회·SWFIT)의 한계를 현장에서 절실히 체감했습니다.

최근 만난 한 가상자산 업계 관계자의 말은 짧지만 묵직했다. 그는 과거 무역금융 산업에서 일했다. 전 세계 금융·결제 인프라의 '표준'으로 자리 잡은 스위프트를 누구보다 잘 이해하는 동시에, 그 시스템의 수혜자이기도 하다.

그런 그가 스위프트를 향해 꺼낸 단어는 '한계'였다.

스위프트는 1973년 설립 이후 약 반세기 동안 글로벌 금융망의 핵심 역할을 하고 있다. 전 세계 금융 기관들이 금융 데이터를 주고받으며 국제 결제의 '혈관'으로 기능해 왔다.

하지만 이 시스템은 느리고, 비싸다. 이를테면 첫 무역 거래에서 서로 신뢰가 없는 구매자(바이어)와 판매자는 안전장치를 요구한다. 소액을 먼저 입금해 상대방에게 신뢰를 보이는 방식이다.

업계 관계자는 "선입금 하지 않으면 물건을 안 보내겠다는 경우가 있다"며 "스위프트를 거치면 자금이 지구 반대편 은행까지 도달하는 데 최대 4~5일이 걸린다"고 말했다.

또 스위프트는 각국 은행의 영업시간에 따라 작동해 공휴일이 끼면 송금이 지연된다. 금요일에 송금을 요청하면 다음 주로 넘어가는 사례도 적지 않다.

비용도 만만치 않다. 그는 "30달러를 보내는데 수수료만 50달러를 내는 경우도 있다"며 "결국 80달러가 드는 비효율이 발생한다"고 말했다. 소액 거래의 경우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상황'이 벌어질 수 있는 것이다.

이는 중개 은행을 거칠 때마다 수수료가 부과되는 구조 때문이다. 거래 단계가 늘어날수록 비용은 불어난다. 신뢰를 쌓기 위한 첫 거래조차 '비용의 늪'에 빠지는 이유다.

문제는 이것이 단순한 불편함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결제 인프라는 곧 금융 권력이다.

이 같은 한계를 파고든 대안이 스테이블코인이다. 스테이블코인은 달러 등 법정화폐와 가치를 1 대 1로 연동해 가격 변동성을 낮춘 디지털 자산이다.

블록체인 위에서 작동해 중개 기관 없이도 송금이 가능하다. 정산은 실시간에 가깝고, 수수료는 획기적으로 낮아진다. 24시간 결제가 가능한 점도 기존 금융망과 뚜렷한 차이다.

무역 금융 현장에서 체감하는 '격차'는 단순한 '편의성'을 넘어선다. 기존 결제망을 대체할 수 있는 수준이다.

실제 스테이블코인은 기술 혁신에 그치지 않고 금융 질서 자체를 흔들기 시작했다. 미국의 금융 제재를 받은 이란은 국제 결제망 접근이 제한되자 비트코인과 스테이블코인을 호르무즈 해협 통행료 결제 수단으로 요구했다.

달러 중심 결제망을 우회하는 경로가 현실화되고 있다는 의미다.

국가 차원의 대응도 본격화하고 있다. 현재 스테이블코인 시장의 대부분은 달러 기반이다. 이 구조가 고착되면 각국의 통화 주권이 약화될 수밖에 없다.

일본은 엔화 스테이블코인 활용 기업에 보조금을 지급하며 산업 육성에 나섰고, 유럽도 공동 프로젝트 '키발리스'를 통해 유로 기반 스테이블코인 육성을 추진하고 있다.

이제 스테이블코인은 단순한 기술 실험이 아니라 '결제 인프라 전쟁'의 영역에 들어섰다.

반면 한국의 논의는 여전히 제자리다. 1년 가까이 제도화는 공회전 중이고, 논의는 '누가 발행할 것인가'라는 초기 단계에 매몰돼 있다. 세계가 이미 활용과 확장, 산업화 단계로 넘어간 것과 대비된다.

시장은 이미 빠르게 커지고 있다. 글로벌 대형 은행 스탠다드차타드는 오는 2028년 스테이블코인 시장 규모가 2조 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했다.

50년간 전 세계를 지배한 금융 인프라가 변화하는 '전환점'에서 우리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 변화의 방향은 이미 정해졌다. 머뭇거리는 국가는 결국 따라가는 국가가 된다.

chsn12@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