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인보다 불편한 진실…'폭탄', 질문이 폭발하는 서스펜스 [시네마 프리뷰]

18일 개봉 영화 '폭탄' 리뷰

영화 '폭탄' 스틸

(서울=뉴스1) 장아름 기자

* 영화의 주요 내용을 포함한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술 취한 난동범으로 경찰에 연행된 한 남자가 뜬금없이 폭발을 예언한다. 그의 이름은 스즈키 다고사쿠(사토 지로 분). 허무맹랑한 헛소리처럼 들리던 그의 말은 곧 현실이 되고, 사건은 단숨에 경찰서 차원을 넘어 경시청 수사 1과가 움직이는 연쇄 폭탄 테러로 비화한다.

18일 국내 개봉한 '폭탄'(감독 나가이 아키라)은 연쇄 폭탄 테러를 예언하는 광기 어린 남자와 그의 단서를 쫓는 경시청 수사과의 숨 막히는 대결을 그린 극한의 서스펜스 스릴러다. 일본 미스터리 소설계를 대표하는 재일교포 작가 오승호의 동명의 소설이 원작으로 한다.

영화 '폭탄' 포스터
영화 '폭탄' 스틸

'폭탄'은 표면적으로 취조실 심리전과 도심 수색전을 결합한 서스펜스 스릴러이지만, 스즈키의 입을 통해 던지는 질문들로 관객들의 폐부를 날카롭게 파고드는 작품이다. 이는 제도와 상식이 끝내 구해주지 못한 이들의 분노가 어떤 방식으로 되돌아오는지 정면으로 응시한다. 장르적 재미도 분명하지만, 영화가 던지는 질문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다.

스즈키가 취조실에서 형사들에게 던지는 "생명은 평등하다는 게 진짜인가요?"라는 물음은 영화 전체를 관통한다. 법과 제도, 정의를 말하는 형사들조차 아이들이 아닌 노숙자들이 피해자여서 내심 안도하고, 사회적으로 더 보호받아야 할 생명을 은연중에 구분한다. 모두가 생명의 평등을 말하지만, 영화 속 현실에서는 각자의 기준으로 타인을 등급화하고 서열을 매기는 본능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형사들 역시 스즈키 앞에서 각자의 모순적 내면이 시험대에 오르고, 이는 인간의 위선을 집요하게 찌른다.

남루한 술주정뱅이로 등장한 스즈키는 점차 광기 어린 테러범으로 변모하고, 취조실의 주도권을 쥐며 형사들의 신념과 윤리를 흔든다. 영화는 후반부에서 그가 왜 스스로 괴물이 되려 했는지 그리는 것으로 그를 단순한 악으로 치부하지 않는다. 다만 인물 설정의 설득력에서는 아쉬운 면도 있다. 노숙자가 엘리트 형사들을 쥐락펴락할 만큼, 치밀한 판을 설계할 수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개연성에 다소 의문이 남는다. 그럼에도 이는 제도 밖으로 밀려난 이들을 무력한 존재로 규정해 온 시선을 한 번 더 되돌아보게 만든다.

스즈키를 연기한 사토 지로는 영화의 중심을 완전히 장악한다. 어딘가 어눌한 노숙자 행색의 스즈키를 광기와 냉소, 분노, 조롱을 오가는 인물로 그리며 압도적인 존재감을 보여준다. 때로는 비굴하고, 때로는 불쾌하면서도 섬뜩한 사토 지로의 연기가 곧 영화 그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상영 내내 작품을 압도한다. 사토 지로는 이번 열연으로 "일본판 조커"라는 호평을 끌어냈고, 지난 13일 개최된 제49회 일본 아카데미상에서 최우수 남우조연상을 수상했다.

영화는 사건을 퍼즐처럼 맞춰가는 추리 과정을 보여주며 서스펜스의 밀도를 끝까지 유지한다. 하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범죄의 실체를 밝히는 쾌감보다, 인간 내면의 모순을 더욱 건드리는 메시지로 깊은 여운을 남긴다. 이 비극은 한 남자의 범행과 광기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결국 '폭탄'의 진짜 폭발은 화면 속 화염이 아니라, 관객의 머릿속에 던져지는 질문들에 가깝다. 그 파동은 상영이 끝난 뒤에도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 상영 시간 137분.

aluemchang@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