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환율 1480원 정당화 어려워…국민연금 환헤지 비율 높여야"

달러 '풍요 속의 부족' 진단…국민연금·국내 투자자 영향도 언급
WGBI·MSCI 맞물린 외환시장 구조개편 예고…"변동환율, 충격흡수 장치"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2026.1.29/뉴스1 ⓒ News1 임세영 기자

(세종=뉴스1) 이강 기자 =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최근의 원화 급락이 국내 투자자들의 심리적 쏠림과 외환시장의 구조적 왜곡에서 비롯됐다고 진단했다.

이 총재는 특히 변동성 완화를 위해 국민연금 등 기관투자가의 환헤지 비율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하며, 향후 3~6개월 내에 이를 포함한 새로운 외환시장 구조를 마련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30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이 총재는 지난 28일 홍콩에서 골드만삭스가 주최한 '글로벌 매크로 콘퍼런스'(Global Macro Conference Asia Pacific 2026)에서 진행된 얀 하치우스 골드만삭스 수석 이코노미스트와의 대담에서 이같이 밝혔다.

대담은 '글로벌 분화 시대의 정책결정'(Policymaking in an Era of Global Divergence)을 주제로 진행됐다.

달러 '풍요 속의 부족' 진단…기대 형성과 시장 구조 왜곡 지목

이 총재는 지난해 10~11월 이후 달러 인덱스 흐름과 비교할 때 원화가 독자적으로 약세를 보인 점을 언급하며, 글로벌 달러 강세만으로는 당시 환율 급등을 설명하기 어렵다고 진단했다.

원화 급락의 원인으로는 외환시장의 구조적 왜곡을 지목했다.

이 총재는 "외환 스왑 시장에서는 달러 가격이 역사적으로 가장 낮았지만, 현물 시장에서는 달러 가격이 급등했다"며 "이를 '풍요 속의 부족'(scarcity in plenty)"이라고 표현했다.

원화 약세가 실물 수급의 문제가 아니라, 환율이 더 오를 것이라는 기대가 형성되면서 달러를 보유하려는 심리가 강화된 결과라는 의미다.

이 총재는 이러한 기대 형성 과정에 "이는 해외 투자자뿐 아니라 개인, 국민연금, 기관투자가 등 국내 투자자들의 영향도 컸다"며 "원화가 더 약세를 보일 것이라는 기대가 형성되면서 이를 막기 어려웠다"고 밝혔다.

특히 국민연금의 해외투자 확대를 환율 변동성의 주요 변수로 꼽았다. 이 총재는 "국민연금은 이제 외환 시장에서 무시할 수 없는 존재가 됐다"고 평가했다.

국민연금의 환헤지 전략과 관련해서는 "현재 환헤지 비율 목표는 0%인데, 개인적인 경제학자로서의 견해로는 이는 합리적이지 않다"며 "헤지 비율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중앙은행 스와프에만 의존하지 말고, 달러 표시 채권 발행 등 다양한 헤지 수단을 검토하고 있다"며 "향후 3~6개월 내 새로운 외환 시장 구조가 마련될 것"이라고 했다.

이 총재는 최근 환율 흐름에 대해 "최근 미·일 움직임과 트럼프 전 대통령의 발언 이후 환율이 1430원대까지 내려오며 다소 안도하고 있다"면서 "경제 펀더멘털뿐 아니라 정치적 요인의 영향도 크게 받고 있다"며 글로벌 정치 변수의 영향을 언급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공동취재) 2026.1.15/뉴스1 ⓒ News1 김진환 기자
WGBI·MSCI 편입 추진 속 외환시장 구조 개편·KOFR 전환 강조

이 총재는 이러한 환율 환경 속에서 한국 국채의 세계국채지수(WGBI) 편입과 주식시장의 MSCI 선진지수 편입 추진이 외환시장 구조 변화와 맞물려 중요해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WGBI 편입을 위해 외환시장 거래 시간을 연장하고, 외국인 투자자의 접근성을 대폭 개선한 점은 환율 변동성 관리 측면에서도 의미가 크다는 설명이다.

그는 WGBI 편입 이후 외국인 자금 유입이 늘어날 수 있지만, 유연환율제가 충격 흡수 장치로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밝혔다. 동시에 단기 자금보다 장기 기관투자가 비중이 확대되는 것이 외환시장 안정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기대도 내비쳤다.

주식시장과 관련해서는 MSCI 편입을 다음 단계로 제시하며, 접근성 개선과 함께 기업지배구조 개선이 핵심 과제라고 언급했다. MSCI 편입이 이뤄질 경우 자본 유출입이 더욱 활발해지면서 환율 안정의 중요성도 한층 커질 수 있다고 봤다.

이 총재는 "저는 유연(변동)환율제의 장점을 믿는 사람"이라며 "유연한 환율은 충격 흡수 장치로서 많은 이점을 제공한다"고 말했다.

이어 AI와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수출 경쟁력이 유지되는 한, 중장기적으로는 외환시장 여건도 점진적으로 안정될 수 있다는 인식도 함께 드러냈다.

이외에도 이 총재는 가계부채와 성장 전망, K자형 성장에 대한 입장도 밝혔다. 그는 한국은행의 1차 목표는 물가 안정이며, 이후 금융 안정을 고려하는 범위에서 가계부채와 부동산, 환율 문제를 다룬다고 설명했다.

한국의 가계부채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비율이 과거 98%에서 현재 89% 수준으로 낮아졌지만, 급격한 디레버리징은 금융 안정과 주거 접근성에 부작용을 낳을 수 있어 중장기적으로 GDP를 키우는 방식으로 조정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성장 전망과 관련해서는 올해 반도체·방산·자동차·조선을 중심으로 회복세가 이어지겠지만, IT를 제외한 부문에서는 건설 부진 등으로 성장 흐름이 제한될 수 있다고 봤다.

특히 AI와 수출 중심의 회복이 이어지는 가운데 내수와 전통 산업이 상대적으로 부진한 K자형 성장은 금리 정책만으로 해결하기 어렵고, 재정 정책과 구조 개혁을 통해 대응해야 할 문제라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이 총재는 통화정책 전달체계와 관련해 3개월 CD 금리에서 무위험지표금리인 KOFR(콜금리 기반 지표금리)로의 전환도 자신의 임기 중 핵심 과제라고 밝혔다.

thisriver@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