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7] 대통령의 평양행, 과거엔?…이벤트보다 '결과' 주목
2000년 임동원의 '목숨 건 협상' 넘어 첫 방북 성사
한반도 정세 격랑 속 방북…의전보다 '알맹이' 집중
- 서재준 기자
(서울=뉴스1) 서재준 기자 =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해 열리는 남북 정상회담은 일주일 앞으로 다가온 '2018 평양 정상회담'이 세 번째다.
앞선 두 번은 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 간의 2000년 남북 정상회담, 노무현 전 대통령과 김 국방위원장 간의 2007년 남북 정상회담이다.
2000년 정상회담은 수차례 고비를 넘어 성사됐다. 1994년 김영삼 전 대통령과 김일성 주석 간 정상회담이 김 주석의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무산되고 다시 남북의 정상회담이 열리기까지 6년의 시간과 각기 한 번씩의 정권 교체가 있었다.
첫 정상회담을 주도했던 인사는 남측의 임동원 전 국정원장, 박지원 당시 문화관광부 장관, 이익치 전 현대증권 회장 등이 있다.
임 전 원장은 자신의 회고록 '피스메이커'에 첫 평양 정상회담의 성사 과정을 자세히 기술했다.
남북은 2000년 3월 정상회담 준비를 위한 비밀접촉을 갖는데, 이 비밀접촉은 같은 해 2월 박지원 전 장관이 이익치 전 회장과 요시다 다케시라는 일본인 사업가를 만나 성사됐다.
당시 이 전 회장과 요시다가 북측의 정상회담 추진 의사를 전달하며 논의가 시작된 것이다. 이후 3월 9일 박 전 장관과 북측 송호경 조선아시아태평양위원회 부위원장이 만나 공식적인 정상회담 논의를 진행하게 된다. 서훈 현 국정원장도 당시 논의에 참여했다.
임 전 원장은 특사 자격으로 비공개로 방북한 경험을 밝혔다. 그는 어느 날 비가 세차게 내리치는 밤에 헬기를 타고 평양에 '저고도 비행'으로 들어가며 "이렇게 죽을 수도 있겠구나"라고 생각했다고 회고했다.
이 같이 '목숨을 건' 실무 협상을 거쳐 성사된 남북 정상회담에서 두 정상은 5개 항의 역사적 합의를 도출했다.
역사적인 남북 정상의 첫 만남과 '6.15 공동선언'의 도출에도 불구하고 첫 정상회담은 이른바 '대북 송금 사건' 등 후폭풍도 만만치 않았다.
오랜 분단으로 인해 비공개, 비공식, 선명하지 못한 채널을 활용해야 했던 남북 관계가 낳은 부정적 여파였다.
2007년의 남북 정상회담은 한 차례 연기된 뒤 성사되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남북은 당초 두 번째 정상회담을 2007년 8월 28일 개최하기로 합의했으나 북측에서 대규모 수해가 발생하면서 10월로 미뤄졌다.
당시 북측은 8월 18일 회담 연기를 요청하며 추후 구체적 회담 일정 지정을 남측에 일임하기도 했다.
두 번째 정상회담에서는 1998년 정주영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소떼 방북'에 이은 또 한 번의 육로 방북 역사가 열렸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육로로 군사분계선(MDL)을 넘은 뒤 경의선 도로를 이용해 평양에 들어간 것이다. 1953년 정전협정 이후 대한민국 국가 원수로는 처음이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파격적 대우로 노 대통령을 예우했다. 2박 3일의 평양 회담이 막바지에 이르렀을 무렵 돌연 "하루 더 체류하시면 안 되냐"는 제안을 한 것이다.
당시 이 같은 제안을 놓고 김 위원장이 우리 측과의 합의 내용이 맘에 들지 않아 추가적인 협의를 하려고 했다는 분석과, 고위 외빈을 대하는 북측 방식의 예우라는 분석이 엇갈리기도 했다.
2007년 남북 정상회담의 결과로 '10.4 공동선언'이 채택됐다. 이 공동선언문에는 한반도 핵 문제 해결을 위한 3자, 혹은 4자 정상회담 추진과 관련한 내용이 담겼다. 또 남북 경제협력의 활성화와 관련된 내용도 있었다.
2007년의 남북 정상회담은 그러나 이후 정권 교체와 북한의 연이은 핵실험, 노 전 대통령의 사망 등으로 의미가 다소 퇴색했다는 평가도 있다.
특히 두 번의 보수 정권에서 이른바 'NLL 논란'을 거치며 남북 정상 간 대화록이 고스란히 공개되는 사건을 겪기도 했다. 또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로 남북 경제 협력은 다시 원점으로 회귀한 것과 다름없게 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런 두 번의 평양 남북 정상회담의 공과를 모두 안고 평양으로 향한다.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정상회담은 벌써 세 번째지만 앞선 두 번의 정상회담은 모두 판문점에서 열리는 당일치기 회담이었다.
시대가 변한 만큼 남북 정상회담의 성사 과정도 비교적 투명해졌다. 비록 비선, 비공개 채널 등의 '험난한' 사전 협상 과정을 거친 것은 아니지만 처음으로 평양을 방문하는 문 대통령의 입장에서는 준비해야 할 것이 많다. 이는 김 위원장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북미, 북중 관계가 복잡하게 얽힌 국제 정세도 여전히 안갯속이다. 성과에 대한 부담이 그 어느 때보다 클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뜻이다.
두 정상이 회담의 일정과 의전 등에 '과거와 달라야 한다'는 생각에 집착하기 보다는 회담 자체에 집중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앞선 두 번의 정상회담으로 '아이스 브레이킹'은 된 상태다. 두 정상은 2박 3일간 격식 없이 수차례 만나 의견을 교환하고 합의점을 찾으려 할 가능성이 높다.
다만 과거 남북 정상 간 합의의 의미를 살리는 차원의 의미 있는 이벤트는 준비할 가능성이 높다. 무대는 남측의 두 정상이 묵었던 백화원 초대소나, 문 대통령의 방북 루트로 유력해 보이는 평양 순안공항이 될 가능성이 높다.
김 위원장 본인만의 색채가 드러나는 의전도 준비될 것으로 보인다. 2013년 중단했다 5년 만에 재개한 집단 체조 '빛나는 조국'의 관람도 그중 하나다.
북한은 정권 수립 기념일(9.9절) 70주년을 계기로 지난 9일 '빛나는 조국'의 첫 무대를 올렸다. 공연 중 김 위원장의 외교 치적과 관련한 대목에선 문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장면이 나오기도 했다. 김 위원장이 문 대통령의 '빛나는 조국' 관람에 러브콜을 보낸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2박 3일의 일정 동안 양측 정상 외에도 정상회담 합의문 도출을 위한 양측 실무진의 회담도 연이을 것으로 보인다. 2000년 정상회담 때에는 마지막 날 만찬 도중 합의문이 최종 완성되며 남북의 두 정상이 축하 세리머니를 두 번 하기도 했다.
회담 과정에서 선보일 김 위원장의 협상 방식도 주목된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회담의 정체 혹은 난항시 북한 지도자 특유의 '결단' 방식으로 회담의 돌파구를 찾기도 했다. 김 위원장 역시 여러 시나리오 속에서 나름의 '히든카드'를 준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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