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7] 대통령의 평양행, 과거엔?…이벤트보다 '결과' 주목

2000년 임동원의 '목숨 건 협상' 넘어 첫 방북 성사
한반도 정세 격랑 속 방북…의전보다 '알맹이' 집중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4월 27일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열린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 선언' 서명식에서 선언문에 서명한 후 손을 맞잡고 들어보이고 있다. 2018.4.27/뉴스1 ⓒ News1 한국공동사진기자단

(서울=뉴스1) 서재준 기자 =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해 열리는 남북 정상회담은 일주일 앞으로 다가온 '2018 평양 정상회담'이 세 번째다.

앞선 두 번은 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 간의 2000년 남북 정상회담, 노무현 전 대통령과 김 국방위원장 간의 2007년 남북 정상회담이다.

2000년 정상회담은 수차례 고비를 넘어 성사됐다. 1994년 김영삼 전 대통령과 김일성 주석 간 정상회담이 김 주석의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무산되고 다시 남북의 정상회담이 열리기까지 6년의 시간과 각기 한 번씩의 정권 교체가 있었다.

첫 정상회담을 주도했던 인사는 남측의 임동원 전 국정원장, 박지원 당시 문화관광부 장관, 이익치 전 현대증권 회장 등이 있다.

임 전 원장은 자신의 회고록 '피스메이커'에 첫 평양 정상회담의 성사 과정을 자세히 기술했다.

남북은 2000년 3월 정상회담 준비를 위한 비밀접촉을 갖는데, 이 비밀접촉은 같은 해 2월 박지원 전 장관이 이익치 전 회장과 요시다 다케시라는 일본인 사업가를 만나 성사됐다.

당시 이 전 회장과 요시다가 북측의 정상회담 추진 의사를 전달하며 논의가 시작된 것이다. 이후 3월 9일 박 전 장관과 북측 송호경 조선아시아태평양위원회 부위원장이 만나 공식적인 정상회담 논의를 진행하게 된다. 서훈 현 국정원장도 당시 논의에 참여했다.

임 전 원장은 특사 자격으로 비공개로 방북한 경험을 밝혔다. 그는 어느 날 비가 세차게 내리치는 밤에 헬기를 타고 평양에 '저고도 비행'으로 들어가며 "이렇게 죽을 수도 있겠구나"라고 생각했다고 회고했다.

이 같이 '목숨을 건' 실무 협상을 거쳐 성사된 남북 정상회담에서 두 정상은 5개 항의 역사적 합의를 도출했다.

역사적인 남북 정상의 첫 만남과 '6.15 공동선언'의 도출에도 불구하고 첫 정상회담은 이른바 '대북 송금 사건' 등 후폭풍도 만만치 않았다.

오랜 분단으로 인해 비공개, 비공식, 선명하지 못한 채널을 활용해야 했던 남북 관계가 낳은 부정적 여파였다.

지난 4월 경기 고양시 일산서구 킨텍스에 마련된 '2018 남북정상회담 프레스센터'에 2000년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남북정상회담 장면이 화면에 나오고 있다. 2018.4.26/뉴스1 ⓒ News1 송원영 기자

2007년의 남북 정상회담은 한 차례 연기된 뒤 성사되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남북은 당초 두 번째 정상회담을 2007년 8월 28일 개최하기로 합의했으나 북측에서 대규모 수해가 발생하면서 10월로 미뤄졌다.

당시 북측은 8월 18일 회담 연기를 요청하며 추후 구체적 회담 일정 지정을 남측에 일임하기도 했다.

두 번째 정상회담에서는 1998년 정주영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소떼 방북'에 이은 또 한 번의 육로 방북 역사가 열렸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육로로 군사분계선(MDL)을 넘은 뒤 경의선 도로를 이용해 평양에 들어간 것이다. 1953년 정전협정 이후 대한민국 국가 원수로는 처음이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파격적 대우로 노 대통령을 예우했다. 2박 3일의 평양 회담이 막바지에 이르렀을 무렵 돌연 "하루 더 체류하시면 안 되냐"는 제안을 한 것이다.

당시 이 같은 제안을 놓고 김 위원장이 우리 측과의 합의 내용이 맘에 들지 않아 추가적인 협의를 하려고 했다는 분석과, 고위 외빈을 대하는 북측 방식의 예우라는 분석이 엇갈리기도 했다.

2007년 남북 정상회담의 결과로 '10.4 공동선언'이 채택됐다. 이 공동선언문에는 한반도 핵 문제 해결을 위한 3자, 혹은 4자 정상회담 추진과 관련한 내용이 담겼다. 또 남북 경제협력의 활성화와 관련된 내용도 있었다.

2007년의 남북 정상회담은 그러나 이후 정권 교체와 북한의 연이은 핵실험, 노 전 대통령의 사망 등으로 의미가 다소 퇴색했다는 평가도 있다.

특히 두 번의 보수 정권에서 이른바 'NLL 논란'을 거치며 남북 정상 간 대화록이 고스란히 공개되는 사건을 겪기도 했다. 또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로 남북 경제 협력은 다시 원점으로 회귀한 것과 다름없게 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런 두 번의 평양 남북 정상회담의 공과를 모두 안고 평양으로 향한다.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정상회담은 벌써 세 번째지만 앞선 두 번의 정상회담은 모두 판문점에서 열리는 당일치기 회담이었다.

시대가 변한 만큼 남북 정상회담의 성사 과정도 비교적 투명해졌다. 비록 비선, 비공개 채널 등의 '험난한' 사전 협상 과정을 거친 것은 아니지만 처음으로 평양을 방문하는 문 대통령의 입장에서는 준비해야 할 것이 많다. 이는 김 위원장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왼쪽부터) 2018.09.11.ⓒ News1 이은주 디자이너

북미, 북중 관계가 복잡하게 얽힌 국제 정세도 여전히 안갯속이다. 성과에 대한 부담이 그 어느 때보다 클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뜻이다.

두 정상이 회담의 일정과 의전 등에 '과거와 달라야 한다'는 생각에 집착하기 보다는 회담 자체에 집중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앞선 두 번의 정상회담으로 '아이스 브레이킹'은 된 상태다. 두 정상은 2박 3일간 격식 없이 수차례 만나 의견을 교환하고 합의점을 찾으려 할 가능성이 높다.

다만 과거 남북 정상 간 합의의 의미를 살리는 차원의 의미 있는 이벤트는 준비할 가능성이 높다. 무대는 남측의 두 정상이 묵었던 백화원 초대소나, 문 대통령의 방북 루트로 유력해 보이는 평양 순안공항이 될 가능성이 높다.

김 위원장 본인만의 색채가 드러나는 의전도 준비될 것으로 보인다. 2013년 중단했다 5년 만에 재개한 집단 체조 '빛나는 조국'의 관람도 그중 하나다.

북한은 정권 수립 기념일(9.9절) 70주년을 계기로 지난 9일 '빛나는 조국'의 첫 무대를 올렸다. 공연 중 김 위원장의 외교 치적과 관련한 대목에선 문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장면이 나오기도 했다. 김 위원장이 문 대통령의 '빛나는 조국' 관람에 러브콜을 보낸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2박 3일의 일정 동안 양측 정상 외에도 정상회담 합의문 도출을 위한 양측 실무진의 회담도 연이을 것으로 보인다. 2000년 정상회담 때에는 마지막 날 만찬 도중 합의문이 최종 완성되며 남북의 두 정상이 축하 세리머니를 두 번 하기도 했다.

회담 과정에서 선보일 김 위원장의 협상 방식도 주목된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회담의 정체 혹은 난항시 북한 지도자 특유의 '결단' 방식으로 회담의 돌파구를 찾기도 했다. 김 위원장 역시 여러 시나리오 속에서 나름의 '히든카드'를 준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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