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 대화 가능성은 '솔솔'·한반도는 '강 대 강'…복잡해진 셈법[한반도 GPS]
대북 유화 정책 추진 속 DMZ 폭발 사고…남북 경색 불가피
11월 APEC 계기 북미 대화 가능성…'한국 패싱' 우려는 여전
- 윤주현 기자
(서울=뉴스1) 윤주현 기자 = 최근 북미 대화의 불씨가 살아나고 있지만, 정부의 입장에선 마냥 웃을 수 없는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비무장지대(DMZ)에서 북한군이 매설한 것으로 추정되는 지뢰가 폭발하며 여러 명의 우리 장병이 부상을 입은 것입니다. 하지만 북한은 한국이 '광대극'을 벌이고 있다고 강변하며 사과에 나설 의향이 전혀 없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한반도 정세를 '강 대 강' 구도로 이끄는 이러한 상황은 한반도 평화 공존 정책을 추진하던 정부의 셈법을 복잡하게 만들었습니다. 이번 폭발 사고는 물론 이와 연관이 있어 보이는 북한의 국경 단절 조치인 '국경 요새화' 움직임에 단호하고 원칙적으로 대처함과 동시에, 북미 대화가 열릴 경우 북한을 대화 테이블로 유인하는 역할을 해야 하는, 다소 모순적인 과제에 직면했다는 평가입니다.
하지만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을 마치 알지 못한다는 듯 북한을 향해 유화 메시지를 쏟아내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행보는, 자칫 향후 열릴 북미 대화에서 한국이 소외되는, '한국 패싱' 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습니다.
이번 '강 대 강' 대치의 도화선이 된 지뢰 폭발 사고는 지난달 21일 우리 군의 DMZ 내 수색로 개척 작전 중에 일어났습니다. 이 사고로 작전 중이던 우리 장병 18명이 중경상을 입었습니다.
현장에서 작전을 지휘하던 대대장이 다친 부하를 살피다 중상을 입은 사실과, 부상자를 안전한 곳으로 피신시키는 동료 장병들의 헌신적 모습이 공개되면서 국민들의 안타까움과 공분을 샀습니다.
우리 군과 유엔군사령부는 사고 이후 합동 조사를 통해 이번 폭발 사고가 북한군이 매설한 지뢰 때문이라고 잠정 결론 내렸습니다. 군사분계선(MDL) 이남인 사고 현장 인근에서 유실이 아닌 '매설'된 채 발견된 북한군의 수지(플라스틱) 반보병지뢰와, 수색대의 장비에 묻은 지뢰의 파편이 아군의 지뢰와 다르다는 점이 결정적 물증이 됐습니다.
하지만 북한은 김정은 노동당 총비서의 동생인 김여정 당 총무부장의 담화를 통해 이번 지뢰 폭발 사고를 한국의 '자작극'이라며 책임을 회피했습니다. 오히려 북한은 이번 사고를 계기로 남북 단절을 위해 MDL 인근에 지뢰를 심거나 장벽을 쌓는 '국경 요새화' 작업의 정당성을 강조하고, 이 작업에 투입된 북한군의 MDL 월선 행위에 경고사격을 한 우리 육군 21사단에 대한 '군사적 보복' 가능성을 시사하며 위협 수위를 끌어올렸습니다.
우리 군과 유엔사는 추가 조사를 통해 북한군이 어떤 의도로 사고 지점에 지뢰를 매설했는지 살펴보고 있습니다. 다만 북한군의 '정확한 의도'와 무관하게, MDL 이남 지역에 지뢰가 매설됐다는 점에서 북한이 정전협정 위반 행위를 했다고 밝혔습니다. 군은 최종 조사 결과가 나온 뒤 '상응한 조치'를 취한다는 입장입니다.
다만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이번 사건이 한반도 평화를 향한 노력을 폄훼하거나 왜곡하는 빌미가 돼서는 안 된다"라며 남북 간 군사적 긴장 고조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이재명 대통령 또한 지난 1일 국군의날 기념식에서 이번 사고를 '불의의 사고'로 표현하고, 한반도의 긴장 완화가 중요하다면서 북한의 책임론 부각을 자제했습니다.
이러한 온도 차는 정부의 고민을 그대로 보여 줍니다. 북미 대화를 통한 남북 대화 재개를 원하는 정부 입장에서는 북한의 책임을 강하게 묻기 어려워 보입니다. 하지만 정전협정을 위반한 북한군의 지뢰 매설 행위로 우리 장병이 다친 사건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다면, 오히려 대북 정책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를 완전히 잃을 수도 있습니다.
대북 확성기 방송이라는 압박과 출구 모색을 위한 대화를 동시에 활용해 북한의 '유감 표명'을 끌어냈던 2015년 목함지뢰 도발 당시와 비교하면, 대응 셈법이 훨씬 복잡해진 상황입니다.
정부는 남과 북, 유엔사가 서로 다르게 인지하는 MDL의 재획정을 의제로 한 군사 당국 간 대화의 물꼬를 트려 하지만, 북한이 응할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입니다.
최근 국가정보원은 올해 안에 북미 대화가 재개될 가능성을 '50%'로 예측했습니다. 확률이 '반반'이라는 뜻이지만, 북한이 트럼프 대통령의 대화 제의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던 지난 1년 9개월의 시간을 생각하면 확률이 높아진 느낌도 드는 숫자입니다.
주요 계기는 11월 중순 중국 선전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될 가능성이 큽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바로 옆 중국으로 오면서 김 총비서에게 '러브콜'을 보내고, 중국과 러시아를 지원군으로 확보한 북한이 '새로운 외교'에 나선다면 상황은 빠르게 전개될 수도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관측입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연이은 대북 제스처가 우리와의 면밀한 협의를 통해 나오고 있다는 흔적이 엿보이질 않습니다. 오히려 트럼프 대통령은 아직 합의되지 않은 한국의 대미 투자 사업을 '확정안'이라고 주장하거나, 한국이 자신이 원하는대로 투자를 이행하지 않으면 '두 배'의 투자금을 청구하겠다는 으름장을 놓으면서 우리를 압박하는 데만 집중하는 듯합니다.
반면 남북의 긴장 고조에 대한 평가는 한 마디도 내놓지 않고 있습니다. 한국을 지지하는 동맹의 자세가 부족해 보이는 게 사실입니다.
이런 모습은 향후 북한과 미국이 한국을 배제한 협상을 진행할 가능성을 키우고 있습니다. 특히 "한국과 상대하지 않겠다"라는 북한이 '한국이 빠진 대화'를 공고화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이른 시일 내에 미국과의 '전략적 대화'에 나설 수도 있다는 관측도 조심스럽게 제기됩니다.
이처럼 최악의 남북 관계를 뚫기 위해 "뭐라도 해야 한다"는 정부의 여러 가지 정책은, 꿈쩍도 하지 않는 북한과 한국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는 트럼프 대통령 앞에서 좀처럼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해야 할 일은 분명하지만,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은 것. 지금 우리 정부가 마주한 한반도 외교의 딜레마입니다.
gerrad@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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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한반도 외교안보의 오늘을 설명하고, 내일을 미리 알려드립니다. 한 발 더 들어가야 할 이야기를 쉽고 재밌게 짚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