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내 위기' 대응한다더니…주한미군 자산 반출, 어긋난 전략적 유연성?

인태지역 아닌 중동지역으로 무기 반출…전략적 유연성 취지와는 달라
전문가 "중동서 미군 자산 빠르게 소진…일시적 현상"

10일 오후 경북 성주군 주한미군 사드 기지 모습. 발사대가 하늘을 향해 세워진 채 기지에는 적막이 흐르고 있다. 2026.3.10 ⓒ 뉴스1 공정식 기자

(서울=뉴스1) 허고운 기자 = 주한미군의 방공 전력이 최근 중동으로 잇따라 차출되면서 한미가 합의한 '전략적 유연성' 개념과 맞는 조치인지 논란이 커지고 있다. 당초 대만 문제 등 인도·태평양지역의 '역내 위기'에 대한 주한미군의 확장 대응을 염두에 둔 것으로 평가된 개념이 중동 전쟁 지원으로까지 활용되는 게 적절하냐는 것이다.

주한미군 방공 자산 중동 차출…北中 견제용 '사드'까지 이동

11일 소식통 등에 따르면 주한미군은 패트리엇 요격 미사일과 일부 방공 전력을 중동으로 이동시키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경부 성주에 배치된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요격미사일 일부도 이동이 진행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미군은 최근 이란과의 충돌 과정에서 요격 미사일을 대량 소모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 때문에 전 세계 미군기지에 있는 자산을 중동에 투입 중인 것으로 파악된다.

주한미군 전력의 중동 이동이 처음은 아니다. 주한미군은 지난해 6월 이란 핵시설을 공습할 당시 패트리엇 포대 일부를 중동에 배치했다가 같은 해 10월 한국으로 복귀시킨 바 있다. 또 2003년 이라크 전쟁 때는 주한미군 전투부대가 중동으로 차출됐고 일부 전력은 이후 한국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이번에도 전쟁의 장기화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앞으로 주한미군의 차출 규모가 더 커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주한미군의 지상군, 공군 자산까지 차출될 경우엔 대북 대비태세가 현저하게 약화할 우려도 제기된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10일 국무회의에서 "무기가 일부 반출되더라도 대북 억지력에 심각한 장애가 발생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라면서도 "주한미군이 자국 필요성에 따라 일부 방공무기를 반출하는 것에 대해 반대 의견을 내고는 있지만 우리 의견대로 전적으로 관철할 수 없는 것도 엄연한 현실"이라고 말했다.

대통령이 주한미군 전력 이동 문제를 공식 석상에서 언급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군 안팎에서는 이 발언이 단순 상황 설명을 넘어 한국 정부의 우려를 미국 측에 우회적으로 전달할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9일 경기 평택시 팽성읍 주한미군기지 캠프 험프리스에 헬기와 장비들이 계류되어 있다.2026.3.9 ⓒ 뉴스1 김영운 기자
인·태지역 밖으로 나가도 '전략적 유연성'으로 볼 수 있나…한미 소통 수준은?

논란의 핵심은 최근 주한미군의 움직임을 '전략적 유연성'의 일환으로 볼 수 있느냐는 점이다. 전략적 유연성은 원론적으로는 해외에 주둔한 미군 전력을 특정 지역이나 임무에 고정하지 않고 필요할 경우 다른 지역으로 이동시킬 수 있도록 하는 전력 운용 개념이다.

이를 주한미군에 대입하면, 그간 한반도 방어 전력으로만 기능하던 주한미군을 필요할 경우 역내 분쟁 지역으로 이동시킬 수 있도록 한다는 구상으로, 국내에서는 주로 미국의 대(對)중국 견제 전략과 맞물려 대만 문제 등으로 대응을 확장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돼 왔다.

제이비어 브런슨 주한미군사령관은 지난해 한 세미나에서 거꾸로 뒤집은 지도를 '동쪽을 위로 올린 지도'라고 표현하면서 "때로 우리는 다른 곳으로 이동해야 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한 바 있다. 그는 주한미군이 대중국·러시아 작전 공간의 내부에 위치한 전력이라고 강조하며 정세 변화에 따라 주한미군의 역할에도 변화가 불가피하다는 인식을 드러냈다.

이런 맥락에서 인·태지역 외로 주한미군의 전력이 반출되는 것을 두고 미국이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자의적으로 적용한 것이라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중동지역은 미국의 인·태사령부가 아닌 중부사령부가 담당하는 영역이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이번 물자 반출이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에 따른 것인지, 과거 이라크·아프가니스탄 전쟁 당시처럼 일시적 지원에 해당하는 것인지 해석이 갈리고 있다. 다만 대체로 미국이 전략적 유연성을 적용했다기보다는 '긴급 지원'에 가깝다고 보고 있다.

유지훈 한국국방연구원(KIDA) 연구위원은 "미국 입장에서는 해외 기지에 전개된 병력이나 자산을 자국의 전략이나 안보적 목적에 맞게 언제든지 반출해 쓸 수 있는 것"이라며 "주한미군 임무가 대북 억제라는 큰 틀은 맞지만, 반드시 그것만을 위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현재 상황을 꼭 전략적 유연성 맥락에서 보는 것은 맞지 않는 것 같다"라고 평가했다.

유 연구위원은 "우리는 전략적 유연성을 역내 상황과 관련해 많이 생각해 왔지만 미국 입장에서는 중동이든 유럽이든 어디든지 이해관계가 걸려 있으면 자산을 활용할 수 있는 것"이라며 "미국이 동북아 분쟁 때만 전략적 유연성을 적용한다고 보는 것은 다소 나이브한 생각일 수 있다"라고도 지적했다.

신종우 한국국방안보포럼 사무총장은 "작년 자산 반출 때는 작전을 미리 계산해 사전 배치를 했지만 이번에는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전략적 유연성으로 단정하기 어렵다"라며 "이란의 탄도미사일과 드론 공격 규모를 미국이 정확히 예상하지 못한 데 따른 일시적인 현상"이라고 말했다.

신 사무총장은 이어 "이란이 드론을 지속해서 발사하면서 중동 주둔 미군의 요격 미사일이 빠르게 소진됐다"라며 "그래서 전 세계 주둔 미군의 방공체계를 잠시 이란 전쟁에 투입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현재 상황이 결과적으로 전략적 유연성의 사례로 해석되더라도, 그 과정에서 미국의 보다 명확한 설명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내놓았다. 군 내부에서도 주한미군 전력 이동이 한반도 방위와 직결된 사안인 만큼 동맹 차원의 충분한 소통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국방부는 주한미군 전력 이동과 관련한 직접적인 언급을 자제하고 있다. 국방부는 최근 관련 질문에 "주한미군 전력 운용과 관련해 우리 정부가 언급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라는 입장을 반복 중이다.

hgo@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