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사 절반 "폭언·괴롭힘 당했다"…인력 부족이 구조적 원인
"신고해도 바뀌지 않는다"…간호사 인권침해 70% 무대응
간협, 간호사 788명 대상 '인권침해 실태조사 결과' 발표
- 김규빈 기자
(서울=뉴스1) 김규빈 기자 = 의료기관에서 근무하는 간호사 절반 이상이 폭언과 괴롭힘 등 인권침해를 경험한 것으로 조사됐다. 인력 부족과 열악한 근무환경이 구조적 원인으로 지목되며, 인권침해가 숙련 인력 이탈로 이어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4일 대한간호협회가 공개한 전국 의료기관 간호사 788명(여성 90.4%)을 대상으로 실시한 '간호사 인권침해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50.8%가 최근 1년 내 인권침해를 경험했다고 답했다.
가장 흔한 피해 유형은 폭언(81.0%)과 직장 내 괴롭힘·갑질(69.3%)으로 나타났다. 가해자는 선임 간호사(53.3%), 의사(52.8%), 환자 및 보호자(43.0%) 순으로 나타났다. 특히 인권침해의 79%는 환자나 보호자 등 제3자가 있는 공간에서 발생했다. 간호사들이 공개된 환경에서 직업적 존중 없이 폭언과 모욕에 노출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현장에서는 인권침해의 근본 원인으로 만성적인 인력 부족이 지목된다. 과중한 업무와 교대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이 위계 갈등과 괴롭힘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다.
응답자의 65.3%는 휴직이나 사직을 고려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으며, 43.5%는 직종 변경을 고민한 적이 있다고 밝혔다. 인권침해가 숙련 인력 유출의 주요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셈이다.
피해 후 대응은 여전히 미흡했다. 인권침해를 경험한 간호사 중 71.8%가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이유로는 "신고해도 변화가 없을 것 같아서"(67.2%)가 가장 많았다. 공식 절차를 통한 신고는 15.0%에 불과했으며, 이 중에서도 "기관 내 변화가 없었다"는 응답이 69.0%로 나타났다. 제도상 보호 장치가 존재하더라도 실제 현장에서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의미다.
전문가들은 인권침해 행위자에 대한 명확한 처벌 기준과 법적 보호 장치 마련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신고자 보호 시스템을 제도화하고, 기관 내 인권 전담기구를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조사에서 간호사들은 직장 내 '갑질 문화'와 수직적 관계를 구조적 문제로 지적했다. 선후배 간 권위적 문화와 부적절한 언행이 반복되며, 이를 견디지 못하고 이직을 고려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개인 간 갈등이 아닌 조직 전반의 문화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감정노동 완화, 심리상담 지원, 리더십 교육 등 실질적인 조직문화 개선 프로그램이 병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응답자들이 꼽은 최우선 개선 과제는 △인력 충원 등 근무환경 개선(69.3%) △법·제도 정비 및 처벌 강화(57.5%)였다.
대한간호협회는 "인력 확충 없이는 인권침해 문제의 근본적 해결이 어렵다"며 "인력 충원, 처벌 기준 강화, 조직문화 개선을 포함한 종합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밝혔다.
rnkim@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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