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한양행·동화약품, 독립운동서 FDA 신약까지…'활명수·렉라자'에 깃든 정신

유일한 박사 '냅코 작전' 재조명…기업의 사회적 책임 모범
129년 역사 국민 액상소화제 '활명수' 독립자금에 기여

유한양행 창업자 유일한 박사.(유한건강생활 제공)/뉴스1

(서울=뉴스1) 황진중 기자 = 유한양행과 동화약품의 역사는 조국 독립을 향한 헌신과 맞닿아 있다. 일제강점기 민족의 아픔을 치유하고 독립운동을 지원한 대표적인 기업이다. 각각 글로벌 신약 창출과 국내 최장수 의약품이라는 성과를 통해 그 애민철학을 이어가고 있다.

유일한 박사 애국정신, 글로벌 신약 '렉라자'로 결실

2026년 창립 100주년을 맞은 유한양행은 1926년 설립된 이래 최초가 많은 기업으로 불린다. 2024년 8월에는 국산 신약 제31호인 비소폐암치료제 '렉라자'(성분명 레이저티닙)가 존슨앤드존슨의 '리브리반트'(성분명 아미반타맙)와의 병용요법으로 국산 항암제 최초로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획득하면서 글로벌 시장에 진출했다.

창업자 유일한 박사의 창업정신이 환자에게 더 좋은 약을 제공한다는 철학으로 이어진 사례다. 1895년 평양에서 태어나 9세에 미국으로 건너간 그는 1909년 한인소년병학교에 입교해 군사훈련을 받았다. 1919년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한인자유대회에 참가해 한국의 독립을 호소했다.

유일한 박사는 일제 치하에서 고통받는 민족의 현실을 보고 건강한 국민만이 잃었던 주권을 되찾을 수 있다는 신념 아래 1926년 유한양행을 창립했다. 당시 많은 기업이 일본 자본에 의존했지만, 그는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기업 운영을 통해 민족 자립의 기반을 마련하고자 했다. 유한양행의 해외지사는 유사시에 항일운동 지하조직의 핵심으로 운영할 방침이었다.

시민들이 서울 동작구 유한양행 본사 1층에 마련된 유일한 기념관을 둘러보고 있다./뉴스1 황진중 기자

미국 유학파가 세운 친미기업으로 꼽혀 국내 활동이 어려워지자 유일한 박사는 1930년대 후반부터 미국에 체류하며 해외한족대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 1941년 태평양 전쟁 발발 후 미국전략정보국 OSS의 한국담당 고문으로 활약했다. 1945년 실행을 목표로 한 비밀침투작전 냅코프로젝트(NAPKO)에 암호명 A로 가담해 조장으로서 직접 군사훈련을 받았다.

비록 일본의 항복으로 작전은 실행되지 못했으나, 50세의 나이와 대기업 대표라는 지위에도 특수공작원으로 자진한 그의 애국심은 2024년 창작 뮤지컬 '스윙데이즈 암호명A'를 통해 다시 조명받았다. 이러한 공훈으로 정부는 1995년 유일한 박사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했다.

광복 후 1946년 귀국한 유 박사는 유한공고 등을 설립해 교육진흥에 이바지했고, 1969년에는 혈연관계가 없는 전문경영인에게 경영권을 인계해 국내 최초로 전문경영인 제도를 시작했다. 1971년 76세로 타계할 당시 손녀의 장학금을 제외한 모든 소유 주식을 공익법인에 남겨 기업활동이 우리 사회 공익을 위해 쓰이도록 유언을 남겼다.

과거 활명수 제품 모습./뉴스1 황진중 기자
129년 역사 활명수, 독립운동 자금줄·임시정부 비밀연락망 활약

동화약품의 활명수는 1897년 궁중 선전관 민병호 선생이 개발한 국내 최초 양약이자 출시 129주년을 맞은 최장수 의약품이다. 활명수 브랜드는 2024년 약 833억 원의 매출액을 기록하며 액상소화제 시장 내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활명수 브랜드의 현재까지 누적 판매량은 약 90억 병에 이른다. 이는 전 세계 81억 명의 인구가 한 병씩 마시고도 남는 수량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 조사에 따르면 2020년 기준 까스활명수는 생산실적 1위 품목으로 나타나 국민이 가장 많이 먹은 일반의약품으로 꼽혔다.

생명을 살리는 물이라는 뜻을 가진 활명수는 단순한 소화제를 넘어 독립운동의 자금줄 역할을 했다. 동화약품 초대 사장인 민강 선생은 1919년 3.1 운동 직후 상해 대한민국임시정부와 국내 간 비밀연락망인 서울연통부를 운영하는 행정책임자였다. 민강 선생은 활명수를 판매한 금액으로 독립자금을 조달해 임시정부에 전달했다.

당시 활명수 한 병값은 50전이었다. 독립운동가들은 중국 이동 시 활명수를 지참해 현지에서 비싸게 팔아 자금을 마련한 것으로 전해진다. 민강 선생은 독립운동으로 여러 차례 옥고를 치르다 고문 후유증으로 1931년 순국했다.

동화약품이 출시한 액상 소화제 '활명수' 제품군.(동화약품 제공)/뉴스1

동화약품의 남다른 민족정신은 후대 최고경영자(CEO)들에게도 이어졌다. 1937년 회사를 인수한 5대 사장 윤창식 선생은 경제적 자립으로 국권을 회복하기 위해 조선산직장려계를 결성하고 신간회와 보린회를 적극 지원하는 등 민족 운동을 펼쳤다.

7대 사장 윤광열 회장은 일제에 강제 징집됐다가 광복군에 합류해 중대장으로 활동했다. 또한 동화약품은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서 손기정, 남승룡 선수가 메달을 획득하자 조선일보에 축하 광고를 게재해 건강한 조선을 목표로 하자는 메시지를 담아 암울한 시대 국민들의 자부심을 북돋웠다.

동화약품은 1967년 탄산을 첨가한 까스활명수를 비롯해 1991년 까스활명수 큐, 어린이를 위한 꼬마활명수, 2020년 스틱형 파우치 소화제인 활명수 유, 편의점 상비약 까스활, 미인활, 활명수 등 소비자 수요에 맞춰 다양한 제품을 선보이고 있다.

jin@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