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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발음 뒤 불기둥 치솟아… 히로시마는 완전 불바다였다"

한인 원폭 피해자 박남주 할머니가 전한 그날의 '기억'
"부상자들의 마지막 말은 '뜨겁다. 물 주세요'가 전부"

(히로시마·서울=뉴스1) 외교부 공동취재단, 이창규 기자 | 2023-12-20 15:13 송고
박남주 할머니. (외교부 공동취재단)
박남주 할머니. (외교부 공동취재단)

"제방 위에서 보니 히로시마(廣島)가 없어져서 겁이 났어요. 그땐 머리부터 발끝까지 공포에 찼었습니다. 형언하기 어려운 공포였어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군의 원자폭탄 투하로 피폭된 박남주 할머니(91)의 말이다.
재일교포 2세인 박 할머니는 원폭 투하가 이뤄진 1946년 8월6일 미군의 공습경보 속에 두 동생과 함께 전차를 타고 피난을 가던 중 불과 1.9㎞ 거리에 떨어진 원자폭탄의 영향으로 방사능에 피폭됐다. 당시 12세였다.

박 할머니는 이달 3일 히로시마 평화기념자료관에 외교부 공동취재단과 만나 그날의 '기억'을 떠올렸다.

"아침 6시30분쯤 (미군 폭격기) B-29가 날아와 공습경보가 울렸습니다. 그러다 7시 좀 지나서 공습경보가 전부 해제됐는데 다시 B-29가 날고 있었어요. '왜 그런가' 했는데 곧 폭발음이 들렸고 불기둥이 치솟았습니다."
미군 폭격기는 오전 8시15분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을 떨어뜨다.

당시 일제의 강제동원 등에 따라 히로시마에 와 있던 한인 약 14만명 가운데 5만명 가량(사망 약 3만명)이 그 피해를 입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박 할머니는 누군가로부터 '아이들은 얼른 나오라'는 말을 듣고 전차에서 내렸다고 한다.

"엄청 맑은 날씨였는데 (핵)폭발 이후 '안개'가 가득 껴서 (옆 사람) 얼굴이 하나도 안 보일 정도였어요. '안개'가 조금 걷힌 뒤에 보니 어른들 머리는 전부 피투성이였고, 제방 위에서 본 히로시마는 완전히 불바다였습니다. 서쪽 마을은 건물이 다 부서져 남은 게 없었어요."

박 할머니가 현장에서 목격한 부상자 대부분 핵폭발 과정에서 발생한 열기로 화상을 입은 사람들이었다.

"멀리서 사람들이 손을 흔들면서 왔는데 (가까이서 보니) 손을 흔드는 게 아니라 피부가 (화상에 녹아) 늘어진 것이었어요. 아이들도 어른들도 전부 화상을 입었고 한번 넘어지면 다시는 일어나지 못 했습니다. 그들의 마지막 말은 '천황폐하 만세'도, '어머니, 아버지, 도와주세요'도 아니고 '뜨겁다. 물 주세요'가 전부였습니다."

박 할머니는 지금도 '물'을 보면 그 당시 생각이 나 "가슴이 아프다"며 "그날 저녁에 구급대원이 왔지만 (화상 환자 가운데) 생존자는 한 사람도 없었다"고 전했다.

박 할머니에 따르면 히로시마의 재일동포들은 현지 일본인들은 달리, 피폭 뒤에도 폭심지로부터 2㎞ 밖을 벗어나지 못했다. 박 할머니 가족들은 그해 8월15일 광복 또한 그곳에서 맞아야 했다. 박 할머니는 당시 피폭의 영향으로 현재 피부암과 유방암 등을 앓고 있다.

이런 가운데 윤석열 대통령은 올 5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참석차 히로시마를 방문했을 당시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와 함께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 내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를 참배했다. 한일정상이 이곳을 함께 찾은 건 이때가 처음이었다.

윤 대통령은 박 할머니를 비롯한 히로시마의 한인 원폭 피해자와 후손들도 만나 위로했다.

박 할머니는 "지금 와선 한국이나 일본 정부에 원하는 것도 기대하는 것도 없다"면서도 "지금도 재일동포는 일본에서 공직자가 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yellowapollo@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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