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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 못갖고 청춘 허비"…3년 기다려야 소집되는 사회복무요원

[현대판공노비]③장기대기 면제 연간 1.5만명…3명중 1명꼴
두번 떨어져야 복무 가능…느닷없는 소집통보에 계획 차질도

(서울=뉴스1) 송상현 기자 | 2022-08-04 05:00 송고 | 2022-08-04 08:31 최종수정
편집자주 '군대보다 편하지 않으냐’
사회복무요원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시선은 이 한마디로 요약된다. 질병이나 심신장애로 정상적인 군복무가 힘든 이들이 사회복무요원으로 국방의 의무를 대신한다. 이들은 21개월 동안 '사복 입은 이등병'으로 살아가면서 공공 서비스의 말단을 지탱하고 있다. 하지만 국제노동기구는 한국의 사회복무요원 제도에 대해 '강제노동'이라며 폐지를 권고한다. 자신들을 ‘현대판 공노비’라고 정의하며 노동조합 설립을 통해 부당한 현실 알리기에 나섰다. <뉴스1>은 사회복무요원들이 겪고 있는 현실을 파헤쳐보고 존치의 필요성을 들여다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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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북부권역에 거주하는 A씨는 스무살이던 2018년 9월 학력 미달로 신체검사 4급 판정을 받았다. A씨가 학교폭력으로 중학교를 중퇴했기 때문이다.

A씨는 이후 사회복무요원으로 근무하기 위해 '본인 선택'이라는 제도로 2년간 세번 입영을 신청했지만 번번이 탈락했다.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던 A씨는 3년째가 되자 장기대기로 면제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해 취업했다. 
그러나 2021년 8월 기초군사훈련을 받으러 입소하라는 직권 소집 통지가 갑자기 날아왔다.  2022년 1월1일이 지나면 자동 면제가 되지만 겨우 4개월을 앞두고 복무를 시작한 것이다. A씨는 <뉴스1>과의 인터뷰에서 "다니던 직장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고 토로했다. 

© News1 이지원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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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이상 소집 안 되면 '면제'…3년째 1.5만명 수준, 3명에 1명꼴

4급 보충역 판정을 받은 사회복무요원 대기자는 복무기관 부족으로 3년 이상 소집되지 못할 경우 전시근로역으로 분류돼 사실상 병역을 면제받는다. 청년들의 적기 사회 진출을 보장하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다. 
4일 병무청에 따르면 지난해에만 4급 보충역 1만4485명이 장기대기로 전시근로역 처분을 받았다. 같은 기간 3만6459명이 사회복무요원으로 소집된 것을 고려하면 4급 보충역 판정을 받은 청년 3명 중 1명이 복무를 시작도 못하고 면제가 된 것이다.

장기대기 면제 인원은 2016년 11명에 불과했지만 2017년 90명, 2018명 2317명, 2019년 1만1457명, 2020년 1만5531명, 2021년 1만4485명 등 급속히 늘고 있다. 올해 1월에만 5644명이 추가로 면제됐다. 

장기대기 인원이 크게 늘어난 주요 이유로 2015년 신체검사 규칙 개정이 지목된다. 2010년대 초반부터 이어진 현역 입영 적체 해소를 위해 국방부는 '병역판정 신체검사 등 검사 규칙'을 개정해 현역 판정 기준을 높였다. 4급 판정 비율이 자연스럽게 높아져 4급 보충역 대기자가 연 5만여명으로 늘었다. 하지만 복무기관이 한정적이다 보니 잉여인원은 줄지 않고 있다. 

이에 정부는 사회복무요원 소집적체 해소를 위해 2019년부터 3년간 1만5000명을 추가 배치하겠다고 발표했다. 실제로 2019년 소집인원이 3만5666명으로 전년(2만9835명)보다 5831명 늘었고 2020년 3만5160명, 2021년 3만6459명 등으로 유지되고 있다. 하지만 이 정도로는 소집 적체 해소에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

이에 병무청 관계자는 "소집 적체 해소를 이유로 복무하기에 문제가 있는 인원까지 소집을 확대하긴 힘들다"면서 "복무기관 확대 역시 인건비 문제 등이 있어 계속 늘리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2022년도 첫 병역판정검사가 시작된 7일 오전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경인지방병무청에서 입영대상자들이 신체검사를 받고 있다. 2022.2.7/뉴스1 © News1 김영운 기자
2022년도 첫 병역판정검사가 시작된 7일 오전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경인지방병무청에서 입영대상자들이 신체검사를 받고 있다. 2022.2.7/뉴스1 © News1 김영운 기자

◇2번 탈락해야 복무 가능, 3년째 갑자기 소집 통보도…"취업도 못 하고 청춘 허비"

소집대상자 수와 복무기관 수요의 엇박자를 고려하지 못한 인력 적체의 피해는 복무를 앞둔 청년들이 고스란히 받고 있다. 

사회복무요원들은 1년에 한번 입영 신청으로 복무기관을 선택할 수 있다. 탈락 횟수가 많아야 합격확률이 높아지는 구조다. 그렇다 보니 최소 한번, 지원자가 많은 행정업무의 경우 두번은 떨어져야 배치를 노려볼 수 있다. 

1년이라도 빨리 복무를 시작하기 위해 비교적 정원에 여유가 있는 지역을 놓고 눈치싸움을 한다. 아예 경쟁률이 낮은 다른 지역으로 주소지를 옮겨 근무하는 경우도 있다.

경남에서 근무하는 사회복무요원 B씨는 "복무하기 전엔 제대로 된 인생계획을 세우기 힘들어 최대한 빨리 복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며 "출퇴근이 불가능하지만 복무를 앞당길 수 있는 지역으로 지원해 자취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특히 정신질환, 학력미달 등으로 4급 판정을 받은 청년들이 난감하다. 정신질환이 있으면 복지지설이나 아동시설에서 근무할 수 없기 때문에 복무기관이 더 제한돼있다. 입영 신청으로 근무지를 선택해도 최소 세번은 지원해야 복무기관을 찾을까 말까다. 

병무청은 본인 선택 등에서 탈락한 청년들을 대상으로 질환과 연령 등을 고려해 우선순위를 매긴 후 직권 소집을 통해 직접 배치도 한다. 정신질환이 있으면 직권 소집에서도 후순위로 밀려나고 학력 미달이나 체중 미달·초과 역시 5순위 중 4순위 정도로 면제되는 경우가 많다. 결국 이런 후순위자는 신체검사 이후 3년째가 되면 면제를 노리는 게 상식처럼 여겨지는 상황이다. 

하지만 3년을 기다린다고 장기대기를 받는다는 보장은 없다. 정신질환으로 4급 판정을 받고도 사회복무요원으로 배치된 청년만 지난해 1823명이었다. 장기대기 면제 1~2개월을 앞두고 갑자기 소집 통보를 받는 경우도 심심찮다.

© News1 최수아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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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무요원들은 원하는 시기에 복무할 수도 없고 언제 소집 통보가 올지도 몰라 취업, 학업 등에서 제대로 된 계획을 세울 수 없다. 병역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남성이 안정적인 직장을 갖기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에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시간을 허비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서울에서 근무하는 사회복무요원 C씨는 "한해 소집되는 대략의 인력규모가 정해져 있는데 병무청이 최소한 내가 복무할 수 있는 건지, 면제되는 것인지라도 예측해 통보해주어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하소연했다. 

안석기 국방연구원 국방인력연구센터장은 "예비 사회복무요원들의 경우 자신의 주소에 수요가 없으면 갈 수 없는 상황이어서 일부 지역은 적체가 심하다"고 분석했다. 이어 "현역병처럼 전국 단위로 모집해 숙소를 제공하면 장기대기를 줄일 수 있다"면서도 "예산이나 시스템 문제 등의 어려움이 있다"고 덧붙였다.


songss@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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