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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훈 감독 "처음 보는 최민식의 얼굴들, 보장합니다" [N인터뷰](종합)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 연출

(서울=뉴스1) 정유진 기자 | 2022-03-07 16:58 송고
박동훈 감독/쇼박스 제공 © 뉴스1
박동훈 감독/쇼박스 제공 © 뉴스1

"'올드보이'가 내 앞에 있네, 싶었어요."

오는 9일 개봉을 앞둔 영화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를 연출한 박동훈 감독은 최민식과의 첫 만남을 회상했다.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는 배우 최민식이 영화 '천문: 하늘에 묻는다'(2019) 이후 약 3년 만에 선보이는 주연작이다.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로 처음 상업 영화 연출을 맡은 박동훈 감독은 최민식을 "나의 은인"이라고 표현했다. 시나리오와 감독을 믿고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를 선택해준 데 대한 감사의 표현이었다.
"처음에 뵀을 때 저는 굉장히 긴장을 많이 했어요. 그때 당시 (최민식 앞에서는) 저도 긴장하지 않고 '영화에 대해서는 자신 있습니다' 하는 모습을 보여드려야 했는데 워낙 그분의 '찐팬'이라서 긴장을 했었죠…저에게는 고마운 분이고 은인이에요."
쇼박스 제공 © 뉴스1
쇼박스 제공 © 뉴스1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는 학문의 자유를 갈망하며 탈북한 천재 수학자 이학성(최민식 분)이 자신의 신분과 사연을 숨긴 채 상위 1%의 영재들이 모인 자사고의 경비원으로 살아가던 중 수학을 가르쳐 달라고 조르는 '수포자' 학생 한지우(김동휘 분)를 만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 휴먼 드라마.

박동훈 감독이 "길을 걸어가다 술취한 행인이 갑자기 이유 없이 욕설을 해대도 '욕해라' 하면서 기분 나빠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자포자기한 인물"이라고 설명한 이학성의 캐릭터는 명배우 최민식의 몸을 입고 생동감 있는 인물로 탄생했다. 영화 속에는 최민식의 아이디어로 탄생한 명장면이 꽤 있다고.

"영화 속에서 바흐, 헨델, 베토벤과 관련해 농담을 하는 장면이 있어요. 처음에 그 아이디어를 말씀해주셨을 때는 '학성이 너무 까부는 거 아니야?' 싶었는데 막상 촬영 현장에서 해보니 너무 근사했어요. 그때 '통찰력이라는 게 이런 거구나' 느꼈습니다."

실제 현장에서 최민식은 유쾌한 분위기 메이커였다. 박동훈 감독은 긴장감 가득한 현장에서 툭툭 농담을 던지며 모두를 웃게 만든 최민식의 노련함을 떠올리며 혀를 내둘렀다.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 스틸 컷 © 뉴스1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 스틸 컷 © 뉴스1

"스태프 입장에서는 티는 안 내도 제 코가 석자인 이 상태가 시종일관 계속 유지가 되는데, (최민식은)그런 긴장을 풀어주려고 하신 것 같아요. 그런데 좀 놀라운 건 뒤에서 막 '미스터 트롯' 얘기하시면서 웃고 떠들다가 '이제 촬영할 차례다'라고 말씀드리고 나면 세트에서 180도 달라지세요. 과장이 아니라 모니터 보면서 완전 '허...'하고 감탄한 순간이 한 다섯 번은 있었어요."
박동훈 감독은 스스로 "찐팬"이라는 표현을 사용할 만큼 아주 오래 전부터 최민식의 팬이었다고 했다. 그가 '찐팬'으로서 가장 좋아하는 최민식의 영화는 '올드보이'와 '해피엔드'다.

"언론에서는 최민식씨를 '뜨거운 배우' '호랑이' 이런 수식어로 표현하고는 하죠. 그런데 저는 이분이 생활 연기도 무척 잘하시는 분이라고 생각해요. '해피엔드'에 보면 슬리퍼를 신고 다용도실에 쭈그리고 앉아 사각사각 우유팩을 가위로 자르는 신이랄지, 그 뒤에 빨래를 너는 신, 소위 말하는 일상 연기들을 다 다르게 표현하셨어요…그래서 이번 영화에서는 '꽃피는 봄이 오면'이라는 영화도 있었지만 그건 20년 전 영화니까요. 지금, 현재의 최민식 배우의 온화한 얼굴, 따뜻한 얼굴, 누군가를 위로하는 얼굴을 발견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보장할 수 있는 건 관객들이 처음 보는 최민식의 얼굴들을 이 영화 안에 존재한다는 점이에요."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는 최민식 뿐 아니라 각 역할에 꼭 맞는 배우들을 기용한 점에서 탁월한 영화다. 극중 최민식과 콤비 플레이를 보여주는 신인 배우 김동휘(한지우 역)부터 극중 한지우의 친구 보람을 연기한 조윤서, 수학 선생님 박병은과 국정원 직원 박해준까지. 훌륭한 캐스팅은 영화에 대한 관객들의 몰입을 높여준다.

"주위에서는 김동휘의 캐스팅에 대해 '너무 위험하지 않느냐'하는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너무 신인이라서요. '투톱 영화'에서 흔히 할만한 선택은 아니니까요. 그렇지만 저는 영화에서 최민식이라는 배우 앞에 서 있는 낯선 젊은 배우가 만들어내는 만져질 것 같은 긴장감, 스멀스멀 나오는 그런 긴장감이 있을 거라는 판단이 있었어요."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의 시나리오는 경제학과를 졸업한 후 언론사에서 경제부 기자, 증권사 펀드 매니저 등을 거친 이용재 작가가 썼다. 그는 그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리만 가설, 피타고라스 정리 등 수학 전문 지식이 등장하는 시나리오를 완성했다. 거기에 카이스트 수리과학과에 재직 중인 한상근 교수가 시나리오의 사전 자문을 맡았고, 촬영 현장에도 수학 전문가가 함께 해 혹시 있을 수 있는 영화적 오류를 줄이기 위해 노력했다.

"저 역시 '수포자'(수학을 포기한 사람)으로서 수학 영화를 연출하니 긴장을 바싹 했어요. 판서나 문제지 수식이 드러나는 쇼트에서 오류가 있으면 안 되니까요. 언제나 촬영장에 계셨던 것은 아니지만, 판서를 한다든지, 문제에 대해 질의하는 신을 촬영한다든지 하는 회차에는 언제나 전문가 분을 옆에 모셔놓고 감수하실 수 있게 했어요."
쇼박스 제공 © 뉴스1<br><br>
쇼박스 제공 © 뉴스1


박동훈 감독은 대학교 1학년이었던 1992년에 첫번째 단편 영화를 연출한 것을 시작으로 약30년간 영화를 만들어왔다. '룩킹 포'(2000), '사이에 두고'(2002), '전쟁영화'(2005), '소녀X소녀'(2007), '계몽영화'(2010) 등 독립영화를 연출해 온 그에게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는 첫번째 상업 영화다.

"돌아보면 제 자신이 너무 게을렀던 것 같아요. 진짜 게을렀어요. 저의 영화 필모그래피를 보면 2010년의 '계몽영화'가 마지막이에요. 그 이후에 제가 가만히 있었던 건 아니지만 많은 작품이 중단되고 엎어졌죠. 그런 일들이 계속 벌어졌고, 괴로웠고 마음이 상해 있었고 그랬었어요. 남탓할 건 아닌 것 같아요. 그렇게 된 결정적인 이유가 저의 게으름과 나태함이었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스스로는 "게을렀다"고 말하지만, 2010년대에도 박동훈 감독은 많은 일들을 했다. 특히 2016년에는 윤성호 감독과 함께 '게임회사 여직원들'이라는 웹드라마를 공동 연출해 좋은 평을 얻기도 했다. 윤성호 감독과 좋은 인연을 이어가고 있는 박동훈 감독은 윤성호 감독이 연출한 웹드라마 '이렇게 된 이상 청와대로 간다'에 카메오 출연을 하며 의리를 보여주기도 했다. 윤 감독은 당시 '게임회사 여직원들'에서 함께 했던 장동윤, 이민지, 이주영 등의 배우들이 최근 활발하게 활동하는 것을 보며 "빨리 저 배우들과 함께, 다시 한 번 (작품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고 말했다.

"저의 연기력을 보시려면 '이렇게 된 이상 청와대로 간다'를 보십시오. 1회 두번째 컷 오른쪽 위에 나옵니다. 고양이를 안고 있어요.(웃음) 윤성호 감독님은 제가 굉장히 존경하고 친한 동료에요. 전부터 공동 작업을 계속 해왔고요. '게임회사 여직원들'은 윤성호 감독님이 주도하시고 저와 이랑 감독님까지 셋이 함께 만든 작품이었어요. 되게 재밌게 찍었고 몽글몽글 색채감이 좋았고, 귀여운 작품이라 만족했어요."
쇼박스 제공 © 뉴스1<br><br>
쇼박스 제공 © 뉴스1


후속 작품 얘기를 꺼내니 "근미래, 임산부, 액션"이라는 세 가지 키워드가 대뜸 돌아왔다. 현재 시나리오를 쓰고 있는 작품이라고 했다. 박 감독은 "재난의 상황에서 대한민국을 탈출하는 임산부가 무장을 한 채 샷건을 들고 있는 이미지를 담고 있다"며 새로운 영화 제작에 대한 의지를 드러냈다.

애초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는 2020년 개봉 예정작이었다. 무려 2년이나 늦게 개봉하게 된 소감은 어떨까. 박 감독은 2년간 술이 당기는 일상을 살아왔다고 표현했다. 그만큼 쉽지 않았던, 터널과도 같은 시간이다. 하지만 이 모든 터널의 끝을 맞이하는 지금, 그는 자신의 영화가 역시나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는 관객들에게 위로가 됐으면 좋겠다고 작은 바람을 드러냈다.

"코로나라는 끝나지 않는 불쾌하고 긴 꿈을 지나가고 있습니다. 미세 먼지가 가득한 긴 터널이었죠. 그래도 저희 영화가 이런 불쾌하고 우울한 기분을 조금이라도 덜어낼 수 있다면 저희의 임무는 다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레 개봉하는 데 너무 긴장이 되네요."(웃음)


eujenej@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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