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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보고 있나'…네덜란드 총리, 인니서 약 80년전 전쟁 범죄 사과

인도네시아 독립전쟁 시기 발생한 네덜란드군의 폭력에 대해 사과
총리 "부끄러운 역사적 사실 받아들여야"

(서울=뉴스1) 김민수 기자 | 2022-02-18 10:31 송고
1946년 인도네시아에서 청년들이 네덜란드군에 맞서기 위해 훈련을 하고 있는 모습 © 로이터=뉴스1 © News1 김민수 기자
1946년 인도네시아에서 청년들이 네덜란드군에 맞서기 위해 훈련을 하고 있는 모습 © 로이터=뉴스1 © News1 김민수 기자

"네덜란드 정부를 대표하여 오늘 인도네시아 국민에게 깊이 사과를 합니다."

네덜란드 총리는 기자회견에서 과거 인도네시아독립전쟁에서 네덜란드군이 저지른 전쟁 폭력에 대해 이렇게 사과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17일(현지시간) 마크 뤼테 총리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과거 네덜란드 식민지였던 인도네시아가 독립을 선포하자 이를 막기 위해 군이 조직적이고 비윤리적인 폭력을 가했으며,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당시에는 정부와 사회가 묵인했다고 인정했다. 그러면서 "부끄러운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덧붙였다.

앞서 네덜란드는 2017년부터 인도네시아 독립전쟁 기간 벌어진 네덜란드군의 전쟁 범죄를 조사하는 학술연구에 자금을 지원해왔다. 네덜란드와 인도네시아 양국의 전문가들이 참가한 이번 연구 결과는 17일 암스테르담에서 발표됐다.

연구팀은 조사결과 네덜란드군의 전쟁 폭력이 "광범위하고 빈번하게 발생했다"라고 발표했다. 네덜란드 군사역사연구소의 역사학자 벤 쇤메이커는 "정치인들은 군, 민, 법무 당국이 네덜란드군의 폭력사태를 방조하고 은폐했다"라고 밝혔다.

네덜란드 이번 사과는 전쟁 범죄를 학술적으로 철저히 조사하고 인정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
앞서 1969년 네덜란드 정부는 인도네시아독립전쟁 기간 네덜란드군의 전쟁 범죄를 인정하지 않았다.

이후 2005년 네덜란드 정부는 "역사의 잘못된 편에 서 있었다"라며 처음 잘못을 인정했다. 아울러 2020년 3월에는 빌럼 알렉산더르 네덜란드 국왕이 인도네시아를 방문해 네덜란드군의 전쟁 폭력에 대해 사과한 바 있다.

네덜란드는 1947년 라가웨데 마을(Ragawede village)에서 벌어진 민간인 학살에 대해서 피해자 유족에게 5000유로(약 680만원)를 보상하기도 했다.

뤼테 총리는 네덜란드 정부가 앞으로 배상금 청구 문제에 적극 나서겠다고 이날 기자회견에서 밝혔다.

한편 영국 일간 가디언에 따르면 1945년부터 1949년까지 4년5개월 동안 벌어진 인도네시아 독립전쟁에서 인도네시아인 약 10만명이 사망했다.

지난 2021년 10월10일(현지시간) 앙겔라 메르켈 독일 전 총리가 이스라엘 홀로코스트 박물관에서 헌화하고 있다. 2022.01.21/news1 © AFP=뉴스1 © News1 김민수 기자
지난 2021년 10월10일(현지시간) 앙겔라 메르켈 독일 전 총리가 이스라엘 홀로코스트 박물관에서 헌화하고 있다. 2022.01.21/news1 © AFP=뉴스1 © News1 김민수 기자

이처럼 과거사 문제는 현대 국제 관계에서 뜨거운 쟁점이 되고 있다.

독일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가 저지른 홀로코스트 만행에 대해 지속해서 사과하고 반성한 것으로 유명하다. 실제로 종전 6년 후 나치를 계승할 목적으로 사회주의 국가당(SRP)가 설립되자, 헌법수호청은 1956년 정당 해산 명령을 내렸다.

1970년 12월7일 빌리 브란트 당시 서독 총리가 폴란드 바르샤바 유대인 위령탑 앞에서 무릎을 꿇기도 했으며,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에게도 금전적 배상 책임을 하려고 노력했다. 지난해 10월 앙겔라 메르켈 전 총리는 총리 퇴임 전 마지막으로 이스라엘 홀로코스트 박물관에서 헌화하며 사과하기도 했다.

반면 일본은 한국에게 식민지 시절 자행한 범죄에 대해 제대로 사과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 않다고 평가받는다. 한일 위안부 문제나 일본 강제 징용 문제에 대해서도 사과를 이미 끝냈다거나, 고의로 은폐하고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최근에는 일본은 조선인 강제 노역이 이뤄진 일본 사도(佐渡)광산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추진하고 있다. 일본은 사도 광산의 역사에 조선인 강제 징용 사실은 배제하고 17세기 에도(江戶)시대 일본 최대 금광이자 세계 최대 금 생산지였단 점만 부각하고 있다.

일본 사도 광산 홈페이지 캡처 © 뉴스1
일본 사도 광산 홈페이지 캡처 © 뉴스1



kxmxs4104@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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