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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장애인 지하철 시위는 '테러'였을까

(서울=뉴스1) 박재하 기자 | 2022-01-24 07:00 송고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회원들이 3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역에서 지하철 5호선을 타고 여의도 농성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2022.1.3/뉴스1 © News1 안은나 기자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회원들이 3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역에서 지하철 5호선을 타고 여의도 농성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2022.1.3/뉴스1 © News1 안은나 기자

지난 21일 오전 출근길 장애인단체 회원들이 서울 4호선 미아사거리역에 모였다. 이들은 장애인 이동권을 보장하라며 승하차 시위에 나섰다. 이날 시위로 열차 운행은 무려 50분가량 지연됐다. 지하철로 출근하던 시민들은 이로인해 큰 불편을 겪었다. 격앙된 시민들은 장애인들을 향해 거친 언사를 쏟아내기도 했다.

장애인 활동가들의 대중교통 승하차 시위는 20여년간 계속됐다. 장애인들은 2001년 4호선 오이도역 장애인 리프트 참사를 계기로 모든 지하철역사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해달라고 요구해왔다. 지난해에는 1월22일을 시작으로 지하철 승하차 시위가 총 10회 열렸다.
장애인 단체의 시위를 보도한 뉴스 댓글에는 시위는 물론 장애인들도 함께 비난하는 말이 많았다. 특히 "이건 시위가 아니라 테러행위다"라는 댓글도 있었다.

"굳이 출근 시간에 시위해 불편을 끼쳐야 하냐"는 불만에 더해진 칼날 같은 반응이다. 실제로 기자가 승하차 시위 현장에서 만난 일부 시민은 시위대에 항의하거나 휠체어를 밀치며 실랑이를 벌이기도 했다.

장애인 활동가들도 많은 사람에게 불편함을 끼치는 시위 방식에 대해 고민했을 것이다. 그들이 받는 날선 시선과 멸시도 충분히 예상했던 일일 테다.
하지만 이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위를 진행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시위가 있는 날 비장애인들이 느꼈을 잠깐의 불편은 장애인들이 20년 이상 겪은 '불편의 연속'이기 때문이다.

장애인 이동권 시위를 이끄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의 박미주 사무국장은 "사회적으로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20년간 들리지 않았다"라며 "모두가 지지할 수는 없겠지만 '시민의 발'이라고 불리는 지하철이 문제를 가장 많은 사람에게 드러낼 수 있는 곳이라고 판단했다"라고 설명했다.

2022년은 서울시가 서울 지하철 내 엘리베이터 100% 설치를 약속했던 해다. 하지만 지난해 4월 기준 서울 지하철 역사 283곳 중 261곳(92.2%)에만 엘리베이터가 설치됐다. 심지어 2022년 서울시 본 예산에는 지하철 설치 관련 예산이 포함되지 않았다. 지난해 지하철 승하차 시위가 유독 많이 진행됐던 이유다.

박 사무국장은 "2021년은 오이도역 리프트 참사 20주기였고 서울시가 약속했던 엘리베이터 100% 도입이 도래하는 해였지만 결과는 여전히 변하지 않았다"며 "이동권은 노동과 교육 등 삶의 기반이 되는 기본권이기 때문에 왜 이렇게까지 하는가를 한번씩은 봐주고 동료 시민으로서 많은 지지와 연대를 보내줬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지하철역 엘리베이터 도입 외에도 숙제가 산적해 있다. 지난해 12월31일 장애인 콜택시와 같은 특별교통수단 확보와 이에 대한 지원을 명시한 교통약자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하지만 관련 예산 확보는 의무가 아닌 임의조항에 그치고 말았다. 법이 통과됐더라도 장애인 이동권 보장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비장애인도 언젠가는 교통약자가 된다. 교통약자에는 어린이, 고령자, 임산부, 영유아를 동반한 사람 모두 포함된다. 누구나 한때는 어린이였고 시간이 지나면 고령자가 되기 마련이다. 장애인 이동권 시위로 얻어낸 저상버스 확대와 지하철 엘리베이터 도입은 그런 의미에서 장애인만을 위한 특혜가 아닌 '모두를 위한 혜택'이라는 시각도 있다.  

장애인 이동권이 온전히 보장되지 않은 올해도 시위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그때마다 시위와 함께 장애인들을 비난하는 목소리도 커질 것이다.

비난에 앞서 장애인들이 이른 아침 지하철역에 나오게 된 이유를 살피고 이들이 나서지 않아도 되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에 가까울 것이다. 약자의 절실한 호소를 '테러'라고 낙인 찍기 보다는 '따뜻한 관심'을 기울이는 건 어떨까.


jaeha67@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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